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노름꾼이라고요? 거참 흥미롭네요. 예전에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죠.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나도 알아요. 아인슈타인은 낄 데 안 낄 데 모르고 아는 척을 하기 좋아하는 인간이죠. 신은 주사위를 던질 뿐 아니라 룰렛도 아주 좋아해요. 블랙잭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끔 포커도 쳐요. 생각해봐요. 도박꾼이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 같은 족속을 만들 생각을 했겠소?"
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종교가 없는 나는 특정하게 떠오르는 모습이 없다. 서양 회화의 수많은 예수와 비슷하게 생겼으려나 싶기도 하고, 흑인 예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사자처럼 생겼을 가능성도 사람처럼 생겼을 가능성만큼이나 있다고 생각한다. 왜 꼭 신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가 난 어쩐지 불만스럽거든.
이런 신은 처음 본다.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하는 남자. 물론 주변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자로 생각한다. 파산 일보 직전의 심리치료사인 주인공도 마찬가지지만 어쩐지 그의 말에 설득되고, 또 어쩐지 그가 하는 일들이 신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이 사람은 신일까?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아벨에게 내가 마음이 쏠리기 시작한 것은 딱 저 부분, "도박꾼이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 같은 족속을 만들 생각을 했겠소?"라는 물음 때문이었다. 신은 어떻게 인간을 믿고 인간이 이렇게 전진하게 내버려뒀을까. 만약 아벨이 정말 신이라면 앞으로 신에게 기도할 일은 없어지겠지만은 어쩐지 안심이 되기도 한다. 신도 헐랭하고 또 실수한다. 하지만 그 점이 지금 인간의 발전이 멸망으로만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다. 인간의 영역을 뛰어 넘는 인간의 발전이 불안한 지금, 인간적인 신을 통해 위로받으려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서커스 광대가 신이라는 착상도 재미있지만 주인공과 전처, 가족을 둘러싼 스토리 전개도 쭉쭉 나간다. 만약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 지는 나도 정말 보고 싶다. 자신과 관련된 생각을 하면 자연스레 그 생각이 들린다는 신은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영화에 집중한다. 군데군데 다양한 영화를 잘 알고 있다는 힌트를 그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도대체 영화를 얼만큼 봤을까.
'맨 프롬 어스'라는 영화가 있다. 몇 천 년 전부터 살아왔다는 남자의 이야기를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듣는 것이 전부인 영화지만 나는 정말 재미있었다. 이 책은 그 영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보다 더 위트있다. 이 책이 영화화가 된다면 엄청 재밌게 볼텐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영화로 나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쁨과 비슷할 것 같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라도 너무 노여워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것은 '맨 프롬 어스'가 종교인에게는 편안치 않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서...). 어쩐지 사고를 치는 듯도 하지만 나쁜 의도는 없는 신. 더 나쁜 일을 막기 위해 미리 손을 쓴 것 뿐인데 범인의 눈에는 괴상하기만 하다. 세상이 그를 박해하지만 그가 의지를 잃지 않기를. 세상이 의욕 상실의 늪에 빠져들면 안되니까!
아벨이 몸을 내민다. "아콥, 인간들 없이는 내가 뭐가 되겠어? 인간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냐.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을 때만 움직일 수 있어. 아무도 선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나는 힘을 쓸 수가 없다고. 그게 바로 내 문제야.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무기력증은 믿음을 잃어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점점 커지고 있어. 이해하겠어? 나의 탈진은 곧 세상의 탈진이고, 나의 의욕 상실은 곧 세상의 의욕 상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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