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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자다가 벌떡 일어나게 만들기까지 하다니

by 푸휴푸퓨 2013.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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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한주였다. 대체로 잉여로운 일상을 보내는 나인데 지난주는 정말이지 정신 없이 핑핑 돌았다. 인턴 출근 도장 찍고, 발표하고, 북 콘서트가고, 보강하고, 저 멀리 캠퍼스에도 갔다오고, 아무리 생각해도 과제는 뭐라고 해야 할 지 생각은 안나고, 그 와중에 시험공부하랴, 시험 치랴... 그 중 한 가지만 있어도 한 주가 곤두서는데 이상하게 다 모여 있었다. 하나하나 다 마음을 쉽게 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가장 힘들었던 것을 꼽으라면, 단연 도서관이다. 도서관이 뭐 어쩌냐고? 그냥 도서관이다. 도서관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인턴 활동이 어쩌구 저쩌구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 주말에 있을 시험 공부 할 수 있어서 나름 괜찮았다(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 푸념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입학하고는 '이용자들이 아는 것보다 도서관은 훨씬 큰 곳이다'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어언 4년간 꿈꿔 왔던 도서관 투어를 그렇게 꼼꼼하게 시켜 주시다니 정말 많이 즐거웠다. 그런 내 마음이 잘 전해진 것 같지는 않지만, 진짜 많이 감사했다. 수업을 4시간이나 빼먹었고 집에서 왕복 4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이지만 저 멀리 캠퍼스에 가서 도서관 투어 하고 세미나 듣는 것도 좋았다. 가기 전에는 솔직히 수업 출결 때문에 좀 언짢았는데 그것을 전부 다 무마하고도 훨씬 남았다.

  수업 보강도, 주말에 친 시험도 괜찮았다. 보강이야 뭐 내가 강의하는 것도 아니고 듣는 거니까 괜찮지. 시험도 무난하게 합격할 것 같으니 큰 상관 없다. 또 뭐였지? 발표, 그것도 나는 정리만 했지 내가 나가서 발표 한 것도 아니니까 그정도야 뭐 4학년인데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아무 문제도 없었단 말이야.

  그래, 이렇게 결과적으로 보면 힘들어 할 것도 스트레스 받을 것도 없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 한 번 잠들면 깨야 할 때까지 절대 일어나지 않고 꿀잠을 자는 스타일인데 자다가 몇 번씩 '아, 도서관 어떻게 하지?'란 물음이 떠올라 잠이 깼다. 깨서 왠지 깬줄도 모르고 있다가 또 도서관 생각하고 있네, 싶을 때 깬 것을 알아차렸다.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 저 물음 안에는 내주신 과제를 훌륭하게 마치고 싶은데 좋은 건의 사항도 해결책도 떠오르지 않는 답답함, 앞으로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은데 일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고 도서관이 점점 저 멀리 요원해 지는 것에 대한 무서움, 도서관에 가서 일하면 지금 내가 믿는대로 정말 그렇게 행복할까 싶은 의구심, 도서관에 가겠다고 석사 학위 따는게 확실히 곰팡이 짓인데 그렇게까지 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죄송함이 뒤섞여 있다. 확신이 사라진 자리에는 온갖 나쁜 감정들이 밀려들어 온다.

  이 사태를 뭘 어째야 할 지 몰라서 내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충동적으로 무려 63000원 짜리 향수를 샀다. 내가 이걸 왜 사나 싶으면서도 샀다. 사고 나서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름신이 내리면 행복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친구에게 SOS를 보냈다. 괴로움을 토로하면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행동이 아닌데 그렇게 했다. 심지어 갑자기 불러내서 내 푸념 좀 들어달라고 했지. 착한 친구는 다 들어 주었다. 여자는 공감을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가 보다. 친구의 동조와 위로, 괜찮다는 말은 정말 지금 나에게 구명조끼같은 것이었다. 오늘의 대화가 아니었다면 익사했을 것 같다. 내가 저지르고 있는 오류를 정확하게 꼬집어 주기도 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나는 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는 내가 결정하는 거지 비슷한 궤적을 걷고 있는 선험자와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니까 인생의 각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도 다를 것이고 기분도 마음도 다를 것이다.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나 휩쓸리고 있었다니. 이 사람 별로다, 라는 생각을 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좋은 분인 것 같아서 그랬다. 능력 있어 보였고 좋은 분 같아 보였고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 보여서 무서웠다. 내가 생각하는 장점을 다 갖추고 계신 분이 지쳐 보여서, 무서워졌다.

  자다가 갑자기 깨버릴 정도로 고민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도서관이 좋다. 각자 자신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는 그곳이 좋다. 나한테 뭘 좋게 해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하려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게 좋다. 지옥불구덩이라 표현할 만큼 공공도서관에서 괴로웠으면서도 지금 그 때를 다시 생각하면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내가 괴이할 만큼 좋아한다. 좋아해서 어쩔 수가 없나봐.

  타인의 행복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분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친구 말마따나 내가 생각한 것 보다 그분은 훨씬 행복할 수도 있다. 맞다. 내가 잘못 본 것이기를 바란다. 그 분의 행복이 나의 희망이 되기에, 아주 이기적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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