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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1.1.25. 나를 찾아서

by 푸휴푸퓨 2022.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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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릿속이 산란하다. 자극은 많고 기억에 남는 건 없다. 사소한 실수가 잦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새카맣게 기억나지 않는 일이 많아진다. 서른에서 서른하나로 가는 변화인가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건 심하다. 흐리멍덩한 일을 하더니 사람도 흐리멍덩해지냐던 아빠의 말이 맞았다. 명료하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쓸데 없는 자극에 나를 노출했다. 남는 것 없이 시간만 버렸다면 이렇게 후회되지는 않았을 테다. 읽으면 기분만 나빠지는 미야베 미유키 책은 무엇하러 읽었을까. 인스타그램과 네이버와 유튜브는 기억을 다 앗아갔다. 내 안이 텅 비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수준이었다. 쓸데없이 들어온 이야기만 많아서 목요일쯤 되면 월요일이 마치 한 달 전 같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저녁에 20분, 아침에 10분 명상을 시작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무심코 떠올리는 생각은 무엇인지 관찰한다.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인지 아침에는 회사 생각이 그렇게 나더라. 주로 쓸데없는 걱정이라 생각이 떠오르면 이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는 상념으로 이어진다. 관찰하지 않았다면 걱정만 하고 끝났을 텐데 내가 나를 다독이니 확실히 좀 나았다. 명상하는 법은 모르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그냥 나에게는 가만히 있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창조성과 열린 상태, 그것에 필요한 지루함"
제니 오델 스탠퍼드대 미술사학과 교수,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中

 

 

2.

  마스크는 지긋지긋하지만 코로나가 좋은 이유는 약속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평일 저녁에는 운동을 하거나 가족과 저녁을 먹는다. 토요일엔 데이트를 하고 일요일엔 집에서 쉰다. 일요일엔 집 청소와 독서를 꼭 하려고 애쓴다. 잠시만 방심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핸드폰에 뺏겨 낭비하게 된다.

  지지난주에는 '불쉿잡'을, 지난주에는 '인생은 실전이다'를, 이번 주에는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를 읽었다. 주중에는 시인 마크 스트랜드가 쓴 호퍼의 그림 해설, '빈방의 빛'을 다시 읽었다. 평일에는 머리가 아파서 비문학을 읽기 싫고, 주말에는 현실적이지 않은 문학을 읽기가 싫다. 어찌어찌 균형이 잘 맞다.

  책을 읽으며 이 책에선 어떤 문장을 발췌할까 눈에 불을 켰던 때도 있지만 이제는 편안히 글이 흘러가게 둔다. 그러다가도 눈에 딱 걸리는 구절이 나오면 상당히 짜릿하다. 흔치 않은 일이기에 아무 문장도 따지 않는 책이 늘었다. 기억이 짧아지면서 매주 무슨 책을 읽었는지 금방 잊게 됐다. 인상적이지 않아서 사라진 걸까 내가 부족해서 잡지 못한 걸까. 기억을 날아가게 놔두어야 할지 억지로 붙잡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무튼 지난 3주는 저런 책을 읽었다고 기록하는 바이다.

 

 

3.

  김혼비의 글이었던가. 꼰대 사절이라고 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내게 조언을 하지 않게 되어 나도 모르는 새 내가 꼰대가 되어버린다고. 그래서 이제 꼰대 환영이라고. 그 이야기에 탄복하여 나도 여간해서는 마음을 열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회사생활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면 그 말이 정말이지 맞다. 서로 좋은 이야기는 적당히 해도 싫은 이야기를 싫은 소리 감내해가며 해주지는 않는 관계가 지천에 가득하다. 본인이 모르는 본인의 이야기가 기관 내에 파다한 사람이 대체 몇 명인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전달해줄 사람은 없다. 그럴만한 애정이 있기는 쉽지 않다고,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며 이해한다.

  그렇게 나도 본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1인이 되어 이야기를 향유하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득 걱정되는 것이다. 나는 모르는 내 이야기가 어디선가 떠돌지 않을까. 나에게만 말하지 않는 사실이 있는 게 아닐까. 나도 귀 닫고 입 막은 사람으로 치부되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등줄기가 서늘하다. 싫은 표정 짓지 않고 최선을 다해 들어볼 테니 나에게는 말해 달라고 부탁은 해 뒀는데, 새삼 내가 어떤 사람일지 반성했다. 부드럽게 휘어져야겠다고 오늘도 딱딱한 통나무는 다짐하였다, 고 교훈적으로 마무리하면 되려나.

 

Photo by Anthony Ievle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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