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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제목없음

by 푸휴푸퓨 2016.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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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간만에 일기를 쓴다. 아무것도 쓰고 싶지도, 읽고 싶지도 않았던 시간이 지나갔다. 지나가면 괜찮을 거라고 다독였고 견뎌야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어쨌든 그것들이 겨우 다 지나간 참이었다. 그런데 끝나갈 즈음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니까 이제 진짜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낯선 사람이 따라왔다. 좀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점점 더 이상해졌다. 무서워서 집으로 뛰어올라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을 켜지 않았다. 살그머니 창밖을 보니 따라와서는 집을 확인하고 있었다. 불을 켰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소름이 돋았다. 10분쯤 건물을 쳐다보던 그 사람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창밖을 살피는 나를 그 남자는 발견했을까.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니고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닌 나를 왜 따라왔을까. 컴컴한 방 안에서 후추 스프레이와 경보음 호루라기를 주문했다. 불을 켜지도 창문을 열지도 못하고 밤을 보냈다. 눈앞이 암막커튼이 쳐진 내 방만큼이나, 캄캄했다.

  차장에게 이야기를 했다. 무섭다고. 회사가 중요한 시기고 일이 바쁜건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차장은 여자니까 그래도 이해해 줄 줄 알았어. 착각이었다. 남자 부장보다도 당신은 관심이 없었지. 단 한 번도 먼저 보내달란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 한 번 정도도 들어줄 수가 없었나 보다. 밖이 어두워질수록 손이 떨렸다. 오한이 났다.

  사무실을 뒤졌더니 일자 드라이버가 하나 나왔다. 들고 퇴근하려고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약속했던 시간이 한참 지나고도 차장은 나를 보내주지 않았다. 부장과 밥을 먹고 오라고 했다. 같이 밥을 먹자며 책상으로 다가온 부장과 기사가 드라이버는 뭐냐고 물었다. 간단히 일을 이야기하고 낯선 남자를 만나면 찌를 거라고 말했다.  부장과 기사는 웃었다. 그래도 차장보다는 걱정해 주었다.

  들어가라고, 저녁을 먹고 집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밥을 먹는데 기사가 물었다. 정말로 따라온 거 맞냐고,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고는 킬킬 웃었다. 너를 왜 따라오느냐고 말하고 싶었겠지. 내가 아나요? 나를 미치게 만드는 이 일이 남에게는 딱 그만큼의 일로 보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회사의 중요한 행사가 끝났다. 휴가를 내었다. 하루지만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했다. 차장은 유난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리지 않았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 오늘만 생각하고 이틀 밤을 견뎠으니 누가 뭐라고 했어도 나는 올라왔을 거다.

  이제 내일 다시 내려가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내야 한다. 웃고, 시키는 일을 하고, 누군가 이 일을 언급하면 그런 해프닝이 있었죠- 하며 넘겨야 할 테다. 무서워하는 티를 내면 비웃음을 살 것이다. 이사를 갈 수도 없고 간다고 해도 그 동네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제 내게 남은 건 또 견디는 일이다.

  만약 그 남자가 나타난다면 나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다. 그냥 도둑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돈이 많게 생겨서 따라온 건 아닐 것이다. 심각한 범죄들이 자꾸 떠오른다.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한다. 아무 일이 아닌 것도 같다. 하지만 내 집을 아는 그 사람이 정말 다시 찾아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섭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죽는다고 뭐 별거야 하는 생각을 했다. 진정이 될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 상황이 나아지게 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다. 일이 싫어서 보다도 무서워서 그 도시로 가고 싶지 않다고 솔직히 털어놓고 싶다. 하지만 그 말이 철없는 이의 어린양으로 보일 것 같아서, 유난스러운 것 같아서 부모님께도 친구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방법이 없는데 걱정하시는 것도 싫다.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했다. 사실은 아니에요. 힘들어요. 가만히 있어도 울고 싶어요. 회사에서 혼자 숨어서 울었어요. 서울에 올라오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사람들과 헤어지니 이 합정역 큰길에서도 눈물이 나려고 해요.

  모두가 힘든 세상에서 내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지 않다. 우는 소리도 하고 싶지 않다. 근데 사랑하는 것 하나 없는 그 도시가 너무 싫다. 이번 늪은 너무 깊다. 얼만큼 지나야 빠져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는 게 원래 이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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