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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4.1.30. 데굴데굴 굴러가는 이상한 날들

by 푸휴푸퓨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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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감이어도 죽으란 법은 없다고

  기관의 회계 마감 날짜를 착각했다. 15일에 메일이 왔는데 정신이 쏙 빠졌는지 눈으로만 읽고 머리는 이해를 안 했지 뭐야. 일주일이 지난 23일, 번뜩 생각이 나 메일을 다시 읽었고 올해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마감이 한 주 당겨진 상황을 깨달았다. 아니 안되는데! 회계 마지막의 마지막에 지출할 일이 있어 임박해서 처리하겠다고 적당히 읍소할 생각이었다. 이러면 적당한 읍소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헉 카카오 이모티콘을 쓸 수 있었다니...! 이제 알다니!)

 
  얼른 담당자에게 고해성사하고 나머지 예산을 처리하고 부랴부랴 퇴근하기까지는 좋았지. 할 수 있는 부분을 다 해내다니 이제 짬이 좀 찼다 싶었다. 그런데 운동도 다 끝내고 침대에 누우니까 끝없는 생각이 이어졌다. 한 주 일찍 깨우쳤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늘 들어가던 자책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한심하기 짝이 없지. 이 일은 일파만파 수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거야. 나 때문에 사람들이 싫은 소리를 하러 다녀야 해. 미약하게나마 ‘애초에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도움을 요청해야지 뭐 어째?’라는 마음이 떠올랐지만 자책의 힘이 너무 세서 나를 단념시킬 수가 없었다.
  괴로운 생각을 하다 밤을 꼴딱 새우고 3일만에 몇 kg가 빠져본 적이 있는 나는 이제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 얼마나 진이 빠지는지 안다. 쇠심줄처럼 끊기지 않는 생각을 억지로 멈췄다. 부정적인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순 없지만, 이제는 끊어야 한다는 사실은 알아. 해결할 것도 아니면서 나만 축내는 상상은 하지 말자.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청했다.
  일단 한 번 자면 꿀잠만 자는 나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굴렸는데 갑자기 요런조런 수가 생각났다. 이렇게 하면 지출을 좀 당길 수 있지 않을까. 전체 마감 날짜를 재무부서의 동기에게 확인해 보자. 계약 선생님에게 읍소해서 일정을 당겨보자. 어떻게 뭔가 윤곽이 좀 나올 것도 같고. 멋진 생각은 늘 아침에 떠오르고, 쓸데없는 생각은 늘 저녁에만 한다. 생각대로 된다면 해결이 될 것도 같았다.
  출근하자마자 생각해둔 단계대로 일을 처리했고, 여기저기 부딪혔더니 간단한 해결책이 나왔다. 역시 그렇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고, 이 직장은 더욱 그렇다. 제발 조바심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자. 대범하자.
 

