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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18.12.27. 화장품 줄이기

by 푸휴푸퓨 2018.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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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ymkaaaaaa from Pixabay  

  화장품 줄이기를 하고 있다. 천천히 하나씩 없앤다. 탈코르셋 같은 거창한 의도는 없다. 화장하지 않은 나도 예쁘다고 네가 말해주기를 여러번, 아침이 화장때문에 너무 바쁘다는 점과 화장을 지울 때 눈가 자극이 심하다는 점이 내가 정말 화장을 줄이도록 행동하게 만들었다. 아침에 화장을 해 저녁에 지우는 생활을 하다보면 민낯보다는 화장한 내 얼굴을 더 많이 보게 된다. 화장을 지운 내 얼굴이 낯설어 보일 때도 있었다. 사실 그건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진짜 내 얼굴을 나 스스로도 낯설어 한다는 건.

  가장 먼저 줄인 화장은 쉐딩. 턱쉐딩은 쉐딩 라인에 자꾸 여드름이 나서 고민없이 바로 줄였다. 코쉐딩은 나만 아는 차이였긴 했지만 차이가 있긴 있다고 믿어서 해 왔던 것인데, 그래도 다른 화장을 빼는 것보다는 쉬워 보여 눈을 질끈 감았다. 그거 한 가지인데 빼니까 편하긴 참 편하더라고. 쉐딩을 빼고 나서는 다음으로 줄일 부분이 당최 없어보여 두세달쯤 그 상태로 유지했다.

  그 다음으로 용기를 낸 건 아이라이너였다. 아이라인은 특히 티가 많이 나서 아이라인을 지울 때 드러나는 나의 맨 눈에 나도 흠칫 놀라게 된다. 생명과도 같은 아이라인을 안그리고 데이트를 나간다면, 직장에 출근한다면!? 지우기까지 고민 또 고민했지만 막상 지우고 나니.. 세상에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엉말 아아아무 일도! 회사에서는 서로의 화장을 하나하나 언급할 일이 없지만 남자친구도 아무런 변화를 못느꼈는지 말이 없었다. 괜히 고민했잖아. 결국 다른 이야기 중에 내가 먼저 실토했는데 남자친구 왈,  "아이라인? 그게 뭔데? 아 눈 위에 줄 긋는거? 그거야 없어진거 알고 있었지 당연히~ 말로 안한 것 뿐이야!" 아니, 없어진걸 알아챈 거 말고.. 줄 정도 없어졌다고 내가 더 못나지거나 한게 아니었나보다. 화장 줄이는 일이 정말 편하다는 기분을 본격적으로 느낀 것도 이때였다. 뾰족한 아이라인 뒤끝을 빼지 않으니 화장 시간이 얼마나 줄어들던지.

  또 그 상태로 한참을 보냈다. 아이라인을 줄이고 나니 화장에 들어가는 시간이 10분 안으로 줄어들었는데 그나마도 서두르지 않고 편안하게 했다(10분도 생각보다 길다면 그것은 내가 10분 중 5분을 선크림과 파운데이션 바르는데 사용하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그러니, 그전에는 얼마나 오래 걸렸겠어?). 화장 단계가 줄어드니 이렇게 좋구나 하며 어화둥둥 행복한 기분을 실컷 만끽했다. 얼굴도 썩 괜찮았고.

  그 다음 단계로 아이쉐도우를 지울 용기를 낸 건, 사실 남자친구의 한 마디 때문이다. 마주보고 앉아있던 어느 날, "그 갈색(아아니 이것은 음영을 넣기위해 내가 심사숙고해서 원픽한 컬러라구! 그냥 갈색이 아니야!)을 눈 주변에 그렇게 바르는 거야? 이렇게 하면 좋은건가?" 그러게, 이렇게 해서 또 꼭 좋은건 아닐지도 모르지. 아이쉐도우를 손가락으로 바르는 터라 매번 닦아내기도 참 귀찮았고, 아이라이너를 쓰지 않는다고 아이리무버로 눈화장을 지우는 과정을 생략하지도 못한다는 걸 깨달아서 낙심하던 차였다. 

  이제까지의 화장 줄이기와는 달리 아이쉐도우는 쉽지 않았다. 화장은 참 일찍 끝나는데 얼굴이 너무나 허전했다. 애써 무시하고 늘 하던대로 립을 발랐는데 아뿔싸, 나머지 화장에 비해 색이 너무 진했다. 부랴부랴 지우고 이것저것 발라보는데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강 흐리게 바르고는 이제까지 내 화장이 참 짙었구나 반성하게 됐다. 눈에는 음영과 눈물효과를, 볼에는 바람의 향이 물씬 나는 블러셔를, 턱에는 쉐딩을, 입술에는 말린장미를, 기분 좋으면 코에는 예쁜 하이라이터까지 올려야만 했던 나다.

  아이쉐도우를 바르지 않은지 오늘이 고작 이틀째다. 오늘도 여전히 눈은 허전했고 마음에 쏙 드는 립스틱은 찾지 못했다(새로 사지 않고 집에 있는 것으로 어떻게든 마음에 드는 색을 만들어낼 요량이다). 나는 아이쉐도우까지 지워낸 것이 과연 나의 선택인지 남자친구의 말 때문인지 아직 약간 헷갈린다. 다만 편하기는 엄청나게 편한것이 사실이라 반발심이 크지가 않다. 따지기 보다는 남자친구가 방아쇠를 당겨준 것이라 생각하려 한다. 다만 화장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만, 색이 예쁜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면서 그림을 그리는 그 자체로 재밌어 했다는 건 잊지 말아야지.

  취향은 변하고 나도 변한다. 여드름 흉터를 가리기 위해 커버력 좋은 파운데이션만 찾아 헤맸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여드름 흉터가 모두 없어졌고 그 시절보다 훨씬 건강한 피부를 갖게 됐다. 덕분에 화장으로 잘 커버하기보다는 피부 자체가 더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피부만 그렇게 변하는 게 아닐테다. 눈도 볼도 다 그렇다. 아이쉐도우가 없는 내 얼굴에 적응을 하면 그 다음에는 블러셔를 지우고 있는 그대로의 내 볼에 적응해야지. 차례대로, 내 얼굴을 찾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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