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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사피엔스의 마음 - 안희경

by 푸휴푸퓨 2019.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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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마음, 안희경

 

 

  마음이란 무엇일까? 삶이란 무엇이고 이 모든 구성을 작동시키는 원리는 어디서 올까? 살면서 마음을 다잡아야지, 다스려야지 하는 생각을 거른 날이 거의 없다. 가수 아이유가 이효리와 나온 예능에서 자신이 평정심에 집착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눈이 번적 뜨였다. 아이유는 그런 태도가 많은 걸 느끼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끼는 듯 보였지만 난 평정심을 항상 갈구하는 Up&Down 파여서 그녀가 자못 부럽기도 했다.

 

  그런 차에 올 1월, 처음으로 집안에 상을 당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제까지 나에게 죽음은 남의 나라 이야기어서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생각할 기회가 없었다. 그냥 장례식장은 기피하고 막연히 죽음을 두려워만 할 뿐이었다. 할아버지께서 몇 달간 겪은 일과 마지막 입관, 화장까지 지켜보게 되면서 인간의 죽음이 이런 것이라 처음 배웠다. 볕 좋고 풍광 좋은 조용한 곳에서 나는 이런 죽음이라면 나쁘지 않구나 싶기도 했다. 이후 종종 소멸의 시간과 그리하여 더 찬란해지는 삶의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책 ‘사피엔스의 마음’은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저자가 13명을 인터뷰 한 내용을 담았다. 13명 모두의 견해에 탄탄히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견해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는 문제니까. 모두에 굳이 동의할 필요도 없다. 마음과 삶과 나아가 죽음까지도 한 번씩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중 몇몇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오늘은 인용한 부분이 유난히 더 길다.

 

 

게리 스나이더(시인, 환경운동가)

Q. 무엇이 문제인가요?
A. 우리가 마음을 유별나게 생각해요. 마음에 관해 생각하는 것과 마음 그 자체는 같지 않습니다. 마음은 우리가 사는 이 자연 속에 일부로 있어요. 그러니 그 자체로는 문제 될 것이 없죠.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나무도 인식하고 다람쥐도 인식합니다. 다만 다양한 차원으로 존재하죠. 각자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처럼요.

 

  환경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낭비하는 순간에는 더더욱. 마음은 그저 자연의 일부고, 그 마음을 우리만 지니지는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순환하게 하는 자연의 큰 도(道)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편이다. 그 안에 내 마음도 함께 흐른다.

 

Q. 그 일이 삶을 바꿨나요?(그는 거대한 산에 홀로 올라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경험이 있다)
A. 많은 일이 삶을 바꿉니다. (중략) 내가 배운 한 가지는 나는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아니면 다가오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 십 대들은 대부분 영원히 살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때 내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고, 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익혔습니다. 그다음에 진짜 선택을 했어요. 살자고요.

 

  죽음을 직면하게 하는 삶의 위기가 오면 사람은 많이 변한다고 한다. 아직 그런 경험은 없고 또 나 자신의 죽음을 당장 상상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막연히 나를 위해 울어줄 가족들, 내가 없어지고 나서 남아있을 물건들에 대한 정리를 생각해본다. 그런 생각의 끝에서 항상 모아지는 마음은 그러니 지금 잘 하자는 것 정도다. 이런 나의 단순한 ‘잘 살자’는 결심과 스나이더의 “산다”는 선택의 심각성은 전혀 다를 테지.

 

 

지그문트 바우만 & 알렉산드라 야신스카 카니아(사회학자)

야신스카 카니아: 얼마전에 지그문트가 프란시스 교황의 글을 보여줬어요. 한 젊은이가 교황에게 질문했습니다. “교황님, 저는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교황의 답은 이래요. “누구도 사랑하는 법을 모릅니다. 매일 우리 스스로 배워나갈 뿐입니다.” 그래요. 사랑은 배우는 것입니다. 물론 느닷없이 사랑에 빠져들 때도 있어요. 그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이 일죠. 거기에는 약속(서약)을 지키는 일이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관계를 이어가겠다고 결심해요. 동시에 거기에는 관계에서 비롯하는 물리적심리적사회적 갈등이 발생하죠. 우리는 이 갈등을 매일 풀어나가야 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말다툼하고 싸워요. 왜냐하면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 사랑의 주체입니다. 그리고 당신 사랑의 대싱(객채)인 그를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은 객체이자 또한 그 사랑의 주체거든요.

