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신간평가단11 [Book Review] 내면 보고서 - 폴 오스터 책을 받아든다. 매서운 느낌의 눈 한 쌍이 나를 노려본다. 띠지를 벗겨내면 그저 턱을 괸 남자의 얼굴이란 걸 알게 되지만, 어쨌거나 책 제목이 띠지 위에 있으니 띠지를 벗겨내기도 뭐하다. 책을 닫을 때마다 눈을 잠시 쳐다본다. 이 남자는 폴 오스터일까, 젊은 날의 폴 오스터를 바라보는 신의 눈일까. 저 젊은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는 것만 같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솔직히 폴 오스터의 책을 한 권도 읽은 적 없으면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괜찮은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다 읽은 지금 감히 말하자면 이 책이 폴 오스터의 첫 책이라도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이 정도의 글을 쓰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어린 시절의 그부터 알아가는 것도 좋지, 뭐. 일단 읽기 시작하는 게 중요한거다. 다른 사람의 어린 시절.. 2016. 5. 31. [Book Review]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서정 서평이랍시고 무언가 쓰기 전에 나는 밝혀야겠다.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솔직하게,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의 작품 대부분을 나는 모른다. 나름 그림을 좀 좋아해서 고흐와 샤갈 정도는 관심이 있다. 하지만 나머지는 이름이나마 들어봐서 다행인 인물이 몇몇이오 대부분은 모른다. 그냥 모르는 거다. 이런 상태에서 어떤 서평을 써낼 수 있는지 나도 궁금하다. 이렇게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작가의 탓(?)도 하고 싶다. 그녀가 말하는 인물 중 많은 이들이 일반적인 한국인에게는 상당히 낯설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예측할 수 있지 않았을까? 러시아 문학과 예술에 특별한 관심이 없던 이에게 이 책은 지독히도 불친절하다. 러시아를 이미 잘 아는 친한 이에게 (제반 설명은 생략하고) 나의 가족 여행은 이러하였다고 .. 2016. 5. 2. [Book Review] 내 심장을 향해 쏴라 - 마이클 길모어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알라딘에서 신간평가단을 하면서 정말 고마웠던 건 나 혼자 고른다면 절대 고르지 않을 여러 책들을 볼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 책들은 나에게 뜻밖의 깨달음을 주곤 하는데 특히 내가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편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세상에. 이런 삶도 있구나. 난 참 작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이 책은 미국의 유명한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막내 동생인 음악비평가 마이클 길모어가 그의 형과 가족을 회고하며 쓴 이야기로, 게리 길모어의 범죄성이 그들 가족의 역사 어디에선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는 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이것은 게리의 행동을 이해-물론 살인은 이해받지 못할 짓이지만-함과 동시에 저자의 상처 또한 다시 한 번.. 2016. 5. 2. [Book Review]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 모린 코리건 내게 는 읽어보아야 할 것 같은 고전이지만 어쩐지 끌리지 않는 그런 책이었다. 그렇지만 집에 책이 있길래 한 번 읽었고, 역시나 큰 감흥 없이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나는 사람들이 개츠비가 고전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왜 그런지 찾아볼 생각도 없었다), 몇 년 후 무려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서야 '진짜 뭔가 있는 책인가봐'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책을 집어든다면 그건 내가 아니지! 이 책을 읽게 된 이제서야 나는 다시 개츠비에 관심을 가졌다. 사실 개츠비는 한 번 읽어 봤으니까 다시 안 읽어도 되겠거니 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 몇 쪽 읽고 반성하며 원작을 읽었다. 몇 년만에 다시 읽어본 개츠비는 대충 읽어냈을 때보다 확실히 함축하는 것이 많다.. 2016. 3. 30. [Book Review] 세컨드핸드 타임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레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혁명은 혁명이 원할 때 스스로 다가오는 것이지, 누군가 원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요. 소련이 무너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모른다. 내가 글자를 배울 즈음 러시아를 소련이라 부르는 것은 이미 틀린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소련은 러시아와 같은 단어였지만, 러시아를 잘못 쓴 단어이기도 했다. 소련은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말인데 이제 그렇게 안써. 음, 그렇구나. 그 말 한 마디면 충분했던 어떤 나라에 대한 이야기. 1917년 러시아는 차르의 시대를 끝내고 공산주의가 시작된다. 긴 공산주의를 지나 20세기 후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있었고, 3일간의 쿠테타가 일어났다. 옐친을 끝으로 이제 우리가 아는 푸틴이 나온다. 외부자의 눈에는 이렇게나 간결하게 정.. 2016. 3. 18. [Book Review]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박연준, 장석주 이런 구성의 책은 또 처음이다. 책의 앞 절반은 부인이, 뒷 절반은 남편이 썼다. 둘의 여행기라기에 둘의 이야기가 가득할 줄 알았더니만 또 그렇지도 않다. 일단 체험형 여행기는 아니다.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기에 시드니를 전부 휘젓고 다닌 줄 착각했지 뭐. 물론 산책도 조심조심 해야하는 건 맞다. 