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니가 결혼했다.
지난 토요일, 언니가 드디어 결혼을 했다. 옆에서 지켜본 결혼 준비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을 구하는 과정이 빠졌기에 이만하지, 집까지 구했으면 더 어마어마했을 일이다. 집안의 대사가 왜 대사라 불리는지 다시 깨닫게 됐다.
많은 사람이 내게 ‘서운’하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의아했다. 언니가 즐겁게 결혼하는데 내가 왜 섭섭해야 하지? 너무 반복적으로 많이 듣게 되자 고민하게 됐다. 결혼 후에도 언니가 집을 떠나지 않아서 덜 서운한지 몰라. 적당히 타협적 생각을 떠올리다가 결론을 냈다.
나는 언니의 1순위에 내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참 잘 맞는 하나뿐인 자매지만, 주말 계획이나 휴가 계획 1순위에 서로가 올라 있지는 않았다. 우리는 20살 이후 공유하는 시간이 적었다. 그래. 결혼한다고 언니가 내 언니가 아니게 되지도 않는 마당에 함께 보낼 시간도 평소 같은 수준이니 여러모로 서운하지 않은 것이다. 형부에게 언니를 빼앗기기는 무슨. 언니나 나나 상대를 소유한 적이 없었거늘.
다만 부모님의 서운함은 이해되었다. 아빠는 입을 앙다물고 언니와 입장을 했다. 품을 떠나는 딸을 보면서 서운하지 않을 수 없겠지. 나마저 결혼하겠다면 정말 서운하겠다고 아빠는 넌지시 말한 적도 있었다. 나는 결혼식장에서 언니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부모님이 늙어버릴까 걱정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두분 다 떠나버리면 어쩌지. 손 한 번 더 잡아볼걸 그랬다고 또 후회하면 어쩌지. 막상 집에 가면 손이고 뭐고 늘 하던 잔소리를 하느라 바쁘지만.
언니의 결혼 생활이 행여 두 분을 속상하게 하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부모님을 위해 언니가 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언니의 결혼이 서운하진 않지만 우리 가족의 시간이 흐르는 건 싫다. 부모님의 시간을 붙잡고 싶다.
2. 피로가 몰려왔다.
구구절절 왜 피로했는지를 적어냈다 싹 지웠다. 구차하기도 하지. 회사 일과 언니의 결혼 준비가 겹쳐 2주간 많이 무리했다. 결혼식 당일도 당연히 바빴지만 저녁에 큰어머니, 큰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늦게 집에 들어갔다. 다음날에도 결혼식 마무리로 하루 종일 일을 했다. 그리고 월요일에 출근했더니 웬걸, 주말에 충전은커녕 있는 에너지도 모두 방전된 상태가 되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연차를 아끼고 아끼는 나지만 도대체 견딜 수 없어 화요일에 연차를 냈다. 신혼 여행을 가서 신난 언니가 보내는 카톡을 즐겁게 받지 못한다면, 언니는 쉬어서 좋겠다며 불퉁한 마음이 올라온다면 그건 내가 정상이 아니란 뜻이었다. 그렇게 방전된 상태로 퇴근하자마자 침대에 누워있는데 아빠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이가 그정도는 거뜬히 견뎌낼 수 있다”나? 으레 하는 말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내심 서러웠나 보다. 밥을 먹다 어느 포인트엔가 결국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터뜨렸다. 해달라는 대로 늘 다 해주지 않느냐, 아빠 회사 답례품을 단순하게 바꾸자고 굳이 말하면 정말로 힘들어서 그런다고 왜 한 번쯤 생각해주지 못하냐고. 내가 바쁘다고 몇 번을 말했냐고 외쳐가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내가 안타까웠던 아빠는 용돈이라도 주어야 하나 했고, 나는 돈이 아니라 고생했다는 말 정도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수고했다는 말을 아주 풍성하게 들었다.
폭풍 피곤의 원인이 체력의 문제와 함께 약간의 서러움이란 점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결혼식장에선 내내 분주해도 으레 그러려니 하는 시선만 받았다. 언니는 준비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나는 서운하지 않느냐는 말만 들었다. 일을 처리하느라 늦게 들어간 식장에서 나는 앉을자리조차 없었다. 나의 잡일은 당연했고 곧 시집갈 언니의 바쁨은 안쓰러웠다. 내가 주인공이 아닌 행사이니 주목받지 못하는 건 당연했지만, 일하고도 그 정도쯤이란 시선은 싫었던 것이다.
한바탕 하고 나니 웃기게도 마음의 피로가 어느새 가셨다. 저녁을 먹고는 엄마와 신나게 식재료를 정리했다. 몸의 피로는 쉬는 화요일 내내 두 번의 낮잠을 자며 풀어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수요일의 야근을 했고 목요일의 PT를 한다. 이제 다시 평범한 일상이 돌아오겠지. 큰 일이 크고 작게 지나갔다. 다시 일상이다.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3.19. 어른이 된다는 의미 (0) | 2021.03.19 |
---|---|
2021.3.16. 30대에는 저변을 넓히며 살겠소 (0) | 2021.03.16 |
2021.1.24. 보풀이 나풀나풀 (0) | 2021.01.25 |
2021.1.14. 첫 부서라는 장(章)을 마무리하며 (0) | 2021.01.14 |
2021.1.13. 팡팡 파라파라 팡팡팡 (0) | 2021.01.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