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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7

[어쨌든, 도서관] #6 신간은 없어도 구간은 가득히 내가 다니는 도서관은 서가 사이에서 길을 잃을 정도로 책이 많다. 책 속에서 길을 잃는 일은 말만큼 낭만적이지는 않다. 다닐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건 길치이기 때문일까. 제목도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서가 사이에 갇혀 예술 분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머리 위 팻말이며 바닥의 표시선을 부지런히 따라간다. 출구는 또 어디야. 책이 가득 찬 도서관이지만 생각보다 없는 도서가 많다. 국내에서만 한 해에도 몇 천 권의 책이 나오니 현실적으로 모든 책을 다 구입하기란 불가능하다. 예산뿐만 아니라 도서관의 수서 원칙에 따른 제약도 있다. 각 도서관은 자료를 구입하는 기준이 있다. 학술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대학 도서관은 연구를 위한 책이 일반 도서보다 중요하다. 당연한 일이다. 도서관의 책 구입 속도는 출판 .. 2022. 1. 26.
2021.1.25. 나를 찾아서 1. 머릿속이 산란하다. 자극은 많고 기억에 남는 건 없다. 사소한 실수가 잦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새카맣게 기억나지 않는 일이 많아진다. 서른에서 서른하나로 가는 변화인가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건 심하다. 흐리멍덩한 일을 하더니 사람도 흐리멍덩해지냐던 아빠의 말이 맞았다. 명료하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쓸데 없는 자극에 나를 노출했다. 남는 것 없이 시간만 버렸다면 이렇게 후회되지는 않았을 테다. 읽으면 기분만 나빠지는 미야베 미유키 책은 무엇하러 읽었을까. 인스타그램과 네이버와 유튜브는 기억을 다 앗아갔다. 내 안이 텅 비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수준이었다. 쓸데없이 들어온 이야기만 많아서 목요일쯤 되면 월요일이 마치 한 달 전 같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저녁에 20분, 아침에 .. 2022. 1. 25.
2022.1.18. 그래서 이름은 뭐라고 짓지 1. 둘레길을 또 한 코스 걸었다. 엄마의 패딩과 신발과 양말을 빌렸고 엄마의 조언대로 따뜻한 물을 싸갔다. 서른이 넘었지만 부모님 없이는 못 산다. 우리 집 육아는 언제까지 계속되려나 싶은데 여전히 곤란하면 엄마를 부른다. 얼마 전에는 엄마가 가족 카톡방에 '아가들 대답하세요'라고 올려 화들짝 놀랐다. 아가 치고 제가 좀 크네요. 지난 번보다 체력이 늘었다고 체감했다. 남자친구에게 징징대지 않을 수 있어 새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나의 남는 체력을 본 너는 체력을 털어야 한다고 손을 끌고 언덕을 달렸다. 끌고 간 사람도 끌려 간 사람도 숨이 턱끝까지 찼다. 벤치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는데 남이야 어찌 보건 우리는 재미가 있었다. 의미 없는 장난만큼 꿀잼인 것도 없지. 꿀잼만큼 꿀맛도 좋아서 달달한 막걸.. 2022. 1. 18.
2022.1.12. 겨울 냄새가 난다 1. 공기에서 겨울 냄새가 난다. 훈훈한 도서관 문을 열고 나가면 서늘한데 편안한 향이 밀려온다. 이 냄새를 맡을 때 나는 좋아하는 너의 손을 잡고 싶다고 생각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에 익숙해지면 분간할 수 없는 냄새지만, 언덕길을 내려가다 찰나를 곱씹으며 두고두고 좋아한다. 온기를 그리워하는 향이다. 혼자라면 그립지만 둘이라면 따뜻할 향. 2. 대다수의 직장인이라면 매일 느낄, 서로를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하는 분위기가 사뭇 낯설어 마음이 씁쓸했다. 몇 년 전의 나라면 눈도 깜짝 하지 않았을 일인데 유난하게 받아들이는 내 태도가 오히려 어색했다. 너 그동안 좋았겠다고 나에게 스스로 면박을 줬다. 돈 벌러 나오는 곳에서 몇 년쯤 편안할 수 있었다는 건 큰 복이다. 앞으로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동요.. 2022. 1. 12.
[Book Review] 불쉿 잡 - 데이비드 그레이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가장 놀랐던 부분은 사무실에서 빈둥대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대학생 때는 쉬는 시간을 쪼개가며 책을 읽었는데, 여기서는 몇 시간씩 일이 없어도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바쁘지 않아도 무조건 바쁜 척을 해야 했다. 새로 일을 받고 싶단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내 일은 상사의 책임 하에 있기 때문에, 그가 원치 않으면 나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회사를 한 차례 바꿨지만 비슷한 곳이었다. 책임을 적게 지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게 익숙해졌다. 적당히 노는 법을 너무 잘 알아서, 정신 차리고 종일 일하면 기가 다 빠진다. 이런 내 모습을 좋아하지는 않아서 불안에 떨었다. 모두가 달려가는 세상에서 나만 도태되는 듯한 마음. 불쉿 잡은 너만 그렇지.. 2022. 1. 7.
누워서 과자먹기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침대에서 빌려온 책(주로 추리만화나 판타지)을 보며 과자를 먹는 게 하루의 즐거움이었다. 돌아보면 침대에 가루가 떨어진다는 잔소리를 하지 않은 엄마는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였다. 어쨌거나 신나게 과자도 먹고 저녁도 잘 먹었다는 그런 이야기. 요즘은 누워서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더이상 젊음이 건강을 채워주지 않을 때, 절제가 필요할 때 참게 된 작은 일이다. 목의 이물감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첫 위내시경을 받고 나서야 이름을 알았다. 먹고 누우면 신물이 올라오는 역류성 식도염이랬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먹고 눕는 자세를 하지 마세요. 넵 선생님. 운동과 건강관리 덕에 식도염은 사라졌다. 그래도 조심한다. 하지만 여전히 침대에서 간식을 먹는 건 행복한 일이다. 충만한 삶에는 절제가 중요.. 2022. 1. 5.
2021.1.4. 2022년이 밝았습니다 1. 새해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변한 게 없다. 새로운 사건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왜 이렇게 흥이 나지 않는지 놀라울 지경인데 작년과 달라질 게 없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올해 다짐하는 건 메모를 더 많이 하자는 것. 정신없다고 생각해도 예전에는 모든 게 깔끔했는데 이제는 자꾸 구멍이 난다. 기억이 흐릿해진다. 흐리멍덩한 사람이 될 순 없지. 정신을 빠짝 차리기로 했다. 2. '불쉿 잡'이라는 책을 읽었다. 내가 왜 첫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빈둥거리는 시간은 이리도 많고 책은 읽을 수 없는지,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뒤 상사의 트로피 같은 자리에 앉아 모멸감을 느꼈는지 잘 설명해주는 책이었다. 3. 인사이동이 있었지만 나는 이동하지 않았다. 있던 사람이 나가지도 않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만 했다. 마음 .. 2022.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