2. 달이 두 개일 것만 같은 어느 금요일에

  기후동행카드 때문에 4일 정도 핸드폰으로 교통카드를 쓰지 못하게 됐다. 잘 꺼내지 않던 실물 카드를 달랑달랑 들고 다니다 이틀 만에 잃어버렸지. 개찰구 앞에서 황망해하다 다른 카드로 한 번 더 들어오는 값을 치르고 나갔다.
  이제 카드는 잘 기억하리라 다짐하며 지하철을 탄 오늘, 책을 읽는데 재미가 없어서 ‘아이고 재미 없다, 빨리 읽어 치워 버려야지’ 하다가 정신을 차리니 내려야 할 역 문이 닫히고 있었다. 마음으로 울부짖으며 얼른 다음 역에서 돌아간 덕에 간신히 지각은 면했다. 부랴부랴 출근 시스템 저장을 하고 가방을 열었는데 아뿔싸, 아침에 샐러드 위에 뿌렸던 발사믹이 가방에 새서 식초 냄새가 진동을 하지 뭐야.
  허겁지겁 내용물을 닦고 오전 업무를 시작하니 9시도 되기 전에 업체에서 업무 전화가 왔다. 회계 마감을 위해 몇 가지의 건을 급하게 진행하니 머리가 앞으로 뒤로 옆으로 굴렀다. 그래도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중이었는데 이건 또 무슨 일. 물건이 주문이 안 되는 거다. 물품 사는 홈페이지에 오류가 났다고는 생각도 못하고 내가 무엇을 잘못 눌렀나 싶어 온갖 버튼을 다 눌러보는 와중에 타 기관장의 상 소식이 들렸다. 모르쇠 하려고 하던 일(홈페이지 다 눌러보기)을 하는데 우리 기관장의 이름으로 화환을 보내야 한단다. 생전 처음으로 근조화환을 주문해 본다고 생각했는데 와중에 또 오프라인 결제만 가능한 상황. 부랴부랴 근조화환을 보내는 꽃집으로 달려가 결제를 하고 몇 시까지 배송해 준다는 약속을 받고.. 사무실에 돌아왔더니 오늘은 다과를 준비해야 하는 날.
  점심시간을 쪼개 사오기로 하고 사무실 선생님들과 밥을 먹으러 가서는 마들렌을 먹자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미리 지도에 표시해 둔 마들렌집 이름을 외쳤더니 길을 아는 분이 있어 따라갔지. 그런데 그 집 앞에 가서야 사실은 마카롱 가게라는 걸 알게 됐다. 예? 다른 분들은 내가 갑자기 마카롱 사러 가고 싶어서 말한 줄 알았다나. 제가 1시간 동안 마들렌 얘기하고 갑자기 마카롱 사러 가자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나요..? 흑흑. 배려심 가득한 선생님들 덕에 마카롱탈트붕괴가 올 뻔했지만 어쨌거나 그 집이 맛집이기는 해서 꼬끄와 마카롱을 잔뜩 샀다(후기: 짱맛!!!).
 

 
  오후에 자리에 앉아 마카롱을 먹으니 맛이 괜찮아서 기분이 좋아지던 참, 어제 방문했던 컴퓨터 부품 업체 직원이 전화를 했다. 혹시 자기가 놔두고 간 다이어리가 없냐며. 다이어리가 없어지면 얼마나 불편한 지 알기에 샅샅이 찾아줬는데 없더라고. 그 와중에 간다던 근조화환은 제 시간에 가지를 않고, 꽃집에 전화했더니 사장이 직원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배송에 잠깐 지연이 있기는 한데 곧 도착한다고 말해~) 전달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 다 힘들긴 마찬가지구만.
  오늘은 대체 무엇이 문제라 온갖 곳이 다 데굴데굴 굴러다닌단 말인가. 금요일이라 그런가. 다들 저녁에 치킨을 뜯으며 그래도 한 주가 다 지나가기는 했네, 하며 한숨을 쉴까. 늘 천방지축한 일상을 살기는 하지만 오늘은 압도적으로 유난한 하루라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에서 내려 혹시 하늘에 달이 두 개 떠있는 건 아닌지 잘 살펴볼 일이다. 자기 전까지 더 이상 사건사고는 없었으면 해~
 

3. 아는 울적함과 모르는 회복탄력성

  지난 2주 간은 묘하게 정신이 없었다. (위의 에피소드들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지.) 정신이 있거나 없거나 해내야 하는 일이 있고 가야할 약속이 있다. 닥치는 대로 쳐내고 나니 주말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쩐지 월요일은 조금 평안했고.
  정신이 없었던 건 활력있게 바쁜 게 아니라 기분이 가라앉은 채 바빴기 때문이다. 울적하기도 했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 같았고, 기관장의 한 마디가 나를 재단하는 기분이었고, 결혼은 어찌 되어가느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히는 게 시무룩했다. 내가 가진 것 중에 괜찮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기분. 마음이 내려앉을 때마다 느끼는 꽤나 익숙한 기분.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애매하게 울적한 주말을 보내고 난 뒤 월요일이 되니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기분이 나아졌다. 일을 해서 활력이 돌아서 그런가. 문제가 봉합되는 주간이라 그런가. 울적하기도 지쳐서 그런가. 알 수 없는 나의 회복탄력성에 셀프 감사를 표하며 우울이 조용히 지나감에 안도한다. 평정심을 찾고 문제는 다시 생각해 볼 생각이다. 차분하고 꼼꼼하게.

컵도 예쁘고 컵받침도 예쁘고 그릇도 예쁘고 케이크도 맛있고 커피도 취향저격에 가구들도 깔끔하니 마음에 들었던 DAY 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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