부인과 남편이 이리 다른 내용을 쓸 수 있나 싶어 읽다가 놀랐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연준 작가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야기를 읽으며 방심하다가 장석주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어벙벙해졌다고나 할까.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었다고 해서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구나.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이러한 것을,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마음같지 않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둘 사이에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 2016. 2. 29. [Book Review]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김남희 얼마간 떠나있다보면 너무나도 돌아오고 싶은 서울이기는 하지만 평생 이곳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이미 한 번 도망친 전적도 있고, 이 복잡한 곳에서 살다보면 귀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그렇다. 삭막해지는 겨울에, 흰색 눈 말고 회색 눈을 보고 있노라면 누군들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을까. 나는 항상 도망을 꿈꾼다. 나만 꿈꾸는 것은 아닐 것이라 위로하면서. 저자는 매년 겨울 따뜻한 나라로 찾아간단다. 며칠 단위가 아니라 몇 달 단위로 날아가서는 그곳이 일상인양 산책을 하신단다. 당신은 전생에 엄청난 덕을 쌓으셨군요! 이 책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녀의 삶에 대한 부러움 때문만은 아니다. 꿈꾸는 삶이지만 실현시키고 싶은 삶이냐 묻는다면 대답을 주저할 테다. 나는 그녀가 가진 생각과.. 2016. 2. 29. [Book Reivew] 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 시에 관한 책은 고3 이후로 10권도 보지 않았다. 솔직히 5권도 안봤다.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쓴 시를 읽은 국어 선생님이 '이 시는 초등학생이 선생님께 칭찬받으려 쓴 시 같다'라고 말씀하신 이후 나는 시를 마음으로 공감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 이후 나에게 시는 분석해야 할 대상이었고,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시와 관련된 책은 수능 대비를 위해 시를 풀이해 놓은 두께 3cm는 될 시 분석집이었다. 시의 소재와 분위기와 심상을 파악하면 주제를 알아낼 수 있지! 시를 이해해 보고 싶었지만, 시를 이해한다는 건 그냥 내 마음가는 대로 읽으면 될 것 같다고 용기내서 써 놓고도 다시 시와 멀어졌다. 쉬운 게 있는데 왜 어려운 길을 가.. 2016. 1. 20. [Book Review]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손미나 이런 식의 여행책은 아주 오래간만이다. 여행 에세이를 즐겨 읽고는 했지만 초등학생 때 부터 고등학생 때 까지 한비야 작가의 책에 미쳐 살았던 이후 이런 식의 책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이런' 식이 어떤 것이냐 물으면 정확히 대답할 순 없지만, 책의 곳곳에 작가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 여행 에세이라고 하면 되려나? 난 내가 너무 오랫동안 한비야 작가의 책을 좋아했다고(=신봉하다시피 했다고) 여겼고, 막상 여행에 가보니 그녀와 나는 너무나 다른 것을 알았다. 에휴, 거두절미하고, 나는 이렇게 '난 어디에 다녀왔다. 살면서 이 곳은 정말 한 번 쯤 꼭 가봐야 한다. 사람들이 참 순박하다. 난 거기서 나와 운명을 함께하는 친구를 만났다'는 류의 이야기를 읽는 것을 정말이지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2016. 1. 19. [Book Review]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배수아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2016년 한국의 트렌드를 정리한 책의 간략한 소개에 따르면 여행 관련 서적 중 여행 가이드북의 인기는 줄고 여행 에세이의 인기는 늘어났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인이 획일화된 여행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나의 '취향'으로 받아들이고, 그 취향에 맞는 여행을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날부터 여행 가이드북보다는 여행 에세이를 많이 읽은 나에게는 정말 와 닿는 문장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내가 여행을 간 양 몰입해서 읽었다. 하지만 언제가부터는 그 여행 에세이마저 그리 많이 읽지 않게 되었다. 하나는 가고 싶은 장소에 대해 미리 써 놓은 글을 보고 내가 그곳에 가서는 그와 비슷한 감상을 느끼려 애쓰고 꾸미려는 시도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2015. 11. 8. [Book Review] 라면을 끓이며 - 김훈 김훈의 책을 읽었다. 읽고 싶어서 읽은 것은 아니었다. 전투적인 광고를 보았고, 어느 순간부터 서점에서 전투적인 광고를 하는 책은 의심의 마음이 먼저 들었고, 지난번 이분의 책을 읽었을 때 술술 넘어갔던 것도 아니었던지라, 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내 손에 왔다. 읽었더니, 나의 얕음이 부끄러웠다. 글을 쓰고 싶은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해왔다.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말인지도 모르고, 감히 나는 쓸 것이 없다고 떠들었구나. 감히. 내가 이 책을 지금 읽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나는 이 책에 수록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와 '밥벌이의 지겨움'을 몇 년 전에 읽었다. 부끄럽지만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읽은 오늘 그 생각이 부끄럽다... 2015. 10.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