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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140

[Book Review] 차이에서 배워라 - 해나 개즈비 스탠딩 코미디를 즐겨보는 한국인이 많을까? 한 명의 코미디언이 나와 한 시간 넘게 재담을 늘어놓으면, 정해진 듯한 시점에 관객 모두가 아하하 웃는다. 그게 재미있나? 왜 그걸 듣고 있지? 의구심을 갖고 보기 시작한 해나 개즈비의 ‘나네트’(한국 제목 ‘나의 이야기’)는 코미디를 섞어놓은 강연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오, 이래서 보나? 그냥 강연은 재미가 없으니 웃음을 섞여내는 건가 싶었다. 얕은 깨달음은 해나의 두 번째 넷플릭스 스탠딩 코미디 ‘나의 더글라스’를 보고 산산이 부서졌다. 나네트를 보고 ‘강연이냐?’며 비꼬는 남성의 “의견”이 많았다는거야. 스탠딩 코미디가 진심으로 재미를 위해 관람하는 장르라면, 나네트가 서구 사회에 던진 충격은 상당히 컸겠구나 싶었다. 예상치 못한 맞는 말을 듣고 머리가.. 2023. 4. 13.
[Book Reivew]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 이은재 완벽한 길을 찾을 수 없음을 핑계 삼아 멈추고 자책하는 것은 편할 뿐 무익하다. 유튜버 히조(heejo)의 영상을 보다 '지구용 레터(구독은 여기!)'를 알게 되었다. 여러 뉴스레터를 받아보지만 환경 관련 레터는 생각도 못했지 뭐야! 바로 구독한 뒤 매번 관심 있게 읽고 있다. 덕분에 이 책도 알게 되었다(타깃층이 찰떡같은 두 콘텐츠의 콜라보레이션이로고). 제로웨이스트를 하면 늘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데, 이럴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된다. "예뻐서, 예뻐서 주는거야." '예뻐서'라는 말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하셨다. 감사합니다, 인사하며 돌아서는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열 개쯤 떠올랐다. 내 얼굴이 예쁜 걸까, 아니면 비닐을 거절한 게 예쁜 걸까? 양쪽 다 가능성이 큰(?),.. 2022. 9. 8.
[Book Review] 행복을 파는 브랜드, 오롤리데이 - 박신후 오롤리데이의 여정에 대한 깔끔한 회고록이고, 매력적인 브랜드 홍보물이며, 팬에게는 존재가 고마울 멋진 굿즈 오롤리데이라는 브랜드를 전혀 몰랐지만 저자의 솔직함이 느껴지는 듣똑라 인터뷰를 듣고 읽을 마음이 생겼다. 나는 퍼스널 브랜딩을 갈망하고 공기업의 특성을 가진 내 회사와 사기업의 차이가 늘 궁금하다. 이 책은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사장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를 기꺼이 보여준다. 저자의 진심을 담뿍 느낄 수 있는데, 브랜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뿐만 아니라 오롤리데이 팬이라면 읽으면서 행복할 것 같다. 이런 브랜드를 알아본 자신이 기특해서 칭찬의 박수를 세 번 칠 듯. 우리만의 슬로건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략) '오롤리데이는 당신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라니. 굉장히 자신감 넘.. 2022. 8. 19.
[Book Review] 나, 프랜 리보위츠 - 프랜 리보위츠 뉴욕 사람 프랜 리보위츠를 가감없이 들여다보자! 작년 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을 본 뒤 출간을 소원하게 된 프랜 리보위츠의 책이 드디어 나왔다(다큐를 보고 신나서 작성한 후기는 여기).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반가운(!) 소식에 냉큼 움직여 빠르게 리보위츠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책은 Metropolitan Life와 Social Sciences를 묶어서 낸 판본으로, 우아름 역자의 첫 번역품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1970년대에 출간된 책이다보니 지금의 시각에서는 헉 소리가 나오는 과격한 농담도 있다. 5년 전 개그프로 클립만 보아도 놀라운 대사가 많으니 수십년 전 책이 놀랍지 않으면 이상하지. 물론 리보위츠는 이에 대해 본인다운 답이 있다. 물론 이제 기분 반지, CB라디오, 디.. 2022. 8. 5.
