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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18.12.31.

by 푸휴푸퓨 2018.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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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너에게 진심으로 짜증을 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 너는 조금 불안정하다. 며칠 전 평소에 늘 그랬듯 나를 놀리며 우는 흉내를 내던 너는 갑자기 너도 모르게 정말 눈물을 흘렸다. 괜찮지 않게 느껴졌는데 괜찮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나에게 귀엽다고 말하는 빈도가 어마어마하게 늘었고 보고싶다고도 한다. 나 귀여운건 너도 알고 나도 알지(그렇다 나는 귀여운 사람이다!). 늘 하던 말이기는 했지만 빈도가 너무 잦다. 그 말을 하는 네가 위태로워보일만큼.

  평소라면 내가 삐지지 않게 조금만 놀리고 말 것을 너는 나를 놀리고 또 놀렸다. 사이사이 귀엽다는 말을 놓치지 않고 해댔다. 너는 정말 악의없이 귀여워서 나를 놀려댄거다. 그러니 내가 좀 더 참았으면 될 일인데 괜히 속상해서-아니 그까짓 케이크 내 돈으로 사먹으면 되는데!- 흥칫뿡을 하다가 크게 짜증이 나버렸다. 금방 무마하려 하기는 했지만 화를 내기는 낸 거라서 너는 나의 권유에 공부를 하러 사라졌다. 낮에 편히 쉬었다는 이유로 출근 전 저녁에 공부를 해야만 하는 너.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는걸 뻔히 아는데.

  네가 목표로 한 회사가 이번 공채에 사무직을 고작 5명 뽑는다고 발표가 났다. 그렇게나 조금 뽑을 줄은 몰랐는데, 50명도 크게 줄어든 숫자인데 5명이라니. 너는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걱정과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 준비에 대한 조바심에 둘러쌓여 있었다. 헛헛한 마음이 전화기 너머까지 너무도 잘 전해졌다. 그래서 투정을 조금 부린건데 내가 그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왈칵 짜증을 내려 했다. 전화를 끊고 보니 너무 미안했다. 지금이 평상시도 아니고, 네가 아픈데 나는 이렇게 그릇이 작다.

  너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 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NCS만 보는 회사의 목록을 뽑아서 네게 보여주면 좋겠다고도 생각해봤다. 이제까지는 네가 알아서 할 때 옆에서 믿어주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애써 괜찮다던 너는 도움이 되고싶다는 나의 말에 주저하다 결국 같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하사해 주었다(얼씨구). 그런데 나는 무엇을 해주어서 너의 걱정을 나눠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잘 해주고 싶은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너무 어렵다.

  나와 만나서 그날 하루 노는게 물론 기분은 좋겠지만 네게 도움은 전혀 되지 않음을 잘 안다. 그래서 너와 재밌게 놀기만 할 수는 없어. 나도 꾸역꾸역 너와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려 네 옆을 비집고 들어간다. 옆에 있는 일이 미안하지 않도록, 나 스스로 해가 되고 있을까 미안해서 종종거리지 않게 최선을 다해봐야지. 우리 그래도 잘 할 수 있을거야.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줄 순 없지만 함께 고민할 네 편이 있다고는 꼭 전해주고 싶다.

  의자는 부족한데 앉아야 할 사람은 많다. 서로의 의자 빼앗기를 하고 있음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간신히 한 자리 차지하면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서로의 눈치를 본다. 의자에 앉지 못하는건 앉지 못하고 서 있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의자가 너무나 부족한 사회의 문제다. 든든한 네 편이 되어주고 싶은데, 너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 감정만 앞세우지 않을게.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제대로 된 의자를 만져볼 수 없어 힘들어하는 너를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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