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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3.7.27. 조바심을 내려놓기

by 푸휴푸퓨 2023.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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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격이 급하다’와 같은 말은 ‘조바심이 자주 난다’가 아닐까. 회사에서도 일상에서도 조바심 대마왕인 나는 떠오를 때마다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되뇐다. 조바심을 내면 정신력을 과도하게 소모하고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누군가는 애를 써야 급해질 텐데, 나는 가만히 있으면 급함이 기본값이라 문득 급한 나를 깨달으면 앗차 싶다. 이번에도 그런 나를 깨달았고, 마음을 놓으니 편안해졌다는 이야기.

 

1.

  회사에서 상당히 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내가 합류하기 전부터 바퀴는 굴러갔고, 이제는 똑바로 가건 쓰러져서 가건 가기는 가야 한다. 인생에 이렇게 큰 일을 해본 적이 없어 이게 과연 될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일할 때 앞날을 세세히 계획하고 미리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건 뭐, 앞이 깜깜하니 상상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밤에도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대체 이 일을 어찌하나 싶었는데 나보다 먼저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동료 선생님이 가볍게 해답을 주었다.

 

"선생님은 대체 어떻게 이 일을 다 하세요? 걱정 되지 않으세요?"
"전 미리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만 해요."

 

  앞날이 깜깜하다고 깜깜함을 생각하면 뭐가 되겠나. 고민해 봐야 해결되는 일이 없어 더 힘겨웠는데, 고민 자체가 힘겨움의 원인이었던 거다. 혼자 하는 일도 아니니 말도 안되게 망하지도 않을 테다. 대신 내가 할 일은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인데, 하루하루 해내다 보면 일이 진척되어 있겠지.

  조바심은 내던지고 그날 할 수 있는 일만 하기로 했다. 대신 매일의 일을 최대한 잘하고 싶어서 요즘은 업무 능력을 높이는 책을 읽는다. 마음 편한 상사와 즐거웠지만 발전이 없었던 지난 2년을 보충하고 싶어. 나를 짜내는 이 시기가 나쁘지 않다.

 

막막할 땐 귀여운 걸 볼까

 

2.

  친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축사를 했는데 눈물 바다가 되었고 와중에 혼자 울지 않은 T의 이야기는 넘어가기로 한다). 오랜 친구이고 남편을 처음 사귀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켜보았기에 여느 결혼식과는 감회가 남달랐다. 집들이도 했다. 깔끔하게 인테리어한 집에서 요리하는 친구를 보려니 안정이 이런 건가 싶었다.

  육아휴직을 한 회사 동기의 집에 놀러갔다. 갓 100일을 넘긴 아기가 방긋방긋 웃었다. 어찌나 예쁜지, 아기에 무관심하다 못해 인류를 좋아하지 않는 나를 그 작은 아기가 사르륵 녹였다. 이런 아름다움이라면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아기를 싫어한다더니 갑자기 아기 숭배를 늘어놓는 내게 동기들은 너도 아기를 낳을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그런가?

  마침 남자친구가 자리를 잡았다. 새로 입사한 회사는 안정적이고 처우도 좋은 데다 배울 점이 많은 상사도 있다. 적응이야 천천히 하겠지만 인생의 다음 단계를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나? 노산이 되지 않으려면 시간이 얼마 없었다. 우리는 결혼에 필요한 대화를 꽤 많이 한 상태였다. 당장 결혼하자는 논의를 하지 않았을 뿐.

  갑자기 네가 언제 나에게 결혼을 하자고 말할지 마음이 급해졌다. 재테크를 잘 하려면 빨리 돈을 합치는 게 좋은데. 애를 생각해도 늦었고 돈을 생각해도 늦었어. 아니, 벌써 30대가 된 지도 한참인데 언제까지 20대처럼 연애만 해야 하는 거야!

  급한 마음이 턱밑까지 올라와 참을 수 없었다. 턱과 입은 가깝지. 입으로 툭 말이 나오기 시작하니 쌓아두었던 마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멈출 수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남자친구는 언제부터 그렇게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냐며, 별 생각이 없어 보였던 때와 달라진 계기가 있느냐 물었다. 그리고 본인이 요즘 하는 생각을 말해주었다. 방향을 잠시 틀었던 지난 회사의 2년 경력이 이번 회사의 실무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 경력직으로 들어갔는데 제 역할을 못해 마음이 힘들다는 것. 결혼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고 있고, 주변에도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물어보고 있다는 것.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나와는 달리 모으는 속도가 빠르지 못해서 걱정이 된다는 것도.

  남자친구의 질문에 갑자기 왜 결혼을 급히 생각했는지 되돌아보았다. 출산? 진짜로 낳고 싶기는 한가? 남자친구가 불임이라고 해도 아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재테크를 하는 게 뭐가 문제야? 풍족하진 않지만 궁핍하지도 않은데. 지금 합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도 아니고.

  생각에 박차를 가하다 보면 이 달음박질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기원도 방향도 모른 채 뛰기만 하던 마음을 잡기로 했다. 매일 노느라 바빠 서로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게 아쉬웠다. 너는 업무가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나름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도 없는 줄 알았다. 멈춰서 잘 둘러봤어야 했는데. 마음이 너무 급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돈은 하던 대로 잘 모으면 된다. 평범한 사람도 믿는 사람 앞에서는 유아 퇴행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너의 유아적인 모습을 보는 게 나의 특권임을 알지. 아이 대신 서로를 키우자고 생각했다. 결혼이 닥치면 받아들이고, 멀면 먼 대로 잘 살아야겠다고도 생각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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