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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17.3.19.

by 푸휴푸퓨 2017.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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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내용도 없는, 의식의 흐름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조용한 일요일 낮이다. 처음 전주로 내려갔을 때만 해도 주말마다 약속이 흘러 넘쳤지만 지금은 아니다. 친한 지인이라 생각하면서도 약속을 먼저 잡지 않는 성격의 나인데 약속이 붐볐던 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일지도 모른다. 구태여 연락치 않으니 연락이 점점 줄어드는 것일까. 인맥 관리라는 것을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마음이 잠깐 들 때도 있다.

 

  조용히 집에 있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어디를 가자며 채근하신다. 주로 등산까지는 아니지만 어쩐지 뒷동산이 연결된 느낌의 코스를 걸어야 하는 곳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간편한 등산복을 갖춰 입고는 늘어진 나를 데려가고 싶다는 티를 팍팍 내시지만, 미안해요. 나는 아직 등산이 좋은 나이는 아니예요. 그런 채근 때문인지 할 일 없는 일요일 때문인지, 이제 주말에도 가끔 전주에 있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특별한 일이 없는 장소에서 특별한 일 없이 지낼 수도 있겠지.

 

  진정으로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로 죽음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 글을 읽고 나의 위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더이상 살 지 않아도 큰 미련은 없다고 말했던 게 몇 년 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죽으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냥 스르르 소멸하는 것을 바랐다. 얼마 전 유행한 드라마에서 도깨비가 사라지던 그 장면 그대로 나도,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죽고 싶지 않다는 표현일 뿐이었구나. 사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해 보게 되었다.

 

  지금이 싫다고 되뇌이기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무쓸모한 불평, 불만'에 지나지 않는다. 입사 이후 내가 해 온 모든 싫음이 그것에 포함된다. 이제 시간이 꽤 많이 흘렀고, 어느새 새로운 신입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갔다. 적응기도 끝났겠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매일 생각한다. 오늘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이대로 살아서는 안된다고 매일 생각하면서도 오늘이 피로하니 잠깐만 쉬겠다는 핑계를 지겹지도 않은지 매일 써먹었다. 당장 이대로는 안돼. 몸도 정신도 이대로는 안돼.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내가 싫어하는 그런 사람의 모습 딱 그대로가 될거야.

 

  사택에서 노트북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긴 글을 쓸 수가 없고, 긴 글을 쓰지 않으니 긴 생각을 하지 않고, 긴 생각을 하지 않으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사유도 멈추고 사유에 대한 필요성도 멈춰버린 돼지같은 내가 자꾸 보인다. 그러니까 이대로는 안돼.

 

  안돼. 안돼. 나를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건 좋은 일이다. 소멸해버리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나를 활기차게 해 준다. 그 다음은, 고치려는 행동이다. 3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꿈틀대고 싶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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