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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1.12.7. 퍼블리셔스테이블을 겪은 주말에 대한 회고

by 푸휴푸퓨 2021.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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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작은 책을 냈다. 첫 책이 나올 때도 두 번째 책이 나올 때도 나는 늘 응원을 했다. 피드백을 하면서 친구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했다. 조용히 집에 있을 표정으로 주말이면 좋은 것을 찾아 서울을 구경하는 친구는 작은 책에 관해서도 행동력이 좋았다. 퍼블리셔스테이블을 신청했다는 소리에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나도 부스에 있고 싶어!

  부스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다. 친구는 판매 품목을 정하고 발주를 냈다. 팀복을 맞췄고 창가 자리를 배정받았다. 큰 창 앞이라니, 작은 공간 안에 기차놀이처럼 꼬불꼬불했던 어느 해의 퍼블리셔스테이블을 떠올렸다(거기도 디뮤지엄이었나!). 서울역에서 열렸던 해에는 제법 넓었던 듯도 하고. 나도 참 매번 퍼블리셔스테이블을 갔구나.

  동생과 행사 첫 날을 보낸 친구는 창가가 덥고 눈부시다고 했다. 사람이 꽉 찼던 과거의 언리밋같은 분위기가 아니라고도 했다. 하루 만에 지쳐버린 느낌의 메시지를 보고 단단히 각오를 했다. 엉덩이가 아프고 더위에 찌들게 되겠구만. 나는 금요일엔 관람객 입장으로, 토요일엔 판매자 입장으로 퍼블리셔스테이블에 참가했다. 이틀의 방문을 통해 느낀 점은 아래와 같다.

 

1. 작가에게 독자와의 직접 대면은 큰 힘이 된다.

  늘 구입하는 입장이었기에 창작물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고마운지 처음 알았다. 친구의 책 주제와 자신의 이야기 엮어 말씀하시는 분이 다녀갈 때마다 마음이 벅차올랐다. 상품을 팔아 돈을 벌고 싶은 마음보다 더 많은 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온 이유는 뭘까, 이 엽서가 왜 예쁘다고 생각하실까?

  물건을 구입하며 감정을 많이 표현하지 않는 성격인데 앞으로 좋으면 좋다고 크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돌아오는 반응이 멋쩍음이나 무뚝뚝함이라도 상관 없다. 누군가에게 내심 흐뭇함을 유발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밌는 일이다.

 

2. 독립출판 유행이 지나갔다.

  처음에는 의외의 연령대가 많이 방문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님이나 셀러로 나온 자녀를 찾아왔을 듯한 중년의 관람객들이 제법 있었다. 젊은이도 스타일이 천차만별이었다. 명품 미니백에 구두를 신은 사람과 에코백에 벙벙한 바지를 입은 사람이 섞인 물결. 성수에 데이트하러 왔다 들렀을까? 에코백은 어디서 샀을까? 사람 구경을 좋아하는 터라 재미있게 살피다가 몇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다양하다는 건 한편으론 공통된 취향이 없다는 것. 두루두루 들러보는 행사에는 집중 타깃이 없었다.

  독립출판 열광하는 사람이 '우리의 정서'에 취해 신나서 물건을 사는 분위기는 영 느껴지지 않았다. 멀찍이 훑어보는 방문객을 쳐다보며 수줍게 (혹은 시크하게) 앉아있는 판매자가 많았던 건 가까이서 열렬하게 쳐다보는 사람의 비율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공간이 넓게 분포되어서 더 그렇게 느낀걸지도 모르지. 열정적인 수요는 줄었는데 공급은 하릴없이 늘어났다. 누구나 책을, 엽서를, 스티커를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예전의 그 매니아틱한 분위기는 돌아오지 못하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3. 자영업은 보통 일이 아니다.

  12시부터 9시까지의 마켓 오픈 시간을 위해 내가 디뮤지엄에 도착한 건 11시. 총 10시간을 한 장소에서 앉아있자니 여간 고통스러운게 아니었다.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가 배겨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고, 해가 들이치는 시간에는 햇볕에 등이 불타오르는 기분을 그대로 견뎠다. 내 등짝은 그래도 괜찮아. 지나가는 손님이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매대를 훑어보면 유리창에 영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마 석양은 예뻤으니 다행이지.

구경갔던 날엔 괜찮아보였던 유리창 건물

  긴 시간동안 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머무르진 않을까 기대하고 있자니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할 때보다 몇 배의 진이 빠졌다. 나야 취미 같은 하루였지만 혹 생계가 걸려있으면 부담감이 얼마나 무거울까. 매일 가게 문을 여는 모든 자영업자에게 존경의 마음이 절로 샘솟았다.

 

4. 진열은 영리하게 해야하다.

  이런 행사에 참가하는 게 처음이었던 친구는 첫날 주어진 테이블을 꽉꽉 채워 물건을 올려두었다. 손님에게 물건이 보이기는 많이 보였는데 문제는 부스에 앉아있는 우리들이었다. 종류별 봉투와 스티커, 물건의 재고가 뒤죽박죽이었다. 무언가를 꺼낼라 치면 이리저리 뒤적여야 하니 자세의 피로도가 높았다.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를 편히 올려두기 어려운 건 물론이고. 친구는 매일같이 진열을 바꾸었고, 점점 더 적은 물건이 테이블 위에 남아 있었다.

이럭저럭 정리를 해 보았다

  책과 북커버만을 판매하신 옆 부스의 작가님은 이런 행사에 많이 참여해보신 듯했다. 테이블 위에 샘플 책과 북커버를 단순하게 진열하시곤 본인의 자리를 많이 남겨두셨다. 진열의 화룡점정은 안내문에 붙인 산뜻한 '말 거셔도 됨!' 문구. 작가님은 하루 종일 노트북을 하거나 코바늘 뜨개질을 하면서 능숙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 작가님을 보며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은 말을 걸고, 편히 구경하는 사람은 구경을 했는데 분위기가 참 편안해 보였다. 본인도 편하고 상대방도 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그런 게 노하우려나.

 

  부스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 이번 퍼블리셔스테이블에서 내가 무엇을 기대했나 떠올려 보아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왜 몇 년 전 서울역 퍼블리셔스테이블에 갔을 때만큼 심장이 뛰질 않았을까. 이번 행사로 '아마추어 출판물'에 대해 시대의 반응도 변하고 나도 변했음을 느꼈다. 그래서 앞으로 글을 쓰기가 싫어졌냐고? 현실은 그 반대여서, 나도 언제까지 메아리 없는 블로그 글만 쓸게 아니라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글의 세계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줍은 글 말고 읽고 싶은 글을.

석양과 남산타워와 하얀 강아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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