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라디오나 그런 류(?)의 감성을 가진 이들의 말이나 글을 찾아 접하다 자연스럽게 '생선작가'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니 무슨 필명이 생선이야, 희안하네 하고 넘겼던 사람이었다(물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많이 아는 라디오 작가라니 심각하게 부러웠더랬다). 그러다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를 우연히 읽게되고, 아니 이 사람이 생선작가야, 한 후 책을 쭉 찾아읽게 된다. 아이슬란드의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지만 침묵 하나만은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숙소에서 일주일을 넘게 묵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정말 대단하다, 한편으로는 부럽다 싶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김동영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고 하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읽지 않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기대를 꽉 차게 하고 기다리고 있었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의 기록이라기에, 뭐- 요즘 연예인들 공황장애가 많던데, 하고 넘겼다. 한 번도 구체적으로 그들의 상황이나 마음을 안 적이 없었고 동시에 정신 질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질 경험도 없었기에 나는 무념무상이었다. 그냥 김동영 작가 책이라서 반가웠을 뿐이다.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조울증과 공황장애가 이렇게 어려운 병인지 처음 알았기에 한 번, 내가 좋아하던 글이 알고보니 이렇게 심한 너울을 타고 넘어온 글인 것에 두 번, 아이슬란드의 침묵을 부러워했던 그 글이 떨어지는 약에 초조해가며 지나 온 시간이었다는 것에 특히.
그는 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병원을 다녔다고 한다. 병은 어느날 오는 줄도 모르게 몰래 와서 아직도 차마 가지 않고 있다. 그의 아픔이 온전히 그의 몫만은 아니라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일거다. 그의 아픔 덕분에 그의 글들이 나왔다면 나는 그의 아픔에 일말의 덕을 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를 갈취하는 기분이 든다면 과할까. 물색없이 그의 책을 좋아했던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드는데 그 기분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불안과 우울은 말이 없다. 아무리 말을 걸고 그것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려 귀를 기울여도 침묵뿐이다.
그것들은 고요하고 사납게 내게 몰아쳤다 올 때처럼 조용히 물러가버린다.
만약 우리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한테 왜 그러는지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사이의 침묵의 대화인지 모른다.
병을 이겨내고 싶거나, 미워하거나, 때론 난 그냥 이런 사람이라 말하는 김동영 작가의 글에 그의 주치의는 조곤조곤 대답을 해 준다. 흔히 상담가와 내담자는 너무 친밀한 관계가 되면 안된다고 한다.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나는 모르지만 독자로써 나는 그 지점을 벗어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의사의 이야기가 큰 위안이 된다.
멀리 보고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나이가 들어도 성숙해지지 않는다고 자신을 탓할 필요 없다.
인간은 어차피 모두 불량품이다. 나이가 든다고 불량이 고쳐지는 법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럭저럭 잘 살아가게 마련이다.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대화는 없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문득 내 말을 들어주는 저 사람은 과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야기를 정말 이해하고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할 때가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의사라면 더더욱 일테다. 가감없이 드러낸 의사의 생각을 읽는다. 완벽한 이해는 없지만 공감과 또다른 이야기 정도만 있다면 충분하다. 당신도 고민 많고 흔들리는 사람인거죠.
우리는 행복이 아니라 언제 좋은 느낌이 드는지 그것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느낌을 좇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행복이라는 모호한 관념어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흐리게 만들지는 말아야 합니다.
"행복해지고 싶다"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느낌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느낌과 그 느낌이 가져다주는 상황을 간절히 원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나는 불행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아프다"라고,
"나는 행복하지 않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외롭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행복하다거나 크게 웃는 일이 언제부터 이렇게 줄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나를 보며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내가 행복한지 그렇지 못한지 분간을 못하고 있다. 김병수 의사의 글에서 하나의 답을 얻는다. 행복은 모르겠고, 나는 지금 외롭다. 그렇구나. 김동영 작가가 감히 완치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자주 안정이 찾아오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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