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2025.3.11. 버티기가 힘에 겹기도 하다

푸휴푸퓨 2025. 3. 1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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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편이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는 행위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젊은 날의 아빠가 그랬고, 엄마는 매번 아빠를 마중나갔다. 택시에서 내리다 관절이 상하거나 핸드폰이 부서지거나 잃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 고생을 고스란히 지켜본 나는 정신을 잃도록 술을 마시는 걸 몹시 싫어해서, 술을 선호하지 않는 남자친구를 만난 게 행운이었다.

  어쨌거나 남편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만취해서 들어와 양말도 벗지 않고 침대에서 쿨쿨 사선으로 잠드시더니 아침에 퉁퉁 부운 얼굴로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아빠의 조기교육 덕분인지 화도 나지 않았다. 카카오T덕분에 택시 번호와 기사님 연락처를 알았다. 핸드폰에 전화를 거는데 여러번 거절을 당했다. 팔아버리려는가 싶어 급히 핸드폰 추적을 시작했다. Samsung Find는 핸드폰 인증이 필요해서 실패했고, 구글 내 기기찾기에 들어갔다. 차도로 이동하는 서울 오른쪽 어드메의 핸드폰이 보였다. 기술의 발달 덕에 실시간으로 핸드폰이 멀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그 와중에 신기했다.

  사례하겠다고 기사님께 추가로 문자를 넣고 추적을 보고있으려니 네 핸드폰으로 내게 전화가 왔다. 자고 있었다고, 밤에 운행하는데 아침에 전화를 하니 어떻게 받느냐는 말이 들렸다. 방금 차로 이동하신 사람은 대체 누구신가요. 기사님이 어떻게 너의 핸드폰의 잠금을 풀어 전화를 걸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하간 밤에 돌러주러 오시겠다는 이야기에 감사하다고 했다. 시간 약속을 잡고 상상을 했다. 아마도 아침부터 핸드폰을 처분하려 생각했을 기사가 핸드폰 화면에 분실폰이니 뭐니 하는 메시지가 뜨고, 자신의 핸드폰 번호도 털리고, 사례까지 해준다는 연락을 받으니 굳이 위험하게 내다 팔 이유가 없어졌지 않겠는가. 저녁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리라 결심을 했다. 핸드폰 위치 추적 덕분에 기사님이 어느 빌라에서 주무시는지까지 훤히 보였다(디지털 세상이 이렇게 무섭다).

  저녁이 되어 핸드폰은 돌아왔고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10만원의 사례로 해결할 수 있다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회사에 출근해 점심을 먹으며 남편이 택시에서 핸드폰을 두고 내렸다고 이야기를 풀었다. 본인이 먼저 더 화를 내서 진정하라는 T적 권유나 했지 위로를 하거나 화를 내지는 못했다고 했지. 말하다보니 아니 대체 왜 그럴까 하며 약간은 씩씩대는 감정이 올라오려는 찰나, 듣고 있던 동년배 선생님이 아직 그릇은 안깨었느냐며 웃었다. 깨진 유리컵에 화를 내면 어떻게 자기가 다쳤을까봐 걱정은 안해주고 그릇만 걱정하냐며 서운해 한댔다. 애초에 꼼꼼히 살면 그릇도 핸드폰도 무사하지 않아요? 역시 남자는 뭔가 다른가보다고 낄낄 웃고 감정을 풀었다.

  그러나 화가 나지 않는 것과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별개의 이야기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술을 마시는 행위를 납득할 수 없다.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멈추는 분별이 왜 어려운지 모르겠다. 술 많이 마시는 사람이 싫다고 결혼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다. 나도 안다. 수많은 술 좋아하는 사람에 비해 너는 정말 술과 거리가 멀다는 걸. 하지만 가끔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본 나는 가끔이라도 말이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고만 생각한다. 내 감정이 어떻든 무방비한 상태를 아무데서나 노출하는 건 무모하다. 안전한 곳에서만 풀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못할만큼 세상이 덜 무서운가 싶기도 하다. 하긴, 만취한 상태에서 택시를 타면 위험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일생에 없겠다. 그러나 이런 이해를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나는 술과 만취가 싫다.

  어쨌거나 둘이 살면 혼자 살 때보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내가 선택한 업보라 어쩔 수 없다. 너도 아마 나로 인해 어딘가의 산을 오르고 있겠지. 그렇게 또 하루치의 산을 넘었다.

 

2.

  회사 동기 두 명이 집에 놀러왔다. 우리 라인 1층에는 쌍둥이 엄마인 동기가 산다. 저녁을 먹다가 같이 놀면 재미있겠어서 언니에게 놀러오란 연락을 넣었다. 귀여운 아기들까지 와도 좋고. 무리하지는 말고 그냥 우리가 여기 있다고만 알렸다.

