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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0.5.21. 날씨가 좋은 아침이었고,

by 푸휴푸퓨 2020.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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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와 같은 출근길이었다. 언덕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가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 앞에 섰다. 버스가 2분 후에 오는군. 두리번거리는 나를 의자에 앉아계시던 백발의 할아버지가 좌우로 살펴본다. 아, 할아버지. 이 정류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말이죠. 제가 출근하는 대학교 학생들이 줄을 서는 위치가 정해진 정류장이랍니다. 저는 그 줄을 서기 위해 움직이는 거예요. 물론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아무도 없고 저 혼자 괜히 움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게 다 이유가 있어요. 잠깐 돌아보셨던 할아버지는 이내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타지 않을 버스가 다가온다. 할아버지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 휘적휘적 버스로 다가간다. 할아버지가 키가 큰 분이셨네. 혼자 생각하는데 문득 할아버지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응? 아디다스 스니커즈에 게스 청바지 로고가 선명하다. 허리도 전혀 휘지 않은 탄탄한 몸의 할아버지에게 잘 어울리는 차림새다.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노인의 몸에 갇힌 청년이 고군분투하며 악당을 찾아가는 내용의 영화로 넘어간다. 그 영화는 자세한 내용이 어떻게 되더라. 흠, 이 할아버지 속 청년은 건강하고 옷 잘 입는 사람이겠어.  실없는 생각을 하다 문득 왜 어르신은 게스 청바지를 입어서는 안 되는지 자문한다. 영화를 끌어당겨야 할만큼 비현실적이라 생각하는 머릿속이 부끄럽다.

  할아버지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더 늙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버스에 올랐다.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던 어젯밤, 나는 이제 나도 나이를 먹어 곧 서른이라며 광광 외쳤고 그런 막내를 보던 부모님은 그저 껄껄 웃었다. 어쩌나. 자리가 비어 있어 기분 좋은 버스 안에서 '나는 아직 어리다!'를 괜히 (속으로) 외쳐보았다. 아무렴. 아직 창창하다고.

 

 

조퇴길 오후의 하늘. 조퇴하기 딱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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