[Book Review] 불쉿 잡 - 데이비드 그레이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가장 놀랐던 부분은 사무실에서 빈둥대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대학생 때는 쉬는 시간을 쪼개가며 책을 읽었는데, 여기서는 몇 시간씩 일이 없어도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바쁘지 않아도 무조건 바쁜 척을 해야 했다. 새로 일을 받고 싶단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내 일은 상사의 책임 하에 있기 때문에, 그가 원치 않으면 나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회사를 한 차례 바꿨지만 비슷한 곳이었다. 책임을 적게 지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게 익숙해졌다. 적당히 노는 법을 너무 잘 알아서, 정신 차리고 종일 일하면 기가 다 빠진다. 이런 내 모습을 좋아하지는 않아서 불안에 떨었다. 모두가 달려가는 세상에서 나만 도태되는 듯한 마음. 불쉿 잡은 너만 그렇지.. 2022. 1. 7.
[Book Review]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 플러피모먼트(Fluffy Moment) 대책 없이 싱그러운 젊음은 어쩌면 헤어짐을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죽음을 배우고 빈자리를 느낀다. 억장이 무너졌다가 후회해야 소용없다는 생각을 한다. 점점 기억이 옅어져 아파하지 않을 나를 생각하며 두려움에 떤다. 무서워도 쓸쓸해도 시간은 가고 일상은 흘러서 이제는 문득 담담한 나를 발견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헤어짐에 익숙해진다는 뜻인가. 익숙하다고 괜찮은 건 아니지만. 슬픔이 휘몰아치는 이야기를 담은 플러피 모먼트의 첫 책 '개가 있는 건 아닌데 없지도 않고요'는 죽음 이후를 견디던 내게 실은 모두가 같은 아픔을 참고 산다는 걸 알려주었다.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때와 작가가 상실을 겪은 때가 몇 달 차이 나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아픔은 마찬가지니까. 하나 다른 게 있다.. 2021. 11. 29.
[Book Review] 뭐든 다 배달합니다 - 김하영 플랫폼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는 시대, 긱 이코노미가 증가한다던가 전통적인 형태의 노동자만이 노동자가 아니라던가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매일 의자에 앉아있는 나는 혼자 도태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 N잡러라는 말은 유행이라 말하기도 무색하게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사회학을 전공한 기자였던 저자는 직접 세 개의 플랫폼 일자리를 경험해 책을 썼다. 책 전체에서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데, 한 개의 플랫폼만 겪었다면 느낄 수 없는 흐름을 세 개의 플랫폼을 묶어두니 쉽게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흐름은 딱 하나다. 기술은 똑똑하고, 인간은 기계의 효율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 '생각'이라는 것은 이미 인공지능이 다 하고 있고, 사람은 그저 인공지능의 팔다리를 대신한다. 물론 이미 로봇 팔다리가 나와.. 2021. 11. 3.
[Book Review] 찰리와 함께한 여행 - 존 스타인벡(이정우 옮김) 1960년 한 미국 작가의 여행을 1965년 어느 번역가가 한국에 전했다. 멋진 관광지를 소개하거나 세련된 일화를 소개하지도 않지만 다음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1960년에 이미 할아버지였던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냐며 감탄한다. 멋지다. 존 스타인벡이 58세에 반려견 찰리와 함께 로시난테호(트럭)를 타고 미국을 일주한 여행기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생각과 여행하며 마주친 이들을 관찰한 이야기가 담겼다. 출판사에서 어느 정도 편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시절 백인 남성이라면 으레 지닐 법한 꼰대적 기질이나 마초 성향이 엿보이지 않아 읽기에 편안하다. 우리가 산더미처럼 내다 버리는 물건이 쓰는 물건보다 많다. 바로 이 사실만 가지고도 우리는 미국이란 나라의 생산이 가지는 대담무쌍한 풍요를 엿볼 수 있.. 2021. 8. 27.
