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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80

2022.9.13.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도 사람이 좋아요 1. 추석이지만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 가족보다 (남자) 친구를 만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즐거웠고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서울이 텅 비었을 줄 알았는데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연휴의 마지막 밤을 '고독사 워크숍(박지영, 민음사)'을 읽으며 보냈다. 무심코 집었는데 친척을 전혀 만나지 않은 명절에 읽기가 아주 좋은 책은 아님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책이 '고독사' 보다는 '고독'에 초점을 맞춘 터라 더욱 그랬다. 각자 자신만의 고독을 단련하는 삶. 나의 찝찝함과는 관계없이 위트의 정도나 이야기의 무게가 적절한 책이었다. 무엇에 적절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내 마음에 적절한 것일진대 결국 책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2. 일요일에 친구들을 만났다. 17살 .. 2022. 9. 13.
2022.9.2. 파울로 코엘료의 다섯번째 산 언젠가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쭉 읽어보고 싶었다. 눈앞에 닥친 책을 읽느라 미루다가 이번 주에 한 권 읽어보았다. (옮긴이에 따르면) 운명의 불가피성과 운명을 재건할 수 있는 인간의 잠재력에 관한 소설이었다. 성경을 모르고 종교를 갖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읽기 좋았다. 몇 꼭지 베껴둔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주기위해 선택한 말로 그 삶에 다른 이름을 붙일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네. 만일 그분께서 우리가 선행이라고 일컫는 일만 하신다면 우리는 그분이 전능하다고 할 수 없을 걸세. 그렇다면 그분은 세상의 한 부분에만 명령을 내리시는 셈이 되고, 그분보다 더 강력한 누군가가 그분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말이 될 테니까. 그럴 경우에 나는 더 강력한 누군가를 섬기겠네. 인간은 결.. 2022. 9. 2.
2022.8.22. 부유하는 사람이자 부유한 사람은 아닌 1. 영화 '헌트'를 봤다. 연기도 좋고 내용도 좋은 잘 만든 영화였다. 표 값이 아깝지 않았다. 근래에 표 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자주 나온다. 코시국이 한창일 땐 볼 영화가 정말 없었다. 영화계 이곳저곳에서 개봉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모양이다. 정우성과 이정재의 인터뷰를 여럿 찾아보고 영화를 봤다. 두 배우가 함께 나오는 씬을 보면서 영화도 좋지만 절친한 친구와 좋았던 한 시절을 좋은 이야기로 엮어 기록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배우는 멋진 직업이구나. 나는 직업으로 나를 추억하려면 책에 찍었던 도장 정도나 찾아봐야 하는데. 80살쯤 된 정우성과 이정재가 이 영화를 보면 흐뭇할듯하여 내가 미리 대신 흐뭇했다. 영화 안에서도 밖에서도 마음에 드는 그런 영화. 2. 민음사에서 출간된 임선우 작가의 '.. 2022. 8. 22.
2022.8.17. 푹푹폭폭 찜쪄지고 데쳐지는 8월 1. 회사 건물 어드메에 물이 샜다.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천장과 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정전이 되었다. 급히 편성된 비상조에 들어가 어두컴컴한 공간을 돌아다녔다. 쓸데없이 많이도 사두었다 생각했던 재난 대피용 손전등이 참으로 요긴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물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다녔다. 찾아도 별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비가 올 때는 그렇다 치고 비가 오지 않을 때도 천장에서 물이 떨어졌다. 나무 가구와 책이 젖어드는 모습을 봤다. 회사에 산모기가 많았다. 어두컴컴한 야외에서 손전등을 켜고 있노라니 모기가 달려들었다. 크게 멍이 든 것 마냥 자국이 남았다. 내년에 또 폭우가 온다면 별다른 대책이 있을까. 일주일이 지났고, 회사는 아직도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다. 2.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2022. 8. 17.
