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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Movie + Book Review]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 시모어(세이모어) 번스타인, 앤드류 하비

by 푸휴푸퓨 2019.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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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를 계속 읽기 위해 빌렸던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은 내게 또 다른 인생의 현자를 소개해 주었다. 책을 읽다 보면 발견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을 위해서 그 긴 시간 이런저런 책들을 읽는지도 모른다. 피아노를 통해 수도를 하고 있는 아흔 살의 세이모어(시모어보다 세이모어가 어쩐지 더 마음에 든다^-^) 번스타인을 알게 된 것은 내게 소소하지만 큰 축복이다.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을 읽으려고 펼치니 이 사람에 대해서 에단 호크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고, 이 책은 그에 대한 후속 인터뷰라고 적혀 있어 급하게 영화를 찾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책까지 읽고 나면 세이모어의 인생과 피아노에 대한 자세를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와 책을 섞어서 글을 남겨봐야지.

 

무대 위의 연주가 편해진 건, 50살 때였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무대에서 내가 원하는대로 연주할 수 있었어요.

 

  그는 무대공포증이 있었다고 한다. 공포증이라기보다는 무대에 대한 압박? 공연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테다. 에단 호크도 처음 세이모어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소재가 무대공포증이라 했다. 세이모어는 공연장에 들어가서 자신이 다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압박을 느꼈다. 그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무수한 연습과 끝까지 버텨내는 의지였다. 쉰 살이 되자 무대에 대한 공포보다는 원하는 대로의 연주가 가능해졌다기에 '아, 그때부터 꽃을 더 크게 피우셨나?' 했더니 아무도 모르게 은퇴 공연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가 공포에 맞서 싸운 이유는 하나다. 인생에서 더 많은 굴곡과 어려움을 만날 텐데, 지금의 압박을 이겨내고 일어나면 세상에게 더 당당하게 맞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멋지다. 자신을 이겨낸 사람은 정말이지 멋지다. 

 

  더이상 대중 공연을 하지 않은 그에게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이 많았다.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그의 제자가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러나 그는 진심이 가득 담긴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다.

 

무대에서 은퇴하고 그와 관련된 모든 긴장에서 해방된 뒤로 제 연주와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내가 배운 것을 제자들에게 넘겨줄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죠.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게 제 삶의 주된 목표였어요. 제자나 동료가 뭔가를 이해하도록 만들 때면 내가 목표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한 감정으로 이어지죠.

 

  그가 제자를 가르치는 장면이 영화에서 아주 많이 나온다. 그가 부드럽게 제자를 바라보는 시선, 제자의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 꼼꼼한 태도를 보면 그가 사회에 공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그는 뛰어난 예술가가 흔히 그러하듯 괴팍한 성질을 부릴 법도 한데, 항상 사근사근하고 평온하다. 옆에 있으면 어쩐지 고민 상담을 하고 싶어 지리란 예감이 든다.

 

  세이모어는 뛰어난 재능이 있어 사회와 거리를 두고싶어하거나(신경증적 태도), 예술가로서의 자신과 일상인으로써의 자신을 분리하는 이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두 가지는 연결되어야 한다. 삶만이 예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도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술을 탐구하는 끝에 우리는 진정한 삶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세이모어는 피아니스트이기에 "예술"을 탐구했지만, 우리는 각자 가진 재능을 탐구하면 되겠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난다고, 혹은 특정한 뭔가를 탐구하려는 내밀한 욕망이 있다고 확고하게 믿습니다. 재봉 기술, 정원 가꾸기, 혹은 요리가 될 수도 있어요. 그게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재능이든 간에 우리가 가진 재능이 우리 존재의 핵심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다고 재능이 있는지만 탐구하고 끝나서는 안된다. 재능의 발견과 더불어 그것을 끝까지 노력하고 연습해 길러내는 태도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세이모어는 에단 호크와 앤드류 하비를 처음 만난 후 연주를 들려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실제로 연주를 들려주기까지 매일 1시간씩 1년을 연습했다. 이후 영화 촬영이 확정되고 독주회를 여는 것이 결정되고 나서 그는 4개월 동안 매일 8시간을 연습했다. 그에게 예술성이란 연습과 노력으로 완성되는 무엇이다.

 

앤드류 하비: 누구든지 다른 인간의 그토록 발가벗겨진, 그러면서도 그토록 묵묵히 용감한 모습을 보면 큰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 모두 연약하고 쉽게 상처 받는 존재이지만 마음속 깊은 진실을 행동으로 옮겨야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입니다.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면서도 말입니다.
세이모어: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메시지는 우리가 삶을 자신의 양손으로 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구해주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도움을 바라고 찾은 멘토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되 자신을 구하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의 연습 과정과 노력을 들으면, 그래서 그가 이룩한 정신과 예술의 경지를 알게 되면 저절로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삶이 나에게 준 고난과 언덕을 끝까지 넘어간다. 그리고 세상과 하나가 된다.