[Book Review]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 쓰무라 기쿠코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번아웃이 온 주인공이 단기 일자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의 입을 빌리자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일을 그만뒀는데 그때부터는 고용센터에서 소개해주는 대로 단기 계약직을 전전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꽤 일을 잘한다.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건을 혼자 발견하고 훌륭히 마무리한다. 스스로 잘났다는 칭찬도 못났다는 우울도 없이 담담하게 하루하루 일을 수행한다. 오래지 않아 그 일을 하지 않으리란 단기직의 특징 때문인지 주인공은 늘 일과 자신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 1년의 단기 직업 체험이 끝난 후 그녀가 깨닫게 되는 건 아래와 같다.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지만 대체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2021. 7. 23.
[Book Review] 다시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 야마시타 히데코 들어는 봤지만 큰 관심을 가지진 않았던 단어 '단사리(斷捨離)'. 일본에서 미니멀라이프를 부르는 말인가 보다 했는데 그 말을 직접 퍼뜨린 이의 책을 읽게 되었다. 미니멀에 관련된 책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발견하는 순간은 여전히 기쁘다. 기억해둘 만한 단상이 몇몇 있었다. 지금 우리는 물건을 스스로 골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제멋대로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물건이 쌓인다. 호의로 사주신 커피 한 잔에는 일회용 커피컵과 빨대가 따라온다. 가루커피를 다 먹고 나니 단단한 유리병이 남는다. 한 번 써보시라며 칫솔세트를 받았다. 택배에 따라온 뽁뽁이는 몇 달째 새것처럼 서랍에 잠들어 있다. 모두 다 내가 쓸 일은 없다. 버릴 수도 없다. 질이 좋은 물건은 잘 처분하는데,.. 2021. 7. 20.
[Book Review] 요즘 애들에게 팝니다 - 김동욱 '90년생의 마음을 흔드는 마케팅 코드 13'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을 읽는 목적은 한 가지다. 잘 정리된 다양한 마케팅 사례를 한 눈에 보는 것. 직접 찾아보기 귀찮으니 떠먹여달라는 심보다. 밀레니얼의 특징을 적당히 정리하고 몇몇 브랜드를 알게 되겠지. 모르는 사례가 많았으면 하는 간단한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시작부터 독특했다. 본인을 드러내지 않고 사례를 나열할 법 한데 저자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트렌디하다 자부할 법 한데 꼰대라서 따라가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열심히 공부했고, 자신이 부족했던 점이 드러날 거고, 그러니 밀레니얼이 읽고 있다면 이전 세대의 생각은 이러하다고 비교하며 읽어보면 좋겠단다. 솔직한 글을 보니 조금의 꼰대끼가 보여도 참고 읽어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결론적으로 아주 재.. 2021. 2. 8.
[Book Review]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이과가 문학적 감수성을 타고나면 쓸 수 있는 글의 표본이 아닐까 싶었던 이번 책. SF가 이렇게나 마음에 들었던 적은 처음이라 읽으면서도 깜짝 놀랐다. 그럴듯한 SF를 소재로 밀도 있는 핍진성을 보여주는데 실감 나게 현대의 문제를 짚어내면서도 감동까지 준다. 그 와중에 막막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거나 과학만능주의적 태도를 보이지도 않아. 이 작가 뭐야! 천잰가! '광속불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책을 이제야 읽은 이유는 도서관 예약 줄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이다(예약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써 놓은 글은 여기). 무려 10명을 기다리고서야 내 손에 들어왔다. 그렇게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소설을 읽지 않는 분석적 이과생이라고요? 오세요! SF는 싫어하는 문과 감수성 풍부한 문학인이라고요? 읽으.. 202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