2022.8.8. 2022년 8월 첫 주가 지나갔어요 2022년의 8월 첫 주는 찌뿌둥한 채로 지나갔다. 한 시가 아깝다며 아등바등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의 목표는 오로지 휴식이었다. 무계획이 계획이었기에 별일 없이 지나간 건 아쉽지 않다. 다만 그 별 일 없는 상황이 개운치 않았다는 게, 몸도 마음도 몹시 꿉꿉했다는 게 아쉽다. 마음이 꿉꿉했던 건 아빠 때문이다. 월요일에 아빠가 입원을 하셨다. 진단명을 모를 땐 마음을 졸이며 가만히 있기 괴로워 마늘을 빻고 집을 청소하며 법석을 떨었다(아빠의 병명은 담낭염이었다). 몸이 꿉꿉했던 건 당연히 날씨 때문이다. 덥고 습해서 에어컨을 틀지 않은 구역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에어컨을 내내 틀자니 환기도 시키고 싶고 몸도 텁텁한 느낌이고. 이래저래 아무 의욕도 없었다. 그래도 내리 시간을 보냈는데 뭐든 생.. 2022. 8. 10.
2022.7.29. 직전의 시간은 느리게만 간다 1. 아빠가 재활을 한답시고 너무 심하게 걷기 운동을 해서 얼굴이 노래지고 허리가 아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와 언니와 나는 어마어마한 공력을 들여 아빠를 설득했고, (우리 집에서 무한한 신뢰를 받는) PT 선생님의 이야기까지 동원했다. 어쩜 이렇게 우리 아빠는 질주하기만 할까. 아빠의 허리 수술이 급격히 당겨진 데에는 무리한 해파랑길 완주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놀랄 정도로 빠르게 전체 길을 완주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아빠의 발톱은 두 개가 빠졌고 두 개는 새까맣게 죽었다. 아니, 누가 쫒아오나! 완주가 뭐라고 그러셨나 싶었지만 책장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완주 증서를 전시해 두고 오며 가며 흐뭇해하시는 모습에 할 말이 없어졌다. 아빠는 저게 정말 좋구나. 아빠는 성.. 2022. 7. 29.
2022.7.22. 유행과 취향을 타고 흘러 1. 연세우유 빵이 유행인데 모든 맛이 너무나 맛있다는 후기를 들었다. 평소 힙스터로 인정하는 이가 한 말이니 믿을 수 있지. 우유 크림 러버인 나는 아침이면 출근길 CU에서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바로 사 왔다. 그리고 먹었다. 맛있다. 행복했다. 2. 연세우유빵을 먹으며 평소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봤다. 헉, 딱 원하던 스타일의 집이 나온다. 어느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없다(멋진 취양의 집도, 동네를 좋아하는 이유도, 정리를 잘하는 모습도, 책을 좋아하는 습관도!). 나도 자취하면 저 가구를 사야겠다는 마음이 든 첫 집. 기록할 만하다. *사고 싶은 가구는 매스티지데코의 '뉴레트로 뷰로화장대' - 좋아해서 가끔 사이트를 둘러보는 브랜드인데, 안방의 노란 조명 아래서 아주 곱.. 2022. 7. 22.
2022.7.19. 결국 일주일에 하루를 못 지키네 11일 월요일이지만 남자친구를 만났다. 지난주 평일에 내심 만나고 싶어 하는 기색이 보였지만 모르는 척했는데, 이번 주에는 아예 주말에 약속을 잡더군. 만남의 빈도를 전적으로 내게 맞춰준단 사실을 안다. 게으른 여자친구를 만나는 네가 고생이 많다. 우리 집 앞에서 만나자는 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네가 돌아갈 고단한 길을 상상하기만 해도 지친다. 결국 좀 더 먼 곳에서 만났다. 재미있게 먹고 마시고 보고 떠들고 집에 돌아왔다. 말랑하고 따뜻해서 내내 좋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결국 체력이 문제다. 평일 저녁 약속은 다음날 아침의 괴로움이라 여간해서는 원치 않는데, 너와 다정하려면 운동을 해야겠다고 또 다짐하였다. 12일 요즘 책이 잘 읽힌다.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 2022. 7. 19.
