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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0.12.28. 조용한 일상을 사랑하는 I에게 코로나란

by 푸휴푸퓨 2020.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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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다 못해 5인 이상 집합 금지라는 초유의 명령까지 내려온 지금, 코로나의 장점이란 말을 쓰는 게 조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도 늘 필요한 법이니까. 코로나가 시작된 후 I인 내가 편해진 점을 적어보려 한다.

사람들과 왁자하게 어울리기 좋아하는 외향인의 성향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종종 집에 빨리 가고 싶어하는 내향인의 성향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설명을 요구한다.

 

  몇 달 전 남인숙 작가의 책을 읽으며 깊이 공감했던 구절이 있다. 외향인에게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지만 내향인은 늘 설명을 해야 한다고.즐거워도 9시쯤이면 집에 가고 싶을 수 있지 않나? 아무리 아껴도 너무 자주 만나고 싶지는 않지 않나? 나는 늘 내가 운동이 부족하거나 체력이 약해서 모임을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체력이 많이 늘어나도 약속을 원치 않는 마음은 그대로였다.

 

Photo by Tom Strecker on Unsplash

 

  그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약속 총량제를 만들었다. 누구와 언제 만나던 최소 일주일에 한 개 이상의 약속은 잡지 않기. 같은 친구라면 일정 수준의 간격을 두고 만나기. 자신을 보고 싶지 않냐며 서운하다 들이대는 친구들에게 단호히 약속을 미루는 일이 이어졌다. 네가 소중한 친구인 것과 내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일은 다른 거야. 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시작됐다. 단호박이 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약속의 간격이 길어졌다. 내심 정말 반가웠다. 왜 약속을 나가는 게 힘든지 –어차피 결국 상대는 이해하지 못할-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됐거든.

 코로나를 이유로 들면 아쉬워하면서 겨우 약속을 미루던 친구도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지자 먼저 만남이 어렵겠다는 말을 했다. 네 입에서 만나기 힘들겠다는 말이 나오다니! 12월이 되어도 송년 모임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나에게는 진심으로 편안한 한 달이 지나갔다. 신년이 되기 전에 만나야 한다며 몇 달씩 연락하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만나야 했던 12월. 서로의 일정을 맞추다 보면 가장 힘든 월요일 약속도 작년 12월엔 매주 있었다. 대체 왜, 왜! 우리가 시급한 일이 있나요? 신년에 만나면 모두 너무 늙나요! 송년회란 이름이 붙으면 거절도 연기도 어려웠던 내게 12월은 정말 고역의 달이었다. 그런 12월이 이렇게 고요할 수 있다니. 이렇게 평안하다니!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하냐는 질문도 힘들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특별한 날을 열심히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성탄절도 딱히 감흥이 없었다. 당연히 주변에 자랑할만한 멋들어진 계획도 없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싫지도 않았다. 격식 있는 코스요리도 온갖 장식을 달아 놓은 파티도 내가 필요가 없단 말이야. 겨울에 추워서 여행은 안 간다고요! 하지만 11월만 되면 남자친구와는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 예약은 잘 됐는지 질문이 쏟아졌다. 늘 답이 궁색했지. 별 일 안하기로 했어요. (아니 왜!) 그냥 조용한게 좋아서..? (그래도 크리스마스인데!)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크리스마스가 모두 적당히 방에서 보내야 하는 날이 되면서 아무도 내게 어디 좋은 곳 가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왓챠에 해리포터가 올라왔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올해도 나와 남자친구는 언제나와 비슷하게 소소하지만 즐거운 데이트를 했다. 따뜻했고, 또 1년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다. 누구도 우리의 데이트와 행복에 의문을 달지 않았다. 화려한 활기보다 조용한 따뜻함이 좋은 사람도 있단 걸 이제 다들 조금은 알게 되었을까.


  최근 며칠은 언니와 함께 내내 미니어처 하우스를 만들었다. 몇 시간을 들여도 손바닥만한 면적도 채우지 못하는 일. 코로나 전에 시작했다면 그게 재미있는지나 왜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들었을 테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묻지 않지. 모두가 코로나로 인한 따분함 때문이라고 내심 짐작하고 넘어간다. 나는 코로나가 없어도 집에서 사부작거리기를 좋아했지만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넘어가는 지금이 참 편하다.

  코로나는 내가 힘내서 설명해야 했던 많은 것에 설명이 필요없게 만들어 주었다. 타인이 미루어 짐작하는 내용이 내 생각과 꼭 맞지 않더라도 지금이 훨씬 편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지금까지 이렇게 쉽게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왔을까. 코로나가 지나가도 세상이 조금 더 I 친화적인 모습으로 남기를 조심히 바라본다. 조용해도 행복하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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