  띵동 소리가 나서 문을 열었는데 언니와 남편분이 각각 아기를 안아들고 계셨다. 다같이 왔냐며 인사하려는데 아가들이 앙앙 울었다. 어린이집 적응기간을 겪고 있는 아기들은 새로운 곳에 적응할 하루 치의 힘을 이미 다 쓴 듯 했다. 딸은 아빠와 함께 들어오지도 못하고 바로 내려갔다. 아들은 엄마와 들어와서 어떻게 진정이라도 시켜보려 했는데, 뿌엥 하며 닭똥같은 눈물과 함께 쌍콧물도 뿌왁 나왔다. 미안미안. 엄마도 퇴장했다.

  귀엽다는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언니가 혼자 왔다. 저녁도 못 먹었다는 언니는 맛있는 휘낭시에를 맛도 모르고 두 개나 연달아 우걱우걱 먹었다. 뭘 더 줄까 밥을 줄까 커피를 줄까 이야기하며 웃는데 뭔가.. 문 밖에서 아기들의 소리가 들렸다. 오잉? 언니가 나가니 함께 놀고 싶은 아빠가 아기 둘을 안고 오셨다. 오죽하면 또 오셨을까. 아빠의 마음도 모르고 아기들은 또 뿌앙뿌앙 울었다. 언니가 바람처럼 다시 내려갔다. 뒤에 남은 나와 동기들은 이게 무슨 일이냐며 와라락 웃었다.

  한참이 지나 온 언니의 연락에 우리는 오늘 제법 늦게까지 놀테니 여건이 되면 오라고 안심시켰다. 8시 반쯤 아기들을 재우고 온 언니가 3트만에 자리에 오래 앉았다. 근데 이 휘낭시에는 뭐야? 두 시간이 지나 세 번째 휘낭시에를 먹으며 겨우 한 질문에 다같이 깔깔 웃었다. 내가 남편이 사왔다고, 아까의 소요 때도 방에서 다 듣고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화들짝 놀란 언니가 갑자기 맛있네요~ 하며 방으로 인사를 했다. 20대에 만난 우리는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주제는 다르지만 엄청 웃으며 이야기를 한다. 농담을 하고 아줌마같은 이야기도 하고 회사 욕도 한다. 우리는 회사로 만났지만 예전이라면 이런 게 마을일까. 마을 공동체가 있던 시절이 조금 더 살기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 1층의 귀여운 아기들과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날 보고 울지 않으면 좋으련만.

 

3.

  회사 일이 난항이다. 마음이 괴로워 터져나가기 직전이다. 내가 다 책임질 필요도 방법도 없는데 막막하다는 생각은 나만 하나 싶어 속이 썩는다. 눈앞이 점점 좁아지더니 인생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버리게 됐다. 밤에 남편에게 혹시 그냥 둘이 같이 죽는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어차피 지금까지 재미있게 잘 놀기도 했고, 더 살아봐야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계속 버티고 애쓰는 게 너무 피곤하다고. 대단할 것도 없는 인생이니까 이만하면 됐다고. 나 혼자만 죽을 수도 있지만 그럼 너가 혼자 남아 슬플테니까, 라고까지 말하진 않았다. 나만 죽어도 괜찮긴 하겠지. 최근에 자살을 시도한 지인의 이웃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밤 중 너의 위로는 사실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울적함을 네게 전달한 것만으로도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괴로운 밤이 지나고 아침에 해가 떴을 때, 세상이 변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해가 떠서 당장 죽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어떻게든 되겠거니 일단 한 발 물러서는 정도는 되었다. 너는 마음만 살짝 바꾸면 행복할 수 있다고 여러 번 말했다. 힘들어도 속이 썩어 문드러져도 살자고. 태어난 김에 살아야 하나 싶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답도 없다. 그냥 산다. 살다 보면 좋은 때가 또 온댔다.

  회사에서 잡담을 하다 유서를 써둔다는 젊은 직원의 이야기에 어느날 나도 유서를 썼다.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은 다 남편에게 줄테니 그걸로 조금이나마 더 행복해졌으면 한다고 썼다. 그정도까지 생각할 수 있다면 굳이 나도 죽기 전에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어째 이리 힘겹기만 한지 모르겠다. 집의 일조량이 부족한 게 진짜 문제일 수도 있다. 광합성이 부족한 현대 직장인의 하찮은 우울. 정남향의 집으로 이사가 시급한가. 일조량 이야기나 꺼낼 만큼 답도 모르겠고 막막한 요즘의 마음이다. 여하간 오늘은 죽지 않았다.

나를 미치게 하면서도 자꾸 열과 성을 쏟게 하는 이깟 건물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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