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결국 될 일은 될 지니 9월부터 쉬기 싫었는데 일하러 가게 되어 너무 좋았다. 나름 계약도 해 준다더니 계약서 쓰자는 말이 없네(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돈 떼 먹을 곳은 아니긴 한데 계약 한 번 해 보고 싶기도 하고, 내가 그 계약기간을 다 지킬지 모르겠기도 하고-다 지키면 굉장히 슬프고 쪼끔 좋을 것 같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콘텐츠를 뭐 어떻게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일정 조율자다. 문제집을 만들어 보는 일을 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회사에 2주간 출근하면서 이 회사 사장님은 사원들을 생각해 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어느 회사를 가나 하나의 나사에 불과하게 될 것은 자명하지만 기왕이면 '야 이 나사야! 빨리빨리 일 안해!!' 하는 곳 보다는 '나사야 우리 다같이 열심히 일해보자' 하는 곳에 가는게 더 좋을텐데. 이 회사가 규모는 작지만 후자에 해당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노곤노곤 풀어지는 참이다. 좋은 회사가 숨어있네요.
일 하는 것도 즐겁다. 일반적인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기쁘기도 하고, 어느 한 구석에 내 이름이 혹시나 들어갈 수 있을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정말 말도 안되는 여건만 아니라면 출판사를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 만들게 기대가 된다.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 오류따위 하나도 없게 만들어야지! 처음에 해야 할 일을 듣고는 이런 일을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에게 시키다니, 싶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그 덕분에 내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아침부터 4시까지 아르바이트 하고, 매일 저녁 학원에 가는 일상을 2주간 살았더니 아주 죽겠다. 하... 매일 야근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는 걸까!? 숨 쉴 시간이 없어서 너무 힘들고 시험도 봐야되고 첩첩산중이다. 그래도 몸은 피로할 망정 마음까지 피로한 것은 아니어서 좀 다행이긴 한데, 2주 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끔찍하기도 하고.. 그 다음에 시험을 네 개 치고! 그 사이사이 또 다른 시험들이 추가되겠지!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이제까지 화이팅 한 것은 이렇게 살면 앞으로 좋은 날이 올 것이란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마음 아래에 이렇게 해야 지금처럼이라도 살지, 하는 생각이 깔려있다. 어젯밤에는 학원에서 집에 오며 이런게 산다는 걸까, 이래서 어른들은 자식들만 바라보고 살까,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나으면 정말 보석같이 예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요즘 부쩍 상태가 안 좋으신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 생각을 하니까 순간 정말 강렬하게 '시간은 앞으로만 간다'는걸 느끼게 되더라. 시간은 앞으로 가고, 나는 앞으로 예전만큼 미래에 대해 반짝반짝한 희망을 가지지 못할꺼고, 아프신 할머니를 보내드리는 일을 맞이하게 되겠구나. 새삼스러운 일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었는데 문득 눈물이 났다.
산다는 건 정말 고통인가보다. 그걸 다 참고 참아서 할머니는 아흔 해에 가까운 시간을, 부모님은 예순 해에 가까운 시간을 쌓아오셨나. 이제 채 반의 반세기도 못 산 나는 앞으로의 시간이 무섭다. 이렇게 70년을 더 살게 될까. 좀 많이 고단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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