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2025.5.29. 그래도 평온한 주

푸휴푸퓨 2025. 5. 2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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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는 빨간 장미를 찍을 수 있을까

  빨간 장미가 피었다. 출근길 담벼락의 장미 사진을 찍고 싶은데 매일 아슬아슬하게 뛰느라 실패 중이다. 뛰어도 될 만큼 아침은 여전히 선선하다. 작년엔 어땠지? 한낮에 더워했던 기억이 난다. 지구가 더워질수록 자꾸 전년도를 되짚는다. 여름이 얼머나 악화되었나 하고.

  예상보다 선선했던 5월이었다. 온난화가 무슨 조화를 부리나 수상해하며 어렸을 땐 5월까지 봄이라 배웠던 걸 기억했다. 언제부터 5월이 무더웠는지 모르겠어. 하루이틀만에 여름으로 변해버린 기온을 느끼며 또 지구온난화때문이란 생각을 한다. 자연스럽다면 일주일은 걸렸을 거야. 추워도 더워도 쾌적해도 다 지구온난화 탓이다.

  인류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종종 걱정하면서(혹은 저소득순으로 사라져 버리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왜 2세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합리적 이성과 무지성의 감성이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시기. 주변에는 임산부가 참으로 많다.

이건 그냥 맛있어서 올리는 샌드위치 사진

 

2. 보리에게 기쁨조를 맡기자

  주말에 가볍게 PT나 하러 가려다 언니네까지 합세해 부모님과 점심을 먹게 되었다. 너도 너무 피곤하고 나도 쉬고 싶었던 터라 점심만 먹겠다고 다짐을 하고 갔는데.. 엄마가 미니 슈퍼를 차린 양 말도 안되게 많은 물건을 구비해두셨지 뭐야. 리스트를 쫙 써두고 필요한 것에 동그라미를 쳤다. 리스트의 모든 것에(더해 심지어 리스트에 없는 것까지 물어봐가며).

  엄마는 우리가 보드게임을 하고 가길 기대했지만 한 시간만 자고 온 너의 초췌한 얼굴을 보니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잠깐 머뭇거리다 엄마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렇게 산더미만큼 물건을 가져가면서 그냥 가려니 영 미안하지 뭐야. 명절마다 홀어머니를 집에 두고 떠났던 아빠의 마음이 아주 쪼오금 그려졌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 조카가 태어나면 바빠서 괜찮을거야.

 

3. 유니클로 티셔츠 안녕! 서핑클럽 티셔츠 안녕?

  10년은 입은 유니클로 티셔츠를 버렸다. 라고 쓰고 진짜 10년인가 싶어 검색해보니 라인 캐릭터 티셔츠가 2016년에 등장한다. 진짜 10년이 맞군. 일정금액 이상 사고 받은 사은품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사은품에 혹해 물건을 사지 않지만 그때는 그랬다. 덕분에 공짜로 받은 넉넉한 티셔츠를 운동용으로 빼며 입다가, 목 둘레에 우레탄 줄도 넣었다가, 목이 늘어나지 않아도 감출 수 없는 후줄근함을 보인 뒤엔 잠옷으로 입었다. 예. 저는 신혼여행에도 그런 걸 들고 갔어요.

너의 새 티셔츠가 어디에 걸렸는지 올이 나갔다. 크지는 않지만 입고 외출하긴 애매했다. 원단이 톡톡하고 색이 짙어 새삼 탐내고 있던 녀석이었다. 머릿속에 낡은 티셔츠가 번뜩이며 지나갔다. 지금이 바로 새 잠옷을 얻을 타이밍이로구나.

  그렇게 한 점의 미련도 없이 라인 티셔츠를 버렸다. 오래된 물건인데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나? 물건을 내심 의인화하며 마음을 주는 내가 이렇게나 정없게 버린 이유는 명확하다. 그 티셔츠는 처음 입을 때부터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가슴팍에 왕크게 캐릭터가 있는 티셔츠를 나는 돈 주고 사 본 적이 없다). 면인데다 넉넉해서 운동용으로 선호했지만 땀 흡수엔 기능성 원단이 훨씬 나았다. 난 잠옷도 취향이 있기에 늘 마지막에 꺼내 입었다. 그 옷을 꺼낼 때마다 ‘제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쓸만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까맣고 흐늘거리는, 캐릭터에 자글자글 금이 가버린 티셔츠는 편하긴 하지만 애착이 없었다. 어떤 물건은 오래 써도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쉽게 버리면 죄책감이 드는 세상, 괴롭지 않으려면 좋아하는 물건만 들여야 한다. 어쨌거나 오래 고생한 친구 덕분에 운동도 잘 하고 잠도 잘 잤다. 조각내어 기름 흡수나 시키고 버릴껄 그랬다. 마지막까지 유용함을 증명해 줄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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