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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3.8.18. 나의 평온을 가장 방해하는 건 나

by 푸휴푸퓨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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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험 삶의 현장에 다녀왔다. 쇼핑몰 타이쿤이 재미있어 보였고, 가끔 육체노동도 해보고 싶었고, 쇼핑몰에 대해 무엇이든 배우게 되면 언니에게 스마트스토어를 해보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 아무려나 아르바이트를 좋아했던 알바몬 천성이 어디 가겠어. 남자친구에게 들어온 제안을 얼른 수락하라고 종용했다가, 나까지 갈 수 있다기에 나도 간다고 얼른 손을 들었다. 새로운 경험 좋아! 아르바이트 좋아!

  힙한 티셔츠를 주로 파는 쇼핑몰은 여름세일 마지막 날이었고, 열흘 간의 세일 물량을 하루에 다 포장해야 했다. 수백 장의 티셔츠를 보며 의지를 다졌지. 좋오아. 이까짓 것쯤! 낮은 테이블 앞에 서서 허리를 굽히고 검수를 하려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꾀를 부려 물건을 높이 쌓아두고 일하자 허리는 나아졌지만 피로감이 어마어마했다. 티셔츠만 계속 집었을 뿐인데 마지막에는 팔이 아프더라고. 다음날 눈을 뜨니 얼굴은 퉁퉁 붓고 온 손가락 관절이 아팠다. 어르신의 관절염이 이런 통증일까? 욱신거리는 손을 부여잡고 정신도 부여잡으려는데 이미 정신은 어디로 나가고 없었다. 급기야는 퇴근 시간을 잊어버렸고(이게 말이 되나!), 지하철역 개찰구를 반대로 들어갔다. 집에 가자마자 저녁만 먹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도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았다. 피로를 푸는데 하루로도 부족한 나이가 와버린 거군.

  3일쯤 되니 이제 정신이 조금 돌아온다. 예전에는 몸을 쓰는 단순 아르바이트를 해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20대 초반의 몸이 지금이랑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두어 달 후에는 또 가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다. 이런 일에 휴일을 함께 써준 남자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달려드는 나와 함께해 주는 너에게, 막상 가서도 힘든 일은 혼자 더 맡아준 너에게, 끝나고 알바비를 탕진하며 저녁을 사주는 너에게, 이런 내게 너는 최고의 남자친구라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오늘도 손가락이 욱신거린다.

나를 위해서 이런 것도 챙겨와 주는데! (미니멀리즘과 한발짝 멀어지는 현실)

 

 

2.

  이번 주에는 머리를 비우고 읽어도 되는 가벼운 소설 두 편을 연달아 읽었다. 예상되는 결말이었고 정확히 그대로 끝났지만 읽은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사소한 것들, 친절함과 다정함이다. 겉이 얼마나 화려하건 내가 공허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금전적인 기본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느끼기는 하는데, 따뜻한 소설에서 돈 이야기는 하지 말자구~ (그러자구~)

  가벼운 소설을 훅훅 읽어나가며 내가 나를 조절하는 방법을 잘 익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의욕을 다잡고 싶을 땐 자기계발서를,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땐 타임킬링용 소설을,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할 땐 에세이를 읽는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방법이 궁금할 땐 사회과학이나 철학 책을 본다. (어렸을 땐 역사책도 많이 봤는데 안 본 지 오래되었고, 과학책은 예나 지금이나 읽지 않아 걱정이다. ) 익숙한 행동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힘들 때도 불안할 때도 나는 책으로 도피한다. 잘 쉬고 나오면 삶에 맞서 살아갈 힘이 난다.

  물론 도피처가 책만 있지는 않다. 가끔은 운동이 그 역할을 한다. 잡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땀을 흠뻑 흘리면 정신이 맑아진다. 상쾌함에 기분이 한결 나아지지. 힘이 나게 해주는 사람 도피처도 있고, 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한 주의 피로를 푸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1 년에 한두 번은 혼자만의 하루를 가져도 좋다. 혼자 전시를 보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신다. 생각을 하지 않을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를 돌보는 방법을 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평온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그 모든 자극에도 안정적인 나의 태도를 유지한다는 뜻으로 느껴진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이래도 저래도 나는 진실로 괜찮을 수 있는 상태. 행복할 때 그것이 행복임을 알고, 감사할 때 감사함을 깊이 느끼고, 힘들 때 힘든 나를 다독일 수 있고, 나를 가장 괴롭히는 나를 잘 끌고 하루를 또 살아가는 그런 나. 멋지다.

 

3.

  미니멀리즘을 고수하다 보면 사람이 재미없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왕왕 들었는데, 대단한 맥시멀리스트의 답변이 마음에 들어왔다. 물건의 소유보다는 물건과의 이야기를 소유함에 기뻐할 것. 이야기는 많을수록 풍요로우니까.

Q. 자발적으로 불필요한 일과 시간, 물건을 줄여 삶의 본질적 가치에 접근하자는 미니멀리즘이 호응을 얻고 있어요. 당신은 반대의 삶을 사는 것 같네요.

A. 지금처럼 불안과 위험이 가득한 시기에는 사람보다 물건이 위안을 주죠. 가장 오랫동안 내 곁을 지킨 것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비틀어지고 흠집이 났지만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쓴 물건을 더욱 소중히 아껴야 해요. 부담으로 다가오는 물건을 줄이고, 영감을 주는 물건을 가까이해야 하죠. 소유한 물건으로 나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방식은 버리세요. 소유해서 기쁜 것이 아니라 물건이 자신에게로 와서 쓸모 있게 되는 순간을 기쁘게 여기는 것, 물건 자체보다 물건에 얽힌 자신과의 이야기를 소유하는 즐거움을 알아야 해요.

Villiv 매거진,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소유하는 즐거움 with 프리랜서 패션 디렉터 브루노 로렌차노' 中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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