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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목표는 여행이었나 영어였나 그냥 집 떠나기었나

by 푸휴푸퓨 201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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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말고사도 끝났고, 딱히 해야 할 일이 있는 1월도 아니다. 2월의 출국에 관한 생각을 방해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당장 1월에 할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도 2월의 걱정으로 넘어가면 1월은 잊혀진다. 2월에는 영국으로 가고, 거기서는 혼자 살 것이다. 가는 비행기, 이동하는 비행기, 오는 비행기를 전부 다 결정하고 나니 이제야 내가 정말 출국하겠구나, 싶은 것이다. 로망은 현실이 되면 두려움이 첨가되곤 하는데 특히 첫 경험이면서 혼자만의 경험이면 더욱 그러하다. 지금 나는 아주 미치겠다.

 

  그 먼 곳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는 것은 혼자만의 저녁이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경험을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교와 집이 멀어서 자취를 해 보지도, 훌륭한 기숙형 고등학교에 들어가 친구들과 추억을 쌓아 본 적도 없는 나는 가족들이 없는 이역만리 타지에 나가 혼자 밥하고 일어나 학원에 갈 일상이 너무 무섭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빨래고 청소고 하겠는데, 혼자 밥먹고 다 씻고 나서 아무 대화 상대가 없을 그 적막함을 어떻게 메꾸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도대체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과연 친구는 사귈 수 있을지? 아냐, 친구가 문제가 아니다. 매일을 친구들과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먼 나이기에 아마 정말 혼자 있을 시간이 많을텐데, 자발적으로 원한 시간이면서도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는 그 시간에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하여야 한단 말인가!

 

  한국에서는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때면 책을 읽는다. 하지만 거기는 한국말로 된 책이 없으니 안녕. 영어로 된 책을 몇 시간 동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까? 일단 하나의 목표로 설정해 보자 생각은 하면서도 영 꺼림찍하다. 밖에서 혼자 돌아다닐 때에는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다. 거기서도 많이 듣겠지. 근데 말이야. 영어 공부 하러가서 이렇게 한국 말에 많이 노출되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같은 맥락에서, 친구들이나 유학 경험자들은 가면 한국 TV프로그램을 그렇게 많이 보게 될 거라고 하는데 사뭇 동의가 되는 말이기는 하면서도 아니, 한국에서도 안 보던 드라마를 그 돈 내고 외국까지 가서 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 이야호~ 가서 한국어 청취 능력이 더 늘었어~ 할 것도 아니고... 영어를 쓴다고 생각해도, 한국어를 쓴다고 생각해도 무언가 찝찝한 것은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일단 한국 TV 프로그램은 최대한 보지 않는 것으로 하고 싶다. 차라리 라디오를 듣겠어. 일주일에 몇 시간 이내, 이런 규칙을 정해야 할 것 같다. 일주일 중 빨래는 언제 하는지, 이런 것도 정해야 할 것 같지만 이건 가서 하면 되겠지. 이런 잡다한 것 말고 사실 지금 정해야 하는 가장 큰 목표는 이 어학연수의 목적이 무엇이냐!인 것 같다. 세상 경험을 쌓고 싶다 운운하며 부모님을 설득했지만 그건 가서 살다보면 쌓이게 될 일이고, 기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나는 거기서 영어 실력의 향상을 원하는가? 막상 갈 시간이 되니 탐나기는 하는데 나의 짧은 여정으로 그게 될까 싶다. 그러면서도 욕심은 나니 아예 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그리고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었는데 그럴 자금이 되느냐의 문제도 있다. 내 목표는 여행이었던가 영어였던가 그냥 집 떠나기였던가. 그것에 대해 깊이 통찰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니 이 글을 쓰기를 잘했다. 역시 생각을 조리있게 해보려는 것에는 글쓰기가 최고다. 하하, 애매한 결론을 내며 오늘 글은 완료. 아마 마지막 물음은 출국하는 그 직전까지도 대답하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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