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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3.2.15. 정리해보니 꽤 괜찮은 시간

by 푸휴푸퓨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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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만 알더라도 충분히 좋은 순간이 있다. 요즘의 순간은 다음과 같다. 팽팽히 끼던 셔츠의 팔뚝 부분에 여유가 생겼을 때. 점을 빼느라 생겨난 작은 딱지가 자고 일어나니 떨어져 있을 때. 여차하면 비명이 나오려 했던 폼롤러 마사지였는데 좀 참더라도 두 다리를 한 번에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얼마만큼 부자가 되고 싶은지 몰랐던 시기를 지나 이 정도가 되면 멈추어야겠다는 판단이 들 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침에 정리한 이부자리에 들어가니 필로우미스트 향이 폴폴 나서 포근하기 그지없을 때.

  별 일이 아니고 굳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생각도 없지만 떠올리면 흐뭇해서 웃음이 난다. 이런 순간이 모이면 살만하다고 느끼는 일상이 된다. 오늘 아침에는 며칠 만에 커피를 마셨다. 어찌나 맛있던지 순도 높은 만족감이 뿜어져 나왔다. 매일 커피를 마셨다면 몰랐겠지. 적당히 살만하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로 행복할 때임을 조금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2월의 나는 상당히 행복하군.

너랑 이 카페에 갔을 때도 참 좋았지!

 

2.

  지난주 토요일, 점을 빼러 갔다가 얼굴에 사마귀도 있고 빨간 점도 있다는 진단에 온갖걸 다 빼는 시술을 받았다. 많아야 열 개나 뺄까 싶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진물 가득 찬 듀오덤이 얼굴 전체에 포진했다. 아니 이 황당한 꼴은 뭐야. 월요일에 출근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마스크를 믿고 힘겹게 회사로 나왔다. 하루를 뻔뻔하게 돌아다니고 나니 화요일엔 별 생각도 없더군. 얼굴이 흉하다는 투정에 회사 동기들이 훨씬 아프고 흉해지는 피부 시술을 여럿 알려주었다(울쎄라 말고는 기억이 안나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연고를 바르고 떨어지려는 듀오덤을 새로 붙인다. 있는 지도 몰랐던 걸 빼느라 혼이 나갔다고 툴툴댔는데 상처가 낫는 과정을 관찰할 기회로 여기니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새 살은 왜 돋는 걸까? 점은 왜 생기는 걸까? 남의 얼굴인 양 내 얼굴을 관찰하며 세상에는 역시 신기한 일 천지라고 생각했다.

 

3.

  신기한 일 천지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차를 구입한 동기와 다른 동기가 세차 용품 세트를 쿨거래했다. 차도 구경할 겸 점심시간에 따라나섰는데 이게 또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미 밥을 먹으며 처음 들어보는 피부 시술 이야기에 한껏 감탄했던 바, 세차 용품은 별 게 있겠는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차를 그냥 닦는 게 아니라 pre-wash가 있고 wash가 있고 또 그것들을 담는 통이 있고.. 신기해서 눈이 동그래졌는데 심지어는 자전거도 세척 용품이 있고 오토바이도 마찬가지라 했다.

  모르는 사람이 세차 용품을 설명하면 재미가 없을 텐데 동기가 관심 있게 알아본 정보를 들으니 아주 흥미로웠다. 세차에 문외한인 티를 팍팍 냈더니 동기가 “새로운 걸 알아가는 기쁨이 많이 남았으니까 좋은 거”라지 뭐야. 어쩜 이렇게 말을 예쁘게 할까! 세차 용품에는 관심이 없지만 네게는 관심이 있다. 관심 가는 사람이 많아야 호기심이 많아지고 그래야 삶에 감탄과 재미가 늘겠구나, 역시 삶은 관계에서 오는구나 싶었다. 진실로 호감을 가질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외톨이 I는 생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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