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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소년이 온다 - 한강

by 푸휴푸퓨 2016.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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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감상을 써야할까 고민했지만, 읽었다는 것을 남기기 위해 써 둔다. 허튼 글을 써서는 안될 것만 같다.

 

  나는 책이 즐거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건 나에게 취미이고(어쩐지 아니게 되어버린 듯도 한 현재 나의 신변을 제외한다면 여전히 내 생각은 그렇다) 그래서 기분이 이상해지는 책은 읽고 싶지 않다. 책만 그런 건 아니다. 책도, 연극도, 영화도 그렇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나는 피한다.

 

  이 책이 그날 광주의 이야기인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읽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이렇게 유명한 작가의 책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읽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나는 또 그게 가능하고, 읽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부끄럽지만 여하간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회피하고 모르는 셈 친다. 그러면 내가 사는 세상에는 불편한 것들이 없는 것들도 같다. 대신 밝은 세상을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종잇장처럼 가벼운 믿음일 뿐이어서 나는 항상 이렇게 공격을 당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면서 불편하다는 이유로 회피하는 것은 비겁하다. 자, 여기 이런 일이 있었는데 정말 모른 척만 할꺼야. 한강 작가가 생생히 써내는 그날의 이야기는 하루만으로, 또 과거의 어느 사건만으로 끝나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저는 그 폭력의 경험을, 열흘이란 짧은 항쟁 기간으로 국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체르노빌의 피폭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몇십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허락된다면 앞으로 십년 후에도 후속 논문을 쓰려고 합니다.

부디 저를 도와주십시오. 기억을 더듬어 증언을 보태주십시오.(162쪽)

 

 

  모두가 증언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래도 5.18을 겪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친구를 놓쳐버린 중학생과, 이미 죽어버린 친구와, 같이 시신을 수습하는 누나들과, 빨리 걷던 진수와 밥을 나눠먹었던 사람과, 그리고 중학생의 어머니, 그러니까 동호의 어머니까지 이야기는 이어진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만약 거기 있었더라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정의롭지도 용감하지도 않은 비겁자인 나는.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135쪽)

 

 

  마지막 문단을 썼다, 지웠다 하고 있다. 적당히 적당한 말을 해서는 안될 것 같은데 가벼운 상투적인 말을 남발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잊지 않고 있다는 것 하나만을 말한다. 안개꽃이 흐드러진 책을 무심코 집어 들었는데, 많이 아팠다. 많이 아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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