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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17.6.27.

by 푸휴푸퓨 2017.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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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나의 일상이 타인에게는 충만해 보일 수 있다. 매번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나. 그렇게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최근 두 달간 일주일에 5일을 다 사무실로 출근한 적이 없다. 일주일에 하루씩 꼭 출장을 가거나 공휴일이 끼어있었다. 꿈의 시간을 다 보내고 나니 어느 곳으로도 떠날 일이 없는 7월이 기다리고 있다. 대체 넌 어떻게 보내야 하지?

 

  회사에서 사이버교육으로 전화영어를 제공한다. 3개월 코스인데, 4월부터 시작해 이제 끝물이다. 한 달 전에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이 분은 주제를 본인이 생각하지 않고 자꾸 나에게 묻는다. '주말에 무엇을 했니, 오늘은 무슨 특별한 일이 있니-'를 물어보는 전화영어 강사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나는 전화를 받기 전에 이리저리 궁리를 했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이런 일로 출장을 가고, 주말엔 이런 일들을 할 거야. 야구를 보러 갈 거고, 친구들과 호텔에서 하룻밤을 즐겁게 보낼 거고, 독서 모임을 나가다가 모임 사람들과 방탈출을 하러 가기도 하겠지.

 

  내일이면 그 전화영어 수업이 끝난다. 내일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는지를 고민하며 시작된 대화에 강사는 또 이번 주 계획이 무어냐고 물었다. 이번 주 주말에는 독서모임이 있지만 그 이야기는 한 번 했었고, 머리를 굴리다가 지사로 나가는 동기가 생각났다. 나랑 친한 동료가 있는데, 그 동료가 다른 지점으로 가게 되어서 우리는 환송 파티를 할거야. 파티라고 해서 큰 건 아니야. 내가 사는 도시에 야시장이 있는데 관광도 많이 온다고 해서 가서 들러보려고. 당연히 맛있는 저녁이랑 술이 있지.

 

  내 이야기를 듣던 강사는 '좋은 계획이야~'같은 의례적인 대답을 하다가 갑자기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내 인생이 즐거워 보인다고 했다. 넌 항상 사람들을 만나고 신나는 일을 해. 회사에서 하는 일도 다양하고 이리저리 많이 놀러다니기도 하지. 자신은 전화영어를 시작하기 전까지 지구 반대편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있는 걸 몰랐다는 거야.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이고 또 언어의 제약이 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알바를 하면서 머리 아픈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있었지만). 그러다보니 내 이야기는 마치 SNS에 올린 예쁜 인증 사진 같은 내용뿐이었나 보다. 요즈음 난 인생이 너무도 살기 싫어 도대체 어떻게 50년도 넘게 더 살아야 할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내 인생이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는구나. 나도 인증샷만 잘 올리면 괜찮은 인생인 것처럼 꾸밀 수 있을 정도의 삶은 사는 것 같아 안도감을 느꼈다면 웃기는 소리일까.

 

    강사에게 이야기 할 수 없었던 것은 나는 이 회사와 내 인생을 정말이지 겹쳐서 그리고 싶지 않다는 것, 그래서 이리저리 원서를 내고 있다는 것. 원하지 않는 일에 숨이 막혀서 일요일 저녁이면 심장이 가빠오는 느낌이 든다는 것, 우울한 날에는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아서 두통약을 달고 산다는 것. 술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최근에 엄청나게 많이 마시게 변했다는 것. 누군가 건드리면 울 것 같지만, 그렇지만 눈물은 내 무기가 아니고 무너져 내리면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미친 듯이 참고 있는 것도. 그래서 술을 마시고 약을 먹는 것, 요즘의 나는 이런 모습으로만 가득하다고 생각했는데.

 

  겉으로라도 반짝거리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속이 썩어가는데 그게 다 뭐냐고 괴로워야 하나. 말 나온 김에 인스타그램에 예쁜 사진이나 하나 올릴까. 요즘의 나는 이렇다고 광고하면서. 그게 무슨 소용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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