2022.7.10. 지긋지긋한 여름날 습한 여름날 1. 남자친구와 지난 주말에 보았던 '헤어질 결심'을 다시 봤다. 관객이 몰려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관람객 수가 적대서 놀랐다. 내게 재밌는 영화는 다른 사람의 해석을 찾아보고 싶은 영화다. 몇 가지의 해석을 보고, 감독과 두 주연배우의 인터뷰도 보고 나니 영화가 새삼 보고 싶었다. 이미 이야기를 알고 보면 마음이 편하다. 다음에 나올 장면에 긴장하지 않고 감정과 사소한 부분에 집중하니 더 재미있었다. 어두워 보여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헤어질 결심 대신 탑건을 보러 가겠다는 주변 사람이 몇 있었다. 안타까웠는데 설득을 못했다. 헤어질 결심이 더 향유되고 더 이야기가 생겨나면 좋겠다. 나는 6년 전에 보지 않았던 아가씨를 봐야지. 남자친구가 진작에 추천했더랬는데, 너의 영화 취향을 믿으면서도 꿋꿋이 .. 2022. 7. 10.
2022.7.3. 여러 일이 있어도 아무 일도 아닌 한 주 1. 아빠가 잘 회복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부모님은 제법 평화롭게 입원 기간을 보내고 오셨다. 아빠는 플라스틱 보호대를 한 달간 하고 있어야 하고, 스스로 놓는 주사도 제법 오래 맞아야 한다. 나는 바늘이 싫어서 쳐다도 볼 수 없지만 엄마는 매일 아빠에게 주사를 놓아준다. 평생의 반려자와 나누는 삶의 깊이는 보통 깊은 게 아니다.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뻤다. 진심으로. 2. 비가 많이 왔다. 워터파크에 온 것 마냥 비를 흠뻑 맞는 날도 있었다. 자주 차를 태워주는 동기에게 한 눈에 반했던 차를 선물했다. 고마운 마음은 열심히 표현하며 사는 사람이고 싶다. 여름을 맞아 온라인으로 싸구려 샌들을 샀다. 실패였다. 고민하다 당근마켓에서 다시 샌들을 샀다. 한참을 기다려 배송받은 신발은 바닥이 벽돌처럼.. 2022. 7. 3.
2022.6.23. 어느 떨리는 목요일 1. 아빠 아빠가 허리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반나절은 족히 걸리는 수술이다. 허리 통증이 심해 최근 한 달 간은 거의 집 밖에 나가시지도 않았다. 좋아하시는 책을 빌려다 드리거나 주문해 드리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젯밤 아빠를 응원하면서도 집에 오면 좋아하는 책이 있으니 잘 회복하고 얼른 오시라는 말을 했다. 책쟁이 딸은 이런 말밖에 없네. 아빠의 수술이 성공적이기를, 잘 회복하고 집으로 돌아오시기를, 몸이 조금이나마 덜 불편하시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 수술은 잘 됐다. 몹시 좋다. 2. 회사 어제는 딱히 민원 같지도 않은 민원이 있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같이 계신 분이 깜짝 놀라시기에 나도 잠깐 변한 나를 생각해보았다. 일을 할 때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일을 할 때의 나는 .. 2022. 6. 23.
2022.6.8. 날짜가 어쩐지 동글동글해 보여 1. 요즘 편의점에서 파는 아카페라 스페셜티 커피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맛에 빠져있다. 사무실에서 아침의 멍함을 깨우는 용도로 유용하다. 요 커피가 종종 1+1을 하는데, 1천 원 초반에 제법 큰 용량이라 며칠을 두고 마신다. 페트병을 자꾸 소비하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이만한 맛의 대용품을 아직 찾지 못했다. 당장 오늘 아침에도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어김없이 몇 모금의 커피를 들이켰다. 페트병에 든 커피만 마시면 자꾸 노래가 떠오른다. 싸구려 커-피를 마시-인다아아~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제로웨이스트에 열정을 불태울 동력이 필요하다. 노래나 부르지 말고! 2. 지난주 금요일에는 워크숍을 갔다. 생전 처음 레일바이크를 타 보았다. 타기 전에 길이가 제법 길고 뚜껑이 햇살을 막아주지 못한다.. 2022.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