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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TC

[Play Review] 푸르른 날에 - 박윤희, 김영노 etc.

by 푸휴푸퓨 201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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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in PlayDB

 

  녹차밭이 보이는 암자에서 수행 중인 승려 여산(과거의 오민호)은 조카이자 ‘딸’인 운화의 결혼 소식을 듣는다. 그의 기억은 30여 년 전 전남대를 다니던 야학 선생 시절로 돌아간다. 당시 민호는 전통찻집 아르바이트생인 윤정혜와 사랑에 빠져 있었고, 정혜의 동생 기준은 민호를 친형처럼 의지하고 있었다. 5월 18일 광주민주화 항쟁이 터지고, 그 소용돌이 속에 정혜는 민호를 떠나보내고 도청을 사수하던 민호와 기준은 운명이 나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비겁한 자가 된 민호는 고문 후유증과 함께 정신이상을 겪고 삶을 포기한다. 자신을 들여다볼수록 진흙탕이고 거부하고 싶은 생, 결국 민호는 속세의 자신을 버리고 불가에 귀의한다. 민호와 정혜 사이에 생긴 딸 운화를 친형 진호가 거두었지만, 세월이 흘러 운화의 결혼에 이르러서는 끊을 수 없는 속세의 인연에 애달파 한다.

 


푸르른 날에

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출연
박윤희, 김영노, 최광희, 김학선, 남슬기
기간
2012.04.21(토) ~ 2012.05.20(일)
가격
전석 25,000원

 

  5.18 민주화 운동 관련 내용인줄 알았더라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햄릿의 괴상한 추억을 만들어준 바로 그 공연장인줄 알았더라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눈물이 나올만한 내용인 줄 알았더라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포스터에, 오월의 꽃바람 다하도록 죽지 않은 사랑이라는 사무치는 멘트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른채 나는 친구를 따라 쭐레쭐레 갔고, 보았고, 보았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오열(ㅋㅋㅋㅋㅋㅋ)한 뒤로 광주 민주화 항쟁 내용의 창작물을 본다면 필시 눈물콧물 다 흘릴 것을 깨달아 그 이후로 관련 공연은 그닥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당시 영상만 보아도 눈물이 나는데 공연이라니! 친구가 무심코 다른사람이 추천해 주었다며 제목을 말해주었는데 푸르른 날에라길래, 청춘 연극인가? 이런 순진한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그리고 마음이 쓸쓸해졌다.

 

  무서운 사건들을 겪고 나면 가장 힘든 사람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사건은 사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어서, 그걸 극복하는 무거운 과제가 이후의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흔한 드라마가 드라마이지 현실이 될 수 없는 것은 항상 사건의 클라이막스에서 모든 것이 끝날 뿐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살았는가?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 '푸르른 날에'는 사건 후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마음 절절하게 공감하면서도 실제 이러한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세부 사항만 다를 뿐 맥락은 비슷한 일들이 숱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대선 즈음인가, 광주 민주화 항쟁의 슬픔을 정말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광주에서 5월에 제사 없는 집은 없다'는 말이 페이스북을 떠돌아다녔다. 사실일 것이다. 그들의 투표 결과만 보아도 너무나 명확하니까. 연극을 보면서 절대 울지 않기로 다짐했고, 항쟁 장면에서 눈물이 치솟았지만 꾸역꾸역 눈물을 참았다. 그 뒤로는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극장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다들 알고 있으니까 흘리는 눈물이겠지. 시간이 지나 영원할 것만 같은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울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라 참았지만. 근데 참았더니 헛헛하더라.

 

  좋은 연극이었다. 가볍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는 나는 내용을 알았더라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나 연극은 내 마음을 애매하고 미묘한 기분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저 연극을 보았을 뿐이라고 위안하면, 광주의 그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얕은 마음의 평화 정도는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죄송하고, 그래서 내 마음은 애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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