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랍시고 무언가 쓰기 전에 나는 밝혀야겠다.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솔직하게,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의 작품 대부분을 나는 모른다. 나름 그림을 좀 좋아해서 고흐와 샤갈 정도는 관심이 있다. 하지만 나머지는 이름이나마 들어봐서 다행인 인물이 몇몇이오 대부분은 모른다. 그냥 모르는 거다. 이런 상태에서 어떤 서평을 써낼 수 있는지 나도 궁금하다.
이렇게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작가의 탓(?)도 하고 싶다. 그녀가 말하는 인물 중 많은 이들이 일반적인 한국인에게는 상당히 낯설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예측할 수 있지 않았을까? 러시아 문학과 예술에 특별한 관심이 없던 이에게 이 책은 지독히도 불친절하다. 러시아를 이미 잘 아는 친한 이에게 (제반 설명은 생략하고) 나의 가족 여행은 이러하였다고 사적인 감상을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다. 그럼 듣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을 얘기하면서 막 맞장구치고. 그럼 여행에 대한 작가의 지적인 만족감이 한 층 높아지고 좋은 여행으로 기억이 남고 그런 것 말이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나는 공감이 안된다는 말이다.
도요토옙스키 부분을 읽다가 '세컨드핸드 타임'을 읽으면서 그들이 왜 책을 버렸다, 혹은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비웃었다 등의 부분이 나왔는지 이해했다. 러시아에서 작가의 위치는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와 좀 다르다. 러시아의 작가들은 계몽주의적 사명을 띤 교사이자 비판적 저널리스트이며 거의 유일한 지식인 그룹니었다. 서구 유럽에서 어떤 인물을 두고 그가 작가인가 사상가인가를 어느 정고 구분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러시아에서 -특히 20세기 이전에는- 작가는 곧 사상가와 다름없었다.(44쪽) 그런가하면 유명한 대 작가의 좋지 못한 습관도 나온다. 애초에는 산처럼 높이 쌓인 금화를 긁어모으겠다고 덤벼들었으나, 종국에는 이런 지지부진한 나를 넘어서보겠다는, 잃기 위해 안달인 사람의 발악과도 같은 시간들로 이어졌다.(69쪽) 바덴바덴에는 아직도 도요토옙스키가 방문했던 카지노가 남아있다.
톨스토이가 꼽았던 삶의 기본적 태도는 참 닮고 싶지만 닮을 수 있을 지 모를 그런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살 것, 숭고한 뜻만 좇을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작은 개선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89쪽) 그러나 톨스토이의 금욕주의가 육체적 쾌락의 유혹을 거부하기 위한 반증이라는 대목도 흥미롭다.
전혀 몰랐던 화가인 이반 시시킨은 저자 덕분에 알아서 고맙다. 그의 초상화, 비석, 그리고 '자작나무 숲의 개울'이라는 그림이 119쪽에 담겨 있다. 그의 그림을 보러 러시아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에 가보고 싶은 건 처음이다. 그의 그림을 검색해 보았는데 전부 마음에 든다. 그의 그림과, 그의 그림이 대상으로 하던 풍경을 보러가고 싶다.
'자작나무 숲의 개울'
안나 아흐마토바의 일생은 읽고 있자니 너무나 처연하다. 그 시대에 탈 없이 산 사람이 이상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한 명 한 명의 비극이 비극이 아닌 것은 아니다. 주변인들이 암송한 덕에 후대에 작품이 남은 시인이 많다는 이야기도 놀랍다. 러시아에 대해서 이 책이 두 번째로 나에게 알려주고 있는데, 정말로 새로운 세상이다.
(......) 이 모든 일의 증인,
여명에도 황혼에도
방 안을 들여다보는 오래된 단풍나무가,
바싹 마른 검은 손을 내게 내민다.
우리의 이별도 미리 보고,
도움을 주려는 듯 그렇게.
-안나 아흐마토바, '주인공 없는 시', 1940~1962년
저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장소와 인물을 내가 좀 더 많이 알고 있었더라면 훨씬 쫀득하게 읽었을 책임에 분명해 아쉽다. 그러나 이 책의 인물을 전부 알고 있으려면 공부를 엄청 해야 할거다. 그럴만큼 내가 러시아와 그 외의 예술가에 특출난 관심이 있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많은 것을 보고 다니는 작가의 아이들에게 부러움을 표하며 글을 마친다. 많이 돌아다니는 건 언제든 좋은 것 같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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