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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3.7.3. 나는 늙고 나는 젊다

by 푸휴푸퓨 2023.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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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든다. 노화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에는 내가 아줌마가 되어간다고 느끼는 이유를 정리해 보았다. 첫째, 기억력이 감퇴한다고 몹시 매우 심각하게 느낀다. 정신이 없다거나 예전보다 얕아졌다는 수준이 아니다. 아예 생전 처음 듣는 사람처럼 갸우뚱하는 일이 생긴다. 말하고 싶은 영화의 제목이 ‘인사이드아웃’이라는 걸 한 시간이 넘게 생각해 내려 애쓴 건 놀랍지 않다. 놀라운 건 제목을 찾아본 후에도 ‘맞아!’ 하며 쾌재를 부르지 못했다는 거다. 회사 회의실 비밀번호-이자 사무실 번호이자 서고 번호-를 잊어서 동료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했던 적도 있다(역시나 숫자를 듣고도 손뼉을 짝 치는 반응을 할 수 없었다).

  둘째, 남의 시선보다 내 편안함이 중요해졌다. 지하철에서 멀리 자리가 났는데 아무도 욕심 내지 않으면 쾌재를 부르며 그리로 이동한다(쿨한 젊은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서 있다). 패션 신발 대신 편한 신발만을 신고, 옷은 통풍과 촉감이 모양보다 중요하다. 일정한 수준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서 무리한 활동을 이어서 하지 않는다. 힘들면 참고 아무렇지 않은 척할 게 아니라 일단 잠깐 쉬는 게 낫다. 아이고, 하면서.

  셋째, 20대 초반이나 10대 학생들을 보며 젊으니까 참 예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젊음만으로도 예쁜게 무엇인지 알아버렸어. 여드름은 젊음의 상징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싫어했는데 요즘은 젊어서 여드름이 났다고 생각한다. 활발해 보이는 친구는 활발해서, 차분해 보이는 친구는 차분해서 예쁘다. 있는 힘을 다해 꾸민 모습도 귀엽다. 이러다 말까지 거는 아줌마가 되는 건 아니겠지. (20대 초반의 내가 너스레를 떠는 지금의 나를 보면 깜짝 놀라겠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에게 막 말을 걸 정도는 못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다 나쁘지는 않다.

  어젯밤, 낮잠을 길게 잤다 싶었는데 역시나 새벽 두 시가 넘어가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얼른 자야 한다는 압박감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일요일의 끝자락을 즐기려고 애쓰는데 어젯밤엔 비일상적인 수준으로 마음이 나락에 빠져들었다. 뭐야. 이건 좀 이상한데. 내가 쌓은 인생이 너무나 하잘 것 없고, 나는 회사에서 지난 6년 간 내내 실패의 경험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사면초가의 인생에서 나는 격렬한 발버둥마저도 치지 않고 있네.

  한편으로는 얼마 전까지 평온하다며 만족하던 내가 정 반대의 생각을 하는 게 수상했다. 이 생각은 진짜 내 생각인가? 굳이 생각을 굴려서 더 커지게 만들 필요가 있나? 이 늪으로 빠져들면 안 되겠어. 억지로 생각을 멈추기 위해 애썼다(호흡에 집중하면 생각이 멈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스르륵 잠이 들었고, 아침이 밝았고, 부스스 일어나니 눈이 빠지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오전 중에 생리가 터졌다. 수상한 기척이나마 알아챈 건 나를 잘 알려고 노력했던 과거의 내 덕이다.

 

  호호 할머니같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지만, 늘 같은 속도로 시간을 지나고 있을 뿐 갑자기 중늙은이가 되지는 않았다. 얼마 전 지하철 옆자리 어머님이 내리시기 직전에 ‘근데 손이 참 예쁘다’고 용기 내서 말씀하셨다. 화들짝 놀랐지. 말씀과 함께 잠깐 보여주신 아주머니의 손은 꾸준히 일한 시간이 곱게 쌓인 손이었다. 하얀 내 손을 보며 ‘그래, 나는 아직 젊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10대의 나는 애늙은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30대의 나도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좋아한다. 참 꾸준하기도 하다.

하늘을 보고 감탄하는 오래된 나와 북한산 바위를 보며 감탄하는 요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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