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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18.12.26. 25일에 덧붙여.

by 푸휴푸퓨 2018.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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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정 관리가 썩 잘 되지는 않았나 보다.

  감정이 가득 섞인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PC방을 나섰다. 집에 꾸역꾸역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좀 걷고 싶어서, 그런 기분으로 빠르게 집에 도착하고 싶지는 않았다. 걸어가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크리스마스 저녁에 울며 길을 걸어가는건 너무 꼴불견이라 생각했다.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는데 잘 안됐다.

  너를 보내주어야 하는 상황이 올 때 내가 붙잡지 못하는 마음을 내가 어릴적부터 떼를 쓰지 못했던 일과 연관시켜 보았다. 이러저러한 생각의 중간 과정이 있지만 다 생략하고 결론은 이렇다. 이제 나는 내가 착하지 않고 나쁘게 굴어도 엄마가 날 끝까지 사랑해줄 것이라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충분히 믿는다. 하지만 넌 다르다. 너의 사랑을 머리로는 믿는데 마음은 그러지 못한다.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질려버리지 않겠어? 나한테 착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네가 나의 착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 날 두고 영영 가버릴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그게 당연한 거겠는데 왜 슬퍼하고 있나 싶었다. 넌 엄마가 아니어서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없다. 조심하는게 맞는거야. 다만 그래서는 내가 너를 언제쯤 내 편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나를 버릴까봐, 또 계속 이렇게 두려워해야 할까봐, 버려지고 싶지 않았던 어릴적의 내가 또 생각이 나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울어댔다.

  너에게 나와 부모님 중에 선택을 하라는 식의 기분이 들게 하는 것도 싫었다. 나도 부모님이 소중해서 안다. 하지만 너를 위해 정리했을 뿐, 우리 부모님이라고 서운하지 않으셨던건 아니었다. 네가 나를 위해 나처럼 해 주지 않은게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많이 속상했나보다. 사람 마음이 다 내뜻대로 되는게 아니란걸 이미 다 아는데, 알면서도 엉엉 울었다. 휴지가 너덜너덜해지도록.

  게임을 하는데 네가 부모님과 케이크를 다 먹었다고 카톡을 보냈다. 바로 답장하고 싶지 않았다. 게임때문이었다 말하기로 결심하고 답장을 미뤘다. 집으로 나서서는 걸어가니 손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내면의 핑계를 내밀었다. 너때문에 울면서 아무렇지 않게 너랑 카톡을 할 순 없잖아. 집에 들어와서는 바로 연락하면 씻는다고 또 연락이 끊길테니 그냥 씻고 연락해야지 했다. 아무튼 그랬다. 한 시간도 훌쩍 넘게 네 연락을 무시했나보다.

  전화를 했더니 벨이 채 한 번도 울리지 못하고 네가 받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잠겨있었다. 전화하고 자려고 기다렸어? 나름 힘을 내서 물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케이크 맛있게 먹었냐거나 부모님과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는 질문같은게 잘 떠오르지 않았다. 네가 왜 연락이 잘 안되었던건지 물어왔다. 아, 알아챘구나.

  게임을 하느라 손이 바빠서, 걷는데 손이 시려워서, 준비한 핑계는 하나도 소용이 없었다. 정말 그래서 연락 안했어? 되묻는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 웃으면서 보내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잠깐 참다가 그냥, 나는 네가 가는게 좋아서 보내준건 아니라고 간신히 한마디를 꺼냈다. 또 눈물이 났다. 이 말도 안하면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 내가 왜 스스로를 불쌍하다 표현했는지 네가 마음 깊이 이해했을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너는 내가 모르는 내 표정을 잘도 읽어내곤 핸드폰을 바라보며 나를 기다렸다. 네가 일찍와서 부모님이 좋아하셨단다. 늦게 들어온 형을 타박도 하셨단다. 좋았겠네, 하는 말에 너는 아니 뭐 좋지는 않았다고 웅얼거렸다. 표정이 안좋아서 걱정했다고. 다음 성탄절부터는 더 나를 생각하는 남자친구가 되겠다고. 넌 참 좋은 남자친구라서 이런 나를 다 받아준다.  

  심통을 부렸다. 더 잘해주기는 뭘,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는거야. 겁주는 거냐는 너의 말에 사뭇 놀랐다. 오늘 아픈 사람은 나인줄 알았는데 너도 아팠다는걸 그제야 알았다. 솔직하게 털어냈다. 엎드려 절받는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구나 하고, 모르겠다고 마무리했다. 실제로 모르겠는 것이다. 눈물을 흘려대고 있는걸 들키지 않으려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자라고 말했더니 너는 순순히 잔다고 했다. 정말로 지금 네가 잘까? 자기 전에 오늘이 힘들었다 되뇌이면 어쩌나 걱정하는데 네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했다. 오늘 나랑 성탄절을 보내서, 재밌는 연극도 보고 밥도 먹고 카페에도 가서 너무 행복했다고.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날 안심시켰다. 그런 너를 나는 너무 사랑한다.

  여전히 난 마음이 불편하다. 최선을 다한 너와는 별개로 그냥 내가 불편한 사람인가보다. 사실은 어제 이런 기분이었다는걸, 아침 통화에 이야기를 할까 하다 포기하고 늘 하던 대화만 했다. 마음이 쓰인다. 어제의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텐데, 내가 이기적일 수 있는데 사과는 네가 하게 만들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면 착한척 하는 일이 되어버릴거다. 사랑받지만 참기만 해야하는 착한 아이는 싫어. 사과하지 않을거다. 나는 나를 그렇게 또 숨기고 싶지 않다. 이런 나를 봐줄거라고, 좀 더 이기적인 나도 네가 사랑해줄거라고 믿어보고 싶다. 너무 불안한데 한 번만 믿어보고 싶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전 잘 보내고 있느냐는 카톡이 왔다. 너는 한결같고, 나는 사랑받는다. 더 많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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