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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심미안 수업 - 윤광준

by 푸휴푸퓨 2019.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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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래간만의 책 리뷰다. 한창 리뷰를 쓰던 때가 있었는데, 어쩌다가 멈추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 말하면 평범하겠는데 기억이 난다. 나는 리뷰에 나의 사생활을 마구 집어넣으면서 흥이 났다. 점점 리뷰를 더 많이 잘 쓰고 싶어 책 리뷰에 대한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 책이 그러는거야. 자신의 생각을 마구 담아 둔 리뷰는 못 쓴 리뷰라고. 잘못 쓴 리뷰의 전형이라고. 그 이후로 어쩐지 '리뷰'라는 단어를 쓰기가 힘들었고,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리뷰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치만 리뷰 작성은 나한테 참 즐거운 취미였는데, 그까짓 책 때문에 그렇게 날릴만한 사소한 활동이 아니었다. 남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어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어야 했어! 최근 주변 지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재미난 책을 추천하기 시작했는데 책을 받아 읽던 언니가 혹시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모아둔 SNS가 있느냐는 거다. 그때 문득 방치된 이 블로그가 생각났지만 어떻게 추천하겠어, 폐허나 다름없는데. 그래서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이 폐허를 치워보려 한다. 나는 나의 성을 쌓을거야. 남이 성이 아니라고 비난하거나 초라하다 말해도 상관 없다. 나한테만 성이면 돼.

 

  그런 의미에서 다시 시작하는 첫 책은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이다. 몇 년 전 윤광준 작가의 '윤광준의 생활명품'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명품을 소개한 책이었는데, 저자의 미감에 감탄하면서도 엄청 부자이리라 생각했다. 단돈 몇 만원이면 블루투스 스피커를 살 수 있는데 스피커 하나에 이리 큰 돈을 쓰는 사람이라면 분명 부자겠지. 그가 꼽은 명품들에 다 동의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비뚤어진 생각을 했다는 건 나만의 슬픈 비밀. 저자의 취향에 정말로 감탄한 책이었고 이후 유사한 책-일상 속 자신의 소품을 나열한-들을 발견하는 대로 읽어 보았는데 윤광준 저자만한 안목이 없었다. 그는 정말로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런 윤광준이, 다른 책도 아니고 '심미안 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는데 보지 않을 수가 있나. 책의 존재를 알자마자 바로 보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책을 받아들어 처음 서문을 살펴보고 아연실색했다. 눈이 아프다고? 시야가 왜곡되어 물건들이 마치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보인다 했다. 세상에, 세상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름다움을 그렇게나 찬미하는 사람의 눈이 스러지다니. 다행히 치료를 통해 그의 눈은 회복이 되었다고 한다(앗 이것은 스포일러일까). 그 과정을 통해 윤광준은 더욱 더 아름다움을 정교하게 느끼게 되었다. 책은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의 분야로 나눠 그가 느낀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진화해 나간다. 인간이 찾아낸 황금비율도 그런 진화 과정의 일부다. 더 나아가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우연한 순간을 창조하는 인간의 시도도 결국은 아름다움에의 추구인 것이다. 잭슨 폴록의 작품을 보면서 이제까지 난 도대체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우연이 뭐 어쩌라고?), 애써 만들어낸 우연도 결국 의도인 것을 생각하고 나니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폭이 얼마나 작은가 싶다. 

 

극단적인 파괴와 변형도 크게 보면 그런 진화의 하나이다. 잭슨 폴록 같은 화가는 무작위로 페인트를 뿌리고, 화가의 의도마저 지워버린 듯한 그림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 안에도 질서와 규칙이 있다. 추상화가 잭슨 폴록의 그림을 모아놓고 보면 우연의 효과치곤 꽤 정연한 그만의 질서가 느껴진다. 아무렇게나 페인트를 뿌린 것 같아도 인간이 한 일이기 때문이다. 화가의 의도는 당연히 살아 있다.

 

  윤광준은 각 분야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움을 잘 느낄 수 있는 지에 대해 조언한다. 추상화와 동양화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음악을 즐기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건축이 얼마나 예술적인 활동인지... 그의 조언을 새기다 보면 주변의 많은 것이 예술이고 더불어 어려운 예술이라 멀리했던 것마저 코앞에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령 그가 추천한 국악 레코딩 회사 '악당이반'의 사이트를 들어가 국악을 들으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소리였나 싶은 것이다(한 곡에 900원을 주고 다운받을 수 있어 기뻤다. 두고두고 들어야지).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너무 좋지만 결국 이건 윤광준의 시선이라는 점이다. 나는, 내 견해는? 나는 책의 작가들에게 잘 휘둘리는 성격인지라 오오 윤광준 작가가 그렇다잖아 오오오 하고 휩쓸려간다. 그나마 요즘은 휩쓸리면서도 한 구석이 찜찜한 정도로 발전했다. 그는 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건네주고 있다.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데 있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일이 제일 힘들다.

비교의 관점이 있어야 좋고 나쁨이 가려지게 되는데, 비교의 관점이 있으려면 갖고 있는 내용이 풍부해야 한다. 

가진 게 별로 없으면 뭐가 좋은지 나쁜지도 알 수 없다. 그럴 때 쉽게 참고할 수 있는 게 과거의 지식이다. 

앞서간 모든 예술가들의 첫 출발은 이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이후엔 이것저것 직접 해보며 생각과 결과의 간극을 메워가는 수밖에 없다. 

얼마나 '다르게'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잘 모를 때는 앞선 사람들의 관점을 흡수해도 괜찮다는 말이군요. 그 이후에 내가 당신과 어떤 다른 생각을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해보면 되겠죠. 그가 사진에 대해 적은 내용으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한 생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무엇을 느끼고 싶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가. 그에 대해 내 답이 어떤 것이든, 혹여 당신의 답과 내 답이 다르건 간에 우리는 모두 틀리지 않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나만의 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나만의 취향과 미감을 오롯이 가지고 싶다고, 몇 년 전 했던 생각을 그대로 하며 독서를 마친다. 다행히 나는 그 시절의 나보다 취향이 섬세해지고 확고해졌다. 그래서 행복하다.

 

 

모든 위대한 사진들은 항상 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싶어 하는 사람인가.' 

그 질문을 또 듣기 위해 사진전에 가고, 답을 찾기 위해 사진기를 든다. 정답이 없다는 것만이 위안이다.

 

 

p.s. 문득 검색을 해보니 '윤광준의 신 생활명품'이라는 책이 2017년 출간되었다. 왜 나는 몰랐지! 중앙 Sunday에 기고하던 칼럼을 엮은 것이라 하니 또 얼른 구해 읽어야겠다. 읽을 것이 너무 많으니 바쁘다 바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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