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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4.2.20. 나를 이루는 결핍과 성정과 꿈과 그런 것들

by 푸휴푸퓨 2024.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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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년 후의 내가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내가 결핍을 멋지게 이겨낼 수 있도록

  경제 강의를 듣다 강연자가 “지금 나의 결핍이 10년 후의 나를 결정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돌아봤더니 정말 그렇게 살았더라. 언니와 비교되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일구어 내고 싶어 애썼던 10대를 지나 대학 이름을 얻었고, 책 속에서의 고요함과 안정성을 얻고 싶어 사회 속에서 고군분투한 20대를 지나 제법 큰 도서관의 직원이 되었다. 동일한 말을 반대로 생각해 온 듯도 하다. “3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고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를 늘 생각했으니까.

  강연자는 이에 더해 “그러니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줄 결핍을 채워야 한다”라고 했다. 어떤 결핍을 채웠느냐에 따라 삶이 전혀 달라지니까. 그래서 지금 채우고 싶은 결핍을 고민해 보았는데,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커리어의 방향성이 없다는 것. 직원의 성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발령을 내는 조직에서 일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의 전문 영역을 구축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우연찮게도 입사하자마자 공간 관련 연구 업무를 했고, 지금은 더 큰 스케일로 공간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인테리어랑 가구를 좋아하지. 성향에도 맞고 재미도 있어서 저녁에도 주말에도 업무 생각을 한다. 이 길이 좋으면서 탐구를 안 하고 있단 말이야? 작년부터 공간 관련 연구 자료를 찾아보자고 생각했는데 내내 미루기만 했다. 깨달은 김에 업무라고 생각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두 번째 불신은 운동이다. 가슴 한 구석에 의지가 박약한 나에 대한 불신이 있다. 성공 경험을 쌓아야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는데 운동이나 다이어트 관련해서는 가슴 뿌듯한 경험이 전혀 없다. 그나마 근 몇 년간 꾸준히 PT를 해서 체중 증가는 없었다는 거? 올해 주 4일 운동 가기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치면 마음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은 매년 연초에는 성공적이다가도 가을에는 흐지부지였다. 10년 후에도 제자리이지 않으려면 마음을 다잡아야 해.

  어느 날은 잘 살아보자고 나를 다독이고, 어느 날은 내가 싫어서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이제는 알지. 내내 싫기만 하지는 않고, 또 괜찮아지는 날이 오기는 온다는 거. 그걸 회복탄력성이라 부르며 강하지 못한 나를 내가 억지로 끌고 간다. 멋진 결핍을 가진 사람이 되자. 구멍을 튼튼하게 메꾸는 사람이 되자. 힘내.

 

2. FIRE 말고 두 번째 꿈 찾기

  이틀 새 두 명이 같은 질문을 했다. “얼마 있으면 은퇴할 거야?” 깊게 고민하지 않고 답을 했다. 지금 나이에 퇴직한다면 50억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집값으로 20억, 생활비로 30억을 생각한 대답이었다.

  서울 시내 마음의 드는 위치의 32평짜리 집을 얻으려면 20억은 있어야겠지. 은퇴하면 돈을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쓰는 게 문제니 생활비로 30억이 필요하다. 자산 로드맵을 보니 50억은 지금 기준으로는 59세에나 모을 수 있었다. 이러면 빠른 은퇴가 아니라 그냥 때가 되어서 은퇴하는 것 같은데.

  FIRE를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은 건 내가 직장을 좋아해서였다. 그 안에서의 시간이 어떠하든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 매일 출근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한 가지 직업으로 평생을 살기보다는 새로운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50세에 은퇴하는 건 어떨까. 새로 시작하기에 좋은 나이일 것 같아.

  늘 글 쓰는 삶을 갈망하지만 내 글이 사회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아쉽다. 그렇다면 50세까지 내가 벼려야 하는 능력은 유의미한 글을 쓰는 법이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글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또 현실적으로 은퇴 비용이 얼마나 필요할 지도 생각해 봐야겠다. 이른 은퇴는 얼마가 있을 때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다른 일이 강렬하게 있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이구나. 막연히 65세까지 이 직장에서 뭉개려고 생각할 땐 의욕이 없었는데, 50세까지 약 10여 년만 남았다고 생각하려니 이 직장에서의 마음가짐도 달라지는 기분이다. 그래, 30년은 너무 길지?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나를 더 성장시켜 줄지도 모르겠다.

 

3. 난 다정한 사람은 아닌가봐

  주말에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를 보았다. 코미디인 줄 알고 보았는데 어디가 코미디인지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영화 속 다툼을 보면서 뭐 이렇게까지 하나 싶게 의아했지만 자꾸 되새김질하게 되는 게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였던 모양이다. 어떤 영화는 그렇다. 볼 때는 모르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굉장히 좋은.

  일상의 소소한 다정함이 의미 있는 사람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무언가가 의미 있는 사람의 갈등이었다. 끝을 모르는 상냥함을 보여주는 시골 똥강아지와 혼자 고요와 사색에 잠기고픈 예민한 고양이의 싸움을 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나는 약간의 거리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기에 손가락을 자를 만큼 고독이 간절한 콜름의 마음이 일면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손가락을 자를까? 우울증을 너무 상대 탓으로 돌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의 실존에의 탐구가 너에게 상처를 준다면 나는 내 사색을 포기해야 할까. 콜름은 화가 나도 너의 손가락을 자를 순 없는 사람이다. 길에서 얻어맞는 너를 챙겨 데려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하루아침에 일언반구의 힌트도 없이 상대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모두의 앞에서 너를 무시해 버리지. 콜름은 냉정한 사람인가? 파우릭은 다정하기만 한가? 상대가 치를 떠는 다정함은 정말 다정한 게 맞나? 파우릭은 상냥하고 항상 착한 선택을 하고 동네 바보와 교류하는 사람이다. 동물을 아끼고 실수에는 꼭 사과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유를 듣지 못하면 상대의 기분과 상관없이 물러날 수 없다. 납득할 수 없다고 하는데 어딘가 아둔해서 납득하는 범위가 좁다.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 없는 영화였고 그래서 더 오래 생각했다.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인간은 익명성에 도망칠 수 있는 도시가 좋다는 결론을 내렸는데요. 인간관계를 한 사람에게 몰빵 하는 것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그나마 제일 멀쩡해 보였고 나의 성향과 비슷했던 인물이 나와 같은 직업까지 얻는 걸 보며 그래, 역시 책의 숲이 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 몰라! 책 좋아!

등장 인물들이 전부 어찌나 연기를 잘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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