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를 가느라 버스를 탔다. 집 바로 가까이에는 대학교가 하나 있다. 정문(이라고 하기엔 문은 아니지만)이 길에 닿아 있어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보면 학교 안을 볼 수 있다. 축제같은 날에는 학교가 바글바글한 것이 보인다. 그런데 오늘은 축제도 아닌데 사람이 많았다. 사람만 많은게 아니라 길가에 주차된 차도 정말 많았다. 많은 차 덕에 오래 신호등에 걸렸기에 무슨일인가 기웃거려 보니 뭔가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은 많은데 젊은 사람들은 아니다. 무슨 길거리 공연을 하나 싶어 봐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어제 버스에서 봤었지. 오늘이 수시 논술고사 날이라고, 혼잡할 수 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던 현수막을.
학교 앞에서 시작된 불법주차는 버스 정류장이 1개를 더 지나쳐도 계속 이어져 있다. 이 비오는 날, 인생에서 중대한 시험을 치는 아이를 위해 하루 정도 우산을 쓰며 기다린다. 나오면 고생했을 아이를 위해 문앞에 차를 대령해야지. 비 한방울이라도 맞지 않게, 시험 때문에 연약해진 내 아이를 보호할 수 있게, 길가에서 기다리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마음으로 어두컴컴해 질 때까지 길에서 부모들은 어정거리고 있는걸까.
우리 학교도 논술고사를 봤다. 내가 대학에 들어온 해에 그러했듯 이번에도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나는 수시를 보러 가서 서울에서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진기한 경험을 했더랬는데, 이번에도 그랬을까 모르겠다. 그리고 수업을 들어가니 몇 분의 교수님들께서 한결같이 똑같은 말을 하셨다. 여기저기 불법주차된 차들 때문에 분통이 터졌노라고. 누가 그 차를 타고 왔는지 알 수만 있다면 명단을 적어서 아무리 논술을 잘 썼어도 다 떨어뜨리고 싶더라고. 머리가 아무리 좋으면 뭐해, 가장 기본적인 공중도덕을 지킬 줄 모르는 아이인데.
과보호다. 아무리 봐도 과보호다. 대학 시험을 보러 왔다는 건 최소 10대 후반이라는 거고, 그 때 쯤의 아이는 당연히 혼자 지하철이든 버스든 타고 대학에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래, 혹시 걱정되니까 같이 갈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중요한 첫 경험에서 아이에게 꼭 그런 불법적인 일을 같이 하게 해야 하는걸까? 그게 사랑인가? 그런 걸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부모들의 마음이 싫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의 풍습을 싫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정말이지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모르겠다. 당당하게 길에 차를 대는 그 부모들의 마음을. 아이를 위해 하는 일이 절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번 한 번만 어기겠다며 하는 일인지, 아니면 그깟 주차 쯤이야 기꺼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인지 전혀 모르겠다. 언제쯤 이런 풍속이 사라질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없어졌으면 싶다. 내 아이의 입에서 '왜 다른 엄마들은 다 데리러 오는데 엄마는 안와?'같은 기가 찰 질문이 들을 가능성이 있는 때가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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