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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0.1.8. 이제는 나뭇잎을 놓아주어야 할 시간

by 푸휴푸퓨 2020.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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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에는 인간관계가 너무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필요한 양의 인간관계보다 지금 내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은 느낌. 나는 만나고 싶지 않은데 만나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인복이 많다고 감사해야 할 일을 힘들어 하려니 내가 오만한가 싶었다. 누르려 해도 계속 올라오는 괴로움을 해결하고자 원인 분석을 해 보았다. 지켜보니 난 고민 해결에 이과적인 방법을 동원하더라.

  몇 안 되는 사적인 관계를 그룹별로 정리하고 각 그룹마다 만나고 싶은 주기와 현재 주기를 적어보았다. 그룹은 대략 8개고, 3개의 그룹이 내가 이상적이라 여기는 주기보다 자주 만난다.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면 한 달에 약속은 1~2개 정도로 끝난다. 뭐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문제지만 일단 정리라도 하고 보니 좀 낫네. 더 단호하게 약속의 주기를 늘리자 말하기로 결심했다.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말해야 한다.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버거워서임을 설득해야 한다.  

  왜 만남이 버거운지도 자문했다. 싫은 사람이 아닌데 왜 나가고 싶지 않지? 파고들어가 봤더니 내가 굳이 만날 필요를 느끼지 못하더라고. 그냥 좋은 사람인 건 아는데 꼭 자주 시간을 나눌 필요는 못 느끼는 거야. 아하, 그럼 왜 시간을 쓰고 싶지 않지? 그제야 알았다. 지금의 나는 재미나 유용성을 느끼는 기준이 과거와 많이 바뀌었다는 걸. 

  20대 후반은 대체로 여행과 예능, 소비에 주된 관심을 둔 시기다. 내 친구들도 다 그렇다. 나도 여행을 정말 사랑하던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프로 소비러라 자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내 관심은 (고루하게도) 독서, 자기계발, 재테크에 집중돼 있다. 더불어 연애도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지만 나는 나를 포함한 모두의 연애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연애는 개인의 가치관이 많이 개입되는데 굳이 공유하며 비교하고 싶지 않다. 결국 나는 상대의 취미에 제대로 공감할 수도 내 취미를 공유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다른 사람을 지루하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내가 지루해하는 주제를 듣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구구절절하고 피곤하다.

  그렇구나. 나는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주제가 흥미롭지 않아서 자꾸 혼자 있고 싶어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 할 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거야. 사람을 만나려면 같은 흥미를 공유할 사람을 다시 찾아야 한다. 주변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에 좀 당황했는데 이 생각에 대한 응답 같은 구절을 책에서 찾았다.

 

  관계를 끝내기로 결정한 것이 당신이든 친구든 절교는 고통스럽고 어려운 경험이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해두겠다. 인생에서 친구들과 애인들은 모두 다른 역할을 하고, 일정한 시기 동안만 당신 곁에 머무른다. 영화 <마디아 감옥가다>에서 타일러 페리가 연기한 마디아가 명언을 남겼다. 그녀는 어떤 사람들은 우리 인생에 거의 평생을 머물고 그 밖의 사람들은 계절처럼 오간다고 말한다. 두 종류의 사람과 그들의 역할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어떤 사람들은 나뭇잎처럼 쉽게 흩날리고, 남에게 많은 걸 주지 않고, 믿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 말하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뭇잎이다. 마디아가 말한 것처럼, 그건 괜찮다. 단지 그들이 나뭇잎이라는 걸 인지하고, 떠날 때 잘 보내주면 된다.

- 제스 베이커,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절교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주변인의 역할을 담당할 사람을 바꿀 시기가 온 것은 맞다. 그럼 나는 당장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나? 1월이 되고 약속이 확 줄었다.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이 단계는 자주 생략 된다-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날이 많아졌단 뜻이다. 평온해서 너무 좋다. 그렇다면 당장 새로운 이를 찾아 떠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앞선 관계를 정리하고 혼자 삭이는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외로워지면 새 여정을 시작해야겠다. 내가 무얼 원하는 지 똑바로 바라보는 지금, 기분이 차분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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