 

  세이모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쩐지 격물치지를 말했던 성리학자들이 생각난다. 물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더니 그 안의 도가 보였다. 우리 안에는 세상을 이루는 원리가 모두 내재되어 있다. 그 원리를 잘 구현해내기 위해 우리는 수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동서양의 현자들은 결국 같은 깨달음을 얻었나 보다. 그는 또한 내세를 믿지 않는데, 이 지점도 성리학과 잘 어우러진다.

 

앤드류: 그렇다면 선생님은 내세를 믿지 않는군요.
세이모어: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내가 대답을 알도록 주어지지 않았다고 겸손하게 생각하렵니다. 내 인식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지각하는 모든 것, 지금도 계속 팽창하는 우주, 다양한 모습의 생명체, 이런 모든 것들의 신비를 관장하는 존재를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질문들에는 대답이 존재할 수 없다고 믿어요. (중략) 나는 대답이 없어도 됩니다. 경외감에 사로잡혀 무릎꿇고 경탄하는 것으로 충분해요. (중략) 우리는 하나입니다. 나는 지금 경이로운 영혼의 존재인 당신과 앉아서 바깥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 하나로 연결되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평화를 얻은 세이모어가 '나는 무엇을 이룩했다!'라고 외치는 이들과 달라 보이는 이유는 그가 자신에게 도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부심을 표현하는데 거만하지 않다. 이에 대해서 앤드류가 멋지게 설명한다. 

 

하비: 티베트 불교와 수피즘에 보면 신성한 자부심(divine pride)”이라고 하는 멋진 표현이 있습니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시로 여겨지며, 자신 안에 살고 있는 너그러움, 용기, 열정이라는 특징의 깊고 풍성함을 진심으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신성한 자부심과 자아도취의 차이는 이런 것 같아요. 자아도취에 빠져 있으면 이런 특징들을 자신의 것으로 내세웁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으면 이런 특징들이 자신 안에 있음을 알아보고 그것을 삶에, 다른 사람들에게, 창조성에 바칩니다.
번스타인: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내가 성취한 것에서 자기애나 자부심을 느낄 때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나오지 않았음을 확연히 느낍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내 안에 영혼의 저장고라는 장소가 있다고 상상합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 동물들에게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연결해주죠. 작곡을 하다가 음악적 해결책을 찾을 때, 대답을 구하고자 내 안에 있는 영혼의 저장고를 통했다는 것을 압니다.

 

  세이모어가 느끼는 '영혼의 저장고'라는, 모두를 하나로 연결하는 그것을 나도 찾고 싶다. 세이모어는 에단 호크의 영화가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벤트 이리라 이야기했다. 한 평생을 예술에 바친 그는 아직도 방 한 칸 반 짜리의 아파트에 산다. 방탕하게 살았나 했더니 작은 집에 살면 돈이 없지만 재능이 있는 학생들에게 레슨비를 받지 않을 수 있단다. 세상에, 세이모어에게 음악이란 우주의 질서이고, 음악을 통해 우리는 별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음악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느낄 수 있다.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를 말이다. 다른 책을 리뷰하면서도 쓴 말이지만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세상을 운용하는 도(道)가 내재되어 있음을 믿는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세이모어처럼 인생에서 그것을 찾을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평온하겠다.

 

내 두 손으로 하늘을 만질 수 있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 DVD
배급 : 에단 호크 / 세이모어 번스타인,에단 호크(ETHAN HAWKE)역
출시 : 201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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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국내도서
저자 : 시모어 번스타인,앤드루 하비 / 장호연역
출판 : 마음산책 2017.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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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세이모어가 통찰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말한 인식과 관찰 부분에서, 어쩐지 나는 나의 사랑에 대입하면 좋을 부분을 찾아서 기록해 둔다. 꿈에서 깨어난 연인이 되고 싶기 때문이지!

 

음악가들 중에는 인식과 관찰을 대면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인들처럼 꿈에서 깨어나기를 원치 않는 겁니다. 그들은 분석이 표현의 자유에 제한을 둔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음악도 결국에 보면 우리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 제한을 둬요. (중략)
여기서 두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관찰과 분석이 자발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맨 처음 일었던 사랑은 그저 흥분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진정한 사랑을 분석하다 보면 실제로 사라지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이따금씩 분석을 멈추고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해서 최초의 경험을 되살려야 합니다. 이런 일을 반복할 때마다 감정과 사고를 통제하는 힘이 커지고, 결국에는 원래의 반응이 되살아나고 심지어 강화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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