 

바우만: 진실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은 발견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게 중요해요. 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레디메이드(ready-made)도 아니에요. 사랑은 지속적인 작업이에요. 끊임없는 노동입니다. 매일 아침 당신 앞에는 사랑하기 위해 다시 창조하고, 다시 규정하고, 다시 버리고 조정해야 하는 24시간이 놓여요.
야신스카 카니아: 매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거죠.
바우만: 객체와 주체가 섞여 있으므로 당신은 배우는 동시에 가르치는 것입니다.

 

바우만: 사랑이란 우리가 스스로를 위기에 놓아둠으로써 정확하게 구성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결코 몰라요. 그래도 사랑이라는 관계는 당신에게 고독, 외로움, 고립감을 뛰어넘도록 허락하잖아요. 사랑은 두 주체의 만남이고, ‘객체가 되는 시간까지 받아들이는 조건이 따릅니다. 다들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통치하고 싶어 하는데, 그러면 사랑은 불가능해져요.

 

  사랑을 남들보다 좀 늦게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 제대로 하는 사랑이 좀 늦었는데, 그 전에는 연애를 통해 나를 더 알게 되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그런 사색을 통해서 나를 알면 충분하지 않나? 이제와 돌아보니 관계 속에서 발견하는 나는 혼자만의 나와는 또 다른 면이 있다. 나는 매일 너와 나를 배우고 또 배운다. 여전히 그 과정은 몹시 즐겁고 행복하다.

 

 

마루야마 겐지(작가)

Q. 세뇌당하지 않고 자기 답을 얻으려면 전체 판을 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A. 판이 아니에요. 점 하나를 봐야합니다. (중략) 왜 점 하나가 중요할까요?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가장 중요한 한 점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그 지점이 우리 마음을 단단히 다잡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Q. 그렇다면 한 점, 어디에 찍어야 할까요?
A.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이것만은 지키겠다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자문해보고 이것을 양보하면 나는 내가 아니다 하는 것,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을 확보해야죠. 그것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겁니다.

 

Q. 당신의 한 점은 어디인가요?
A. 권력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것, 그뿐입니다.

 

  마루야마 겐지의 책을 읽으면 항상 ‘그래, 당신이 단호하고 날카로운 건 알겠는데 나 사실 좀 부담스러워’라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날카로워서 말이야. 좀 부드러워도 되지 않나? 칼 같은 그의 사유가 정말이지 잘 드러난 인터뷰였다. 나의 한 점이 어디인지 생각해 봤지만 난 당분간 정확한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 모든 것을 희생해도 이것만은 지키겠다는 그 지점, 그런 단호한 생각이 전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흑흑). 권력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그의 깔끔하고도 매서운 대답이 어쩐지 시원하다. 이러니 날카로워도 자꾸 그의 책을 찾게 된다(아, 그러고 보니 마침 그의 예약해 둔 그의 도서를 빌려가라는 통지를 받은 상태다. 찾으러 가야 하는데!).

 

 

셸리 케이건(철학자)

  이런저런 이유로 내일을 걱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 내일이 없다면 지금 여기의 삶을 어떻게 보낼지에 더 깊이 몰두할 거예요.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삶이 진귀하다는 가치를 깨우쳐주기 때문입니다. 삶은 드물게 누릴 수 있는 자원입니다. 더욱 다정한 언어로 채워야 하는 귀중한 시간이죠. 죽음의 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얻는 가장 큰 의미는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는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나요? 멍청한 일에 기웃거리고, 세상이 주입한 생각에 휩쓸리면서 말이죠. 죽음을 대면하는 일은 지금 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정말로 나의 유한한 시간을 쓸 만한 일인가?’를 스스로 묻게 합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마음을 생각하는 것과 마음이 다름을 처음 알게 된 책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큰 자연 속의 일부임을 깨닫고, 겸손하게 때론 사랑스럽게 모두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 노력하는 이유는 하나다.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는 없다. 두 번째 기회가 없음에 요즈음 자꾸 ‘죽음’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글을 읽게 된다. 죽음을 읽을수록 삶을 사랑하게 된다.

 

 

사피엔스의 마음
국내도서
저자 : 안희경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17.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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