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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나의 한심함에 대한 기록

by 푸휴푸퓨 201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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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하다. 피곤할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각오했다고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몹시 피곤하다. 몸이 노곤노곤하고 무겁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순식간에 피곤해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자세히 보면 별 일 하지도 않았는데, 체력이 얼마나 엉망인지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엉망인지고.

 

  피곤한 것은 무섭다. 피곤하지 않다고 셀프세뇌를 하면 그렇게 믿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피곤한 티를 낸다. 별 것 아닌 일에 참을 수 없게 화가 치밀기도 하고, 뭔가 나를 컨트롤 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짜증과 예민 지수가 올라가는 것이지. 피곤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면 나는 곧 성격파탄자가 될거다. 가뜩이나 본래 성격은 좋지가 않아서 숨기는 참인데, 울컥울컥한다.

 

  낮에 집에 오는 일은 다 괜찮은데 너무 덥다. 더워서 정신이 없다. 집에 오면 땀이 쭉쭉 나서 몸에서 땀냄새가 나는데 후각이 예민한 나는 이게 너무 싫고 피곤하다. 그래서 오자마자 얼른 식히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런데 오늘은 그러려고 분주한 와중에 일이 생겨서 고작 한 5분 정도를 더 나갔다왔다. 사실 별 일 아니었고 내가 하는 것이 당연했고 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얼른 다녀왔지. 근데 너무 더웠다. 피곤했다. 짜증이 났다.

 

  스티로폼 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나는 잠깐이라도 편히 쉬려고 온갖 발버둥을 쳤는데 안따라주는 상황에 순간 너무나 짜증이 나서다. 스티로폼이기는 해도 제법 두꺼웠던 상자가 움푹 파여 부서졌다. 그 꼴을 보니 다 부셔버리면 속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팍팍 내리쳤다. 근데 두,세 번 했더니 손이랑 손목이 아팠다. 뭘 때려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그만뒀다.

 

  화풀이도 시원하게 못하는게 또 짜증이 났다. 냉장고에는 며칠전 먹다 남은 치킨이 들어있었다. 저녁으로 조금 데워서 먹고 가면 되겠다 생각해 두었던 것인데 그냥 다 꺼내서 차가운 그 상태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맛있어서 먹는 것도 아니었다. 여섯시도 되지 않은 시각, 배도 고프지 않은데도 그냥 무조건 입을 움직였다. 먹는 내 행동이 괴롭다고 느껴지는데도 더 먹었다. 화가 나서 분풀이로 내 몸 안에 음식을 쓰레기처럼 우겨넣었다. 

 

  분풀이를 하고 나니까 정말 피곤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나 지금 뭘 한거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울컥 화를 내고, 손은 아직도 아프고, 뭘 먹은건지 기분 나쁘게 배는 가득 차 있는데. 너무 싫었다. 이렇게 하는 내가 싫고 상황도 싫고 피곤하고 죽겠다. 그래서 못 일어날 걸 알면서도 부엌 식탁에서 불편하게 잠이 들었다. 학원 갈 시간을 놓쳤고, 나는 지금 집에 있다.

 

  일하러 가서도 즐거웠고 오늘은 좀 덜 피곤한 것 같다 생각하며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는 좀 더웠지만 오늘을 잘 보낸 보상으로 저녁용 간식도 하나 사 들고온 참이었다. 얼른 맛있게 먹고, 또 열심히 공부하러 가야지. 그래놓고 잠깐 덥고 짜증이 난다고 다 망쳐버렸다. 그래서, 쉬니까 좋아? 이따위로 하고 쉬니까 좋아?

 

  피곤하니까 생각도 깊이 하기 싫다. 책 두 권을 읽었는데, 두 권 다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라 내용도 더 잘 숙고하고 리뷰도 쓰면 좋을 것 같은데 다 귀찮다. 생각이 그냥 되지가 않는다. 꾸역꾸역 이 글을 썼다. 나의 한심함을 만고에 널리 알리고 나도 백년천년 읽으면서 후회하려고 쓴거다. 아무래도 박스를 잘못 친 것 같다. 오른 손목이 욱신거린다. 스티로폼도 못깨는 주제에, 할 일 똑바로 하고 살아 이 멍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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