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BOOK

[Book Review] 어쩌다 한국인 - 허태균

by 푸휴푸퓨 2016. 4. 23.
728x90
반응형

 

 

 

 

  인터넷으로 기사를 읽으면 필연적으로 댓글까지 시선이 가는데, 그것들을 읽을 때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기는 상당히 힘들다. 이래서 헬조선, 미개하다는 분 또 1승, 미국이나 유럽같은 선진국은 이런데 우리는 이게 뭐냐... 서양의 문화를 동경한 적도 있었지마는, 잠깐이나마 해외에서 시간을 보내고 왔더니 그같은 시선이 참 많이 변했다. 선진국 문화가 별거냐. 우리 문화가 어디가 어때서.

 

  꼭 서양만큼 개방적이여야하고, 쿨해야 하고, 개인을 존중해야 하고, 깔끔하고 그런 문화만 좋은 거야? 가족을 중시하고, 정이 끈끈하고, 화날 때 화 낼고 뒤끝없이 풀리고, 누구보다 끓어오르기를 잘 하고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하느냔 말이다. 나는 댓글이 우리 문화도 좋다고 말하기를 바란다. 역시나 우리는 이 정도밖에 안돼, 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 나름의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어, 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여과없이 무조건 "한국 문화가 최고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잘못된 것은 고치고 우리의 특징은 그대로 살렸으면 하는 것 뿐이다. 일단 자부심을 좀 가졌으면 좋겠고(국뽕이란 말 정말 싫다. 우리 것을 좋아하는 게 뭐 어때서?) 또 고쳐야 할 점도 찬찬히 살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심리학'을 이야기하는 이 책이 참 흥미로웠다. 모든 포인트에서 100%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저자는 한국 사회의 특징 여섯 가지를 꼽아 이야기를 이어나간다(주체성, 가족확장성, 관계주의, 심정중심주의, 복합유연성, 불확실성 회피).

 

  우리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것을 가진 이들의 예로 꼭 9.11 테러범을 이야기해야 했는지 멈칫했다. 또 국민들이 연속되는 선거를 통해 동일한 세력에 대해 연속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은 것이 정말 문제인지 잘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멈칫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지만은, 꼭 짚어서 좋았던 부분들을 남겨두려고 한다.

 

 

한국의 많은 기성세대들의 존재감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중략)

이들에게 이런 관계적 존재감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 상황은 너무나도 불안하고 동시에 좌절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갑질은 바로 그런 존재감의 상실에서 비롯된 분노가 원인이었다.

 

 

  갑질이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사회 현상은 아니라고 알고 있기에 이 해석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갑질이 일어나는 다른 사회의 사람들도 존재감을 관계 속에서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설명이 끝이 없겠지. 갑으로써의 대우를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발끈하는 우리 사회의 심리를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카페 바리스타의 (우리 나라 아르바이트생들과는 판연히 다른) 퉁명스러운 태도로 인해 처음에 무시당한다 생각하고 얼마나 부들부들 떨었나. 문제는 영어일까, 얼굴색일까 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은 단지 행정부의 수반이 아니다.

가족확장적 한국인들에게 대통령은 곧 어버이와 같은 존재처럼 여겨진다.

(중략)

2015년 한국 사회가 메르스와 심각한 가뭄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누군가가 농담 삼아 옛날에는 역병과 가뭄의 책임이 군주에 있었다라고 얘기하는 걸 들었다.

비록 농담이었지만 한국 사람의 마음이 아직 그러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얘기하면 안된다. 그게 누가 됐건 바로 이런 마음을 바탕으로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의 리더들이 선출된 것이다." 이 감정을 왜 미개한 종특이라며 딴죽을 거는지 나는 그런 시니컬한 반응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왜 안돼?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건 틀린 게 아냐. 한국의 리더라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함과 동시에 저 마음까지 잘 만져줄 수 있어야 하는 거다. 이 부분을 읽다가는 정말 속이 시원했다.

 

 

착각적 통제감과 비현실적 낙관주의는 서로 협동해서 인고의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금 고생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뭔가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그것이 미래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상관없이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믿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 더 고생해야지 훗날 더 크게 성공할 거라는 믿음에,

현재를 더 고생스럽고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몰아넣으려 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사실 이 믿음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한국인이 완전히 모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랬다면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느니, '가장 공정한 결과가 나오는 건 시험'이라느니 하는 말은 나오지 않을테니까. 보상은 노력에 비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장밋빛 미래를 눈가리고 아웅식으로라도 정말 믿었더랬다. 보상은 노력에 비례하지 않으니 꼭 보상이 어마어마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지금 즐겁게 할 수 있을만한 걸 찾는게 중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믿음은 분명 우리 부모님의 삶과 많은 차이가 있다.

 

 

한국의 교육체계는 마치 재미를 무슨 전염병이라도 되듯이 치부하는 것 같다. (중략)

그저 국영수를 얼마나 쉽게 가르칠 수 있을지만 고민한다. 국영수만 쉬워지면 청소년들이 즐거워서 춤을 추게 될까?

고래가 재미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춤추는 것처럼 행동하고 돌아다니면, 그건 미친 고래일 가능성이 높다.

 

 

  미친 고래라니, 미친 고래라니! 이 미친 고래라는 단어를 보고 나는 저자의 얼굴 앞에서 진심으로 박수를 짝짝짝 치고 싶어졌다. 어휴, 미친 고래였던 1인이 보내는 박수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주는 어른이 더더더 많아져서 고통받는 10대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공부를 안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국어도 영어도 수학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좀 더 재미있을 수 있게, 각자에 맞게, 공부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가 언젠가 자식을 낳았을 때 욕심 많은 내가 그 아이를 미친 고래로 만들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성숙의 사회로 가는 가장 좋은 지름길은 각자 알아서 노는 것이다.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고, 저 옛날에 그러했던 것처럼 함께 어우러져 흥을 즐길 줄 아는 한국인이 되기를. 나는 한국이 아무리 살기 어려워져도 한국을 떠나서 살지 않을 거다. 그렇기에 한국을 더 잘 알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또 발전하기를 바란다. 나를 더 잘 알기 위해 심리학을 읽듯 우리 나라를 더 잘 알고 싶어 이 책을 읽었다. 어쩌다가 한국인이 되었지만 그것이 썩 나쁘지는 않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생각하고 또 삶이 덜 힘들어지기를 바란다. 이 책이 그것에 직접적으로 일조해주지는 못하지만 원래 심리학 책이란 게 그런 것 아닌가. 뭐가 문제인지 몰라 읽어보고 하나의 해석을 알게 되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주.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