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30. 힘을 내자! 힘을 쏟자!
1. 자유의지가 없다면 오히려
테드 창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SF에 편견이 있는 상태였다. 읽어본 SF가 없다시피 했고, 국내에서는 막 SF가 메이저로 오르기 시작했다. 출판학교에서 다양한 책을 읽는 동료를 만나 뭐라도 시도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용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저 글자를 읽었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으며 무언가 인상적인 듯도 한데 납득이 가지 않았다. 고통이 있을 미래를 알면서 그것을 따라가는 주체의 마음이 전혀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면 뭐 하러 살지? 왜 거부하지 않지?
그 사이 몇 년이 흘렀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은 이미 정해진 흐름이 있고, 어쩌면 나는 그것을 따라가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나에게 나쁜 일이 생긴다면 왜 나인지 의아해할 게 아니라 왜 내가 아니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함에 동의했다. 이미 정해진 미래, 숙명처럼 따라가는 사람. 테드 창이 자꾸 떠올랐다.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다시 책을 읽으며 이번에는 이해할 수 있었다. 스물다섯의 딸와 헤어지더라도 그 시간까지 다가가는 시간이 소중하기에 다시 딸을 만나러 시간을 지내는 마음. 헤어짐이 정해져 있는 길을 거부하지 않을 마음. 그 여정이 다 사랑이구나.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을 찬란히 여기는 시간의 흐름이 더 좋아 보였다.
요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삶이 아니라 현재를 즐겁게 사는 삶에 대해 자주 떠올린다. 세상만사에 대한 포용력이 커질 것. 마음이 깊어지고 편안해질 것. 그런 노인이 되면 멋지겠다.
우리는 순간순간을 선택하는 게 자유의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커다란 맥락이나 흐름은 결정되어 있고 이 주어진 인생에서 겪는 그 경험들의 의미를 이해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삶인 것 같아요 - 유튜브 숏츠 댓글에서, mr.gloomy8672
2. 봄날이 거의 다 가버렸어
뫼셔야 하는 상사가 두 분인데 한 분이 6주간 자리를 비웠다. 처음에는 황망하기 그지 없었는데, 적응하고 보니 안 계신 게 더 편해서 기분이 좋았다. 관료제에서 중간관리자는 무엇에 쓸모가 있나. 본인들도 늘 스스로의 유용함을 증명하려 애쓴다. 조직의 발전과는 상관없는 삽질인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러나 시간은 가고 상사가 다시 돌아올 시기다. 채 한 주도 남지 않았다. 안계셔서 편했는데요, 오셔서 반갑다는 말은 떠오르지 않네요. 그가 없는 기간에 타 기관 관장의 전화가 우리의 관장에게 걸려온 걸 목격했다. 혹시 상사를 발령 내겠다는 소식은 아닐까 하며 혼자 설렜다(높은 확률로 아니다). 그가 가도 새로운 상사가 올 텐데 무슨 소용이람. 구관이 명관이란 말을 떠들게 될 운명이라도 일단은 구관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랄까.
교육에서 돌아온 상사가 자신의 상사와 잘 지내기를 바란다. 둘이 척을 지니 쪼무래기가 성가십니다요. 나의 기관은 곧 큰 일을 앞두고 있다. 준비하느라 눈코뜰 새가 없는 날, 아저씨의 기싸움이 반복되지 않기를. 나는 나대로 평탄하게 살기를.

3. 반평생을 함께한 (내 쪽에서만) 동지여 안녕
중학교 1학년 때 첫 핸드폰을 산 뒤 내내 함께했던 통신사에서 어마어마한 정보 유출 사고가 났다. 유심 정보가 털리면 모든 인증이 다 털리는 건가. 유심보호서비스를 신청했지만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유심을 바꾸고 싶은데, 출근러는 T World 앞에서 줄을 설 수도 없으니 몇 달이 걸릴 태세였다. 그 와중에 SKT의 태도는 별로 책임감 있어 보이지도 않고.
고민하다 통신사를 바꾸는 방법으로 유심을 교체하기로 했다. 항상 SKT 사용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수전노여도 통신사만큼은 붙들고 있었지만, 그러는 나를 너는 한 번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굳이?’와 ‘그래도…’라는 마음을 깨고 드디어 SKT를 버린다.
이렇게 떠나가는 나를 스크는 관심도 없다. 그 와중에 신규 개통하는 고객의 보조금이 어마어마하다는 소식. 괘씸하기 짝이 없다. 5G 사용 용량도 6기가에서 10기가로 늘리는데 돈은 줄인다. 몰인정한 스크 안녕. 안녕! 가라 잘 가라 가라 멀리 가버려!
(추신) 이별은 그렇게 깔끔하지가 못해서, 번호이동 사전동의인지 인증신청인지 요청인지 뭔지의 단계를 넘어가지 못해 이별의 턱밑에서 계류하는 중. 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