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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18.12.10.

by 푸휴푸퓨 2018.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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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페퍼민트에 올라온 미국공영라디오방송(NPR) 기사의 번역본("백인의 눈물(white tears)"을 조롱하면 안되나요?)를 읽으며 생각을 한다. 뉴스에서 소개된 발로리 토머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대화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과 비할 것이 못 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 같은 폭력에 대해 책임이 있죠.

  불편함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불편함은 견디기 좋은 기분이 아니란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남자친구와 한국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자친구는 가끔 지하철에 올라탈 때 손을 가슴으로 모아야 한다며 동작을 보여주었다. 나는 우리가 농담처럼 서로 웃으며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지난 토요일, 다른 남자 지인이 지하철을 타면서 손을 모으는 자세를 해야한다고 했다. 편협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성차별적인 생각을 내 앞에서 표현한 적이 없는, 내가 인격적으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서로 전혀 접점이 없는 두 20대 남성이 같은 행동을 한다는 건 내가 그것을 단지 농담으로 넘겨서는 안되는 일이란 의미였다.

 

  남자친구에게 내가 농담으로 넘겼던 그 자세가 여자인 내가 느끼는 수준보다 너와 그 사람에게 중요해 보였다고 운을 띄웠다. 서로 이야기하다보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부분, 서로 미처 생각치 못한 부분을 알게 되었다. 너는 페미니즘 자체의 본질은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갈등과 반발을 만드는 '혐오'를 주장의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 싫다고 했다. 과한 혐오로 인한 억울함과 반발, 갈등이 커져가는 과정에서 이익을 취한 사람들이 더욱 큰 갈등을 키워내고 싶어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했다. 반면 나는 사회가 발전할 때 한 번에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는 어렵기에 극단을 달리다 점차 중도를 찾아가게 될 (이 정-반-합이 되어야만 할) 논란의 과정이 시작된 것 자체가 반갑다고 했다. 지금의 방향을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논란이 시작되게 만들어 준 것 자체가 반갑다고. 혐오의 시작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차별을 반(反)하는 행동이라고.

 

  남자친구는 동년배 사이에서 성차별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남자친구가 인식하지 못했을 주변의 일상적인 몇 가지 사실을 언급했다. 정말 편안한 대화였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서로 듣게 되었던 시간이었지만 나는 본인이 스스로 행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차별로 인해 억울하게 가해자의 일부가 된 남자친구에게 묘한 미안함을 느꼈다. 나도 네가 평소에 비단 성차별뿐만 아니라 모든 차별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는데, 편협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왜 나는 계속 너에게 점점 더 무언가를 생각해 보라고 말해서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건 수많은 다수가 아직 참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시키는 것. 그것이 발로리 토머스 교수가 말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불편함에 비할 수 없는 커다란 폭력에 대한 책임"임을 오늘에야 이해했다. 불편하다 외면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남자친구의 몫이라면, 껄끄러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하려는 상대의 노력도 알아주는 몫이 내것이겠다. 잘 이야기해 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겠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진심으로 놀라는 너를 나는 좋아해. 나의 힘듦을 외면하지 않는 너와 오래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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