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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1.8.23. 괜찮다 시바

by 푸휴푸퓨 2021.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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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일파스텔을 드디어 샀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취미를 찾으려다 꽂힌 것이니 벌써 고민한 지 1년도 넘었다. 이쯤되면 살만 하다고 스스로 허가를 내렸다. 미술학원에서 제공하는 파스텔과 종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돈을 내고 미술학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데 마음에 안드는 재료때문에 굳이 불편할 필요가 있나? 학원비가 아깝다는 생각도 했지만 미대생 선생님의 흘러가듯 나오는 팁에 대한 값이라 생각하기로 했다(타인의 노하우 값은 언제나 비싸 보이는 법). 갖고 있는 색연필과 조합하면 재미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마음만은 이미 예술가다.

 

2.

  주말에 남자친구와 자주 가는 이디야가 있다. 다른 이디야와 비교하면 제법 넓은 편이다.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주문을 받는다. 동선이 좋은데다 텀블러도 받아주어 여러모로 편하다. 마감시간까지 머무는 편인데 마감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가족인듯 보인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경영이 됐는지 원래 그랬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코로나가 지속될 수록 손님이 점점 줄어든 건 안다.

  이번 주말에도 이디야를 찾았다가 아연실색했다. 이디야 코앞에 메가커피가 생겼다. 말 그대로 코 앞인 것이, 이디야 문에서 10걸음쯤 걸으면 메가커피에 들어갈 수 있다. 평일이면 통근 인파가 밀어닥치는 곳이니 메가커피가 들어온다고 이상하지는 않다. 그래도 이건 좀, 이건 좀..

  놀라긴 했지만 평소에 메가커피도 좋아했던 터라 의리도 없게 메가커피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이 정말 들어올거냐는 뜨악한 표정을 짓더라고? 마감이 가까웠나 싶었지만 당장 닫을 시간은 아니었다. 적나라한 표정에 놀라 이디야로 발길을 돌렸다. 쳇, 싫음 말고.

  음료를 받아온 남자친구의 손에 쌀과자가 들려 있었다. 놀랐지만 이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메가커피를 기웃거린 우리가 보였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앞으로 저 메가커피에는 가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메가커피 주인도 딱히 대부호는 아니리란 사실을 안다. 알바생에게 손님은 반갑지 않은 상대임도 이해한다. 그래도 나는 그곳에 있어 고마운 가게에 가서 만나면 기쁜 손님이 되는 편이 좋다.

  어쩌다 거기에 메가커피가 들어왔을까.

그리고 이디야에서 너의 버즈 케이스를 구경했지

3.

  이번주에는 백신을 맞는다. 걱정과는 다르게 백신을 맞은 가족들 모두 크게 아프지 않았다. 나도 별 일 없으리라 생각하다가도 혹시 모른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남자친구에게 갑자기 큰 일이 날 상황을 대비해 유서를 미리 써두면 어떻겠느냐 물었더니 대체 무슨 소리냐며 기겁했다. 당장 쓰이지 않더라도 마음도 점검할 겸 짧게 써보면 나쁘지 않겠지. 호화로운 자산은 딱히 없고, 내가 나간 자리가 깔끔하게 정리되도록 군더더기 없이 지내야겠다.

  *블로그를 둘러보니 이미 유서와 거의 흡사한 글을 써뒀더라고. 딱 이정도면 된다. (클릭)

 

[2021 서른] 14. 삶이 6개월 남았을 때 하고 싶은 5가지는 무엇인가요?

6개월이 남았다고 해서 일상을 바꾸고 싶지는 않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맛있는 저녁 먹고, 남자친구와 데이트하고 부모님과 수다떨고요. 이 생활을 그대로 이어가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몇

eybaek.tistory.com

 

4.

  일요일에 PT를 했다. 새 PT 선생님은 정말 실력이 좋다. 어떤 자세를 할 때 발이 왜 돌아가는지, 근육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완벽하게 파악한다(덕분에 숨이 깔딱 넘어가기 직전까지 운동을 시킨다). 쉬는 순간 조차 자세를 정해준다. 너무 좋고 너무 힘들다.

  숨이 차다 못해 멎을 것 같고 근육은 터질듯이 당겼지만 그래서 살아있다는 감각이 생생히 들었다. 사무실에 앉아 멍한 상태를 유지할 때보다 더욱 확연히 느껴지는 생(生)의 감각. 내가 숨을 쉬고 근육을 쓰고 에너지를 공급하는 몸. 힘들 때 고통을 느끼는 몸. 그 몸에 내가 있나니.

  아침에 일어났더니 누가 두드려팬듯 온몸이 아팠다. 전투적으로 먹을 힘이 없어 아침을 남기고 나왔다. 이놈의 PT, 내일 또 해야 하는데. 정말이지 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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