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처음 읽어 본다. 수상작품집은 커녕 국내 소설 자체를 많이 읽지 않는다. 대학에 갓 들어갔을 무렵 소설의 배경이 한국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국내 소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새내기는 세상이 찬란해 보이길 바라는데 소설 속 현실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내 꿈을 깨는 이야기들이 싫었던 거다.
오래간만에 한국 소설을 읽으면서 몇 년 사이에 내가 변했다는 걸 느꼈다. 현실적이어서 좋다 생각하는 내가 낯설었는데 어쨌거나 소설은 재미있었다. 이제 찬란한 세상을 꿈꾸는 나이가 지나갔나보다. 꿈꾸는 내가 사라진 건 좀 아쉽지만 즐겁게 읽을 새로운 분야의 책을 찾아낸 건 좋은 일이다. 그렇게 정리하지 뭐.
7편의 단편이 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 한 편만 언급하려고 한다. 이야기를 꼽은 기준 따위는 없고, 그냥 내 마음을 움직여서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말해본다. '너무 한낮의 연애'도 좋았고 '알바생 자르기'는 부모님께 보여드리면 재미난 후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더 읽고 싶은 작가는 정용준 작가로, 그의 '선릉산책'을 이야기하고 싶다.
백수로 지내지만 '착하고 듬직'한 주인공은 아는 형의 부탁을 받아 하루동안 장애가 있는 한두운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시급 만원이라 시작하기는 했는데, 어쩐지 마음을 열고 약속된 9시간도 꽤나 즐겁게 보냈는데, 갑자기 3시간 정도 일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주인공의 감정은 급변한다. 그리고 느낀다.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고 해서 한두운 주위의 어둠과 폭력, 그리고 주변인의 고통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그것은 주인공은 물론 한두운의 이모와, 한두운 본인까지도 감내해내기 힘든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그 모든 상황에서 한두운이 상처를 입은 것이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사과는 커녕 화가 나는 마음은 결국 한두운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와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의 무능력에서 기인한 것일테다. 인간다운 대우를 해주고 인간다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결국 그 인간다움이 얼마나 얕은지 목도하는 시간이 그 저녁시간이었으니까.
참아내는 것과 공감하는 것과 공존하는 것, 그리고 작가가 쓰고 싶다는 '몸에 좋은 소설'에 대해 생각해 본다. 타인과의 교감은 늘 어렵다. 교감이 되지 않을 때의 공존과, 더 나아가 공감이 이루어질 수 있기는 한걸까. 교감이 되지 않으니 그저 참아내기만 한다면 우리는 언젠가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 몸에 좋은 그의 소설을 통해 내가 공존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한 번 더 참아낼 이유를 얻은 정도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참다보면 나아질 것이란 희망은 계속 가지고 있을거다. 낮의 주인공이 느낀 어리석은 믿음과 같은 감정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항상 그래도, 라고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게 내 인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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