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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ING

자기혐오를 토해내는 재미 없는 이야기

by 푸휴푸퓨 202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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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에 서 있으면 주기적으로 파도가 밀려온다. 파도는 왜 칠까. 검색을 해 보기도 했지만 중력과 염도와 그 무엇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말에 정확한 이해를 포기했다. 바다를 구경하노라면 멍을 때리다가 그저 생각하는 것이다. 파도는 왜 칠까. 어차피 같은 물인데 왜 밀려와서 부서지고 밀려나가더니 또 다가오는가.
 

Image by Dimitris Vetsikas from Pixabay

 
  자기혐오는 내게 파도처럼 다가온다. 이제 좀 나아졌나 싶으면 언제 부서졌느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밀려온다. 극복하려고 노력해 봐도 주기적으로 괴롭다. 자기혐오에 빠져들면 우울하고 무기력한 나만 남는 걸 알아서 어떻게든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 애쓴다. 물에 젖은 솜덩이 같은 나를 아무도 도와줄 수 없으니까.
  혐오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찾아낸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운동이 싫은데 반드시 해야 한다. 유산소 운동을 한다. 달리기를 하면서 생각할 겨를이 없게 헉헉댄다. 아니, 헉헉대도 생각은 할 수 있다. 힘을 쥐어 짜내야 해서 늪 같은 생각 하기가 쉽지 않다. 고통을 참고 땀을 흘리다 보면 저절로 생각이 가벼워진다. 땀냄새에 위로받는다. 나쁜 방법으로는 핸드폰 게임이 있다. 게임을 하면 생각이 멈춘다. 하지만 생각을 가볍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두통이 밀려온다. 결국은 사고 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니 운동이 제일이다.
  그렇게 좀 단단해졌나 싶으면 다시 자기혐오가 밀려온다. 파도처럼 끝이 없다. 꽃이 펴도 서러운 봄에도, 다 떠나가는 것 같은 가을에도, 습기가 가득한 여름에도, 아무도 없어 보이는 겨울에도 온다. 며칠만에도 오고 몇 주 만에도 온다. 아무 때나 온다. 남들도 나만큼 스스로를 혐오하는지 의아할 만큼.
  자기혐오가 심한 사람이 된 이유에 대해 나는 얼마나 많이 탐구했는가. 자존감은 또 얼마나 파고들었는지.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의 눈치를 봤다. 맞벌이를 해야 했던 부모님은 태어난 지 한 달 된 나를 부산의 할머니에게 맡겼다. 좋은 할머니 집이었지만 무서운 시댁이었던 곳에서 2년 만에 돌아온 나를 엄마는 때로 할머니 편이라 여겼다. 언니는 공부도 운동도 잘했고 사교성도 좋았다. 못난 내가 언니만큼 사랑받으려면 좋은 딸이 되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는 걸 깨달은 게 고등학생 때였다. 엄마에게 할머니한테 가라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상처가 된다고 울면서 말한 것도 고등학생 때였다. 꼭 엄마와만의 문제도 아니다. 내가 흔히 말하는 안여돼에 꼭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어떻고.
  이런 이야기도 다 상관없다고 생각할 만한 시절이 되었다. 시간이 쌓이니 조금은 여유로워졌지. 한 사람으로서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엄마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도 알고,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나만 마냥 피해자이지도 않고, 어린 나를 감싸 안고 다독이는 과정도 다 끝났다. 자존감이 낮지도 않고 가진 것이 부족하지도 않다. 완벽할 필요가 없다고 마음을 내려놓은 지도 오래되었다.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적당히 편안히 산다. 그런데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내가 나를 싫어한다. 미워할 이유가 없는 걸 알면서,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이유 없이 짜증 나는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근데 그 친구랑 영영 떨어져 있을 수도 없는. 
  특별히 바라는 내 모습이 있지도 않다. 그냥 내가 가진 모든 게 초라하고 보잘것 없다. 마음을 써서 소중히 다루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애써 일군 삶이 싫어지는 게 더 괴롭다. 그렇다고 일상을 내던질 수도 없다. 혐오스럽지 않을 때의 차분한 일상도 이어져야 하니까. 자기혐오의 감정에 거리를 두고 내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대체 왜 그러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을 바꾸면 좀 나아질까 싶었지만 깔끔하게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어느 날의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내가 싫어. 어느 날의 나는 말을 예쁘게 하지 못하는 내가 싫어. 어느 날의 나는 회사에서 초라해서 싫어. 어느 날의 나는 뚱뚱해서, 어느 날의 나는 돈이 없어서, 어느 날의 나는 멋지지 않아서. 평범한 날의 나는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좋은데. 호불호를 잘 구분하고 꾸준히 운동하고, 재테크에 열심히고 책을 좋아해서 좋은데. 그냥 아무 논리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만큼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지 않다. 온갖 심리학 책을 보며 자기혐오에 대해 공부했고, 더 이상 나에게 적용할 방책도 없다. 우울증이 아니라 자기혐오증에 걸린 사람도 있나. 이것도 감기같은 걸까. 누구나 이 정도 정신 이상은 다 안고 살까. 평범한 날엔 별로 걱정할 일 아니다 싶고, 혐오로 몸부림치는 날엔 이 망가진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자기혐오의 뉴런이 다른 뉴런보다 100배쯤 발달해 있나.
  최근에도 역시나 자기혐오에 몸부림 쳤다. 그리고 책을 읽다 멋진 말을 보았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네. 한 40살쯤 되면 이 마음을 극복할까. 20살의 나보다는 30살의 내가 나를 덜 싫어했나. 90살쯤 되었는데도 나를 혐오하면 어쩌나. 나는 어떤 어른이 될까.
 

  새롭지도 않지만 익숙해지지도 않는 나에 대한 실망을 오늘 또 한 번 하게 된다.
나는 평생 나 자신을 위한, 내 만족을 위한 무엇도 하지 못하겠구나.

문상훈,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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