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 작가의 책에 빠져든 중학교 시절 이후 나는 항상 배낭여행의 로망에 젖어있었다. 결국 대학교 2학년 때 악착같이 돈을 모아 유럽 여행을 다녀왔지. 책 속 탐험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세계관을 확장하고 돌아왔더랬다. 여행을 원했던 게 너무 다행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중학교 때 로망의 중심이 한비야였다면, 고등학생 때 로망의 중심은 단연 오소희 작가였다. 주부가 남편을 두고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간다는 사실부터 대단했고 그 여행지가 편안한 곳이 아닌 나라임에 탄복했다. 하지만 결국 날 감화시킨 건 여행지에서 오소희 작가의 태도가 아니었을까. 새로운 사람들을 겁내던 중빈이 여행 중 온갖 어른들에게 예쁨을 받고 나서는 급기야 (몹시 매우 수상한) 카펫 장사꾼의 집에서 편안하게 두 다리 뻗고 쉬는 일화, 동네에서 거지로 치부되는 아이들의 상황에 화가 나서는 새 옷을 사주고 중빈과 놀게 놔두었다는 일화, 또래 친구들이 공 차고 노는 상황에 끼기 위해 중빈이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할 때 도와주지 않고 멀리서 지켜만 본 일화는 여전히 깊게 기억에 남는다. 이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여자가 될 수 있을까?
제목도 아름다워서 더욱 좋아했던 책들과 오소희 작가를 잠시 잊은 건 어느새 내가 여행보다는 현실에 침잠해버린 나이가 되어버려서일 테다. 매주 챙겨 읽는 채널예스 인터뷰를 살펴보다 오소희 작가가 있는 걸 보고 문득 반가웠다. 여전히 멋지다. 이제와 돌아보니 오소희 작가는 10년 전부터 이미 목소리를 제대로 내고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엄마라 멋지다 생각했는데 통념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사람이라 멋진 거였어. 엄마들도 매일 눈썹을 그리고 밖으로 나가자는 이야기에 크게 동의하며, 발간마다 따라 읽지 못한 많은 신간을 얼른 챙겨보려 한다.
세상에는 멋진 사람이 많다. 이미 알던 사람이건 새로 알게 된 사람이건.
내가 사랑했던 오소희 작가 여행 책 목록 :: (제목을 클릭하면 책 정보로 이동해요!)
-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 욕망이 멈추는 곳, Laos
- 하쿠나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 :: https://eybaek.tistory.com/45
● 엄지혜님과 함께한 채널예스 인터뷰 :: http://ch.yes24.com/Article/View/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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