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책의 의미를 돌아보자면
좋아하면서 지겨워하면서 책을 계속 읽는다. 책이 가득찬 곳에 굳이 일하러 왔다. 이번 주말에도 책에 취해 기분이 좋았다. 책은 뭘까 고민하다 4가지로 책을 분류해보았다.
첫 번째, 무심코 펼쳐든 책인데 마침 딱 필요했던 문장이 있는 경우. 그냥 읽은 책인데 고민의 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상황과 너무 맞춤해서 어쩌다 이런 문장이 내게 왔나 싶다. 책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순간인데, 나는 우연히 심보선 작가의 시를 읽고 숨이 멎었다. 책은 이제 내게 구원이 됐다. 종종 수호천사가 오기를 기다린다.
나는 또 상상한다.
나의 수호천사가 세상의 모든 책들을 미리 읽어 놓고
나의 오만과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우연을 가장하여 내 발치에 그때그때 적절한 책들을 떨어뜨려준다고.
마치 혀가 없는 것처럼, 심보선
두 번째, 어느 분야에서 비어있는 부분에 딱 들어맞는 내용이 있는 경우. 마치 한 가지주제의 책을 모아둔 책장에서 한 꼭지가 부족해 빈자리가 남아있을 때 거기에 꽂을 책을 발견한 것과 같다. 머릿속 빈자리에 꼭 들어맞는 책을 찾으면 희열을 느낀다. 때로는 그 자리가 빈 줄도 몰랐는데 읽고 나니 드디어 책장이 꽉 찼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작년에는 '숲속의 자본주의자'가 그랬고, 이번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법'이 그랬다.
세 번째,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읽는 경우. 가벼운 일본 소설이나 국내 에세이를 많이 읽는다. 대충 두 시간이면 다 읽을 책이다. 작년에 발견한 마음에 드는 소설가는 '쓰무라 기쿠코'. 요즘은 작가를 발견하기보다는 밀리의 서재에서 높은 순위인 소설을 적당히 선택해서 본다(밀리의 서재가 책 추천 시스템을 좀 더 정교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이다). 킬링타임 영화보다 킬링타임 소설을 먼저 찾는 건 그저 내 취향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예전보다는 영화를 선택하는 비율이 늘었다. 나쁘지 않다.
네 번째, 정보를 찾아 헤메는 경우. 나는 구식이라 새로운 걸 시작할 때 일단 그 분야의 책부터 찾아본다. 몇 권을 읽고 나면 개략적인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어서 좋다. 재테크를 시작하려고 도서관의 재테크 분야를 다 뒤적거렸던 때가 있었지. P2P 투자를 해보려고 구할 수 있는 P2P 책은 다 찾아보았다. 비트코인을 사보기 전에 블록체인 기술 책을 몇 권은 읽어야 안심이 된다. 지금은 AI기술에 관한 책을 집에 빌려다두고 외면하는 중인데, 반납 기한 내에는 꼭 읽겠지... 읽겠지... 정보 검색이 포털에서 유튜브로 넘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어쩐지 나는 아직도 교과서에 머물러 있다.
넷플릭스 구독을 시작하면서 한 달쯤 책을 아예 읽지 않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책과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다독, 다작, 다상량(多讀, 多作, 多商量)이 인생의 근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의 오랜 친구들이 영상에 밀려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