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목표로 한 달에 네 권 이상씩 책 리뷰를 쓰겠다고 써 놓고서 웃었더랬다. 네 권 이라니, 정말 간소한 목표로구만. 되돌아보니 한 달에 네 권은 커녕 네 달에 네 권도 쓸까말까했던 것 같다. 서포터즈를 하는 것 말고 개인적인 흥미를 느껴서 쓰는 책만 센다고 치면 이건 정말 전멸이다. 책을 안 읽은 건 절대 아닌데, 심지어 인스타그램에 짧게 올리고 싶은 책과 길게 리뷰 쓰고 싶은 책을 구분해두기도 했는데, 그런데 다 유야무야다. 어디갔니. 뭘 읽었던 거지.
그렇다고 일이 많이 바쁜 것도 아니다. 사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넓은 바다에 혼자 떠 있는 섬같은 기분을 느낀다. 솔직히 내 일상이 전부 다 유야무야다. 나는 뭘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이렇게 멍하니 있어도 괜찮은걸까 싶기도 하다. 다들 이러고 있을까? 나만 이렇게 할 일이 없을까? 다들 내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놔두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할 일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높은 파티션 앞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잘 모른다. 저쪽에서는 쉴 새 없이 일하고 있을까, 타자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일을 안 하고 계신건가, 나만 이렇게 어영부영일까.
내가 그렇게나 하고 싶었던 사서라는 일이 정말 이런건지 나에게 반문해 보기도 한다. 다들 이런가, 나는 이런 걸 꿈꾸고 그렇게 달려왔었나. 아니면 혹시 여기만 이런 건 아닐까. 정말 어딜가나 다 똑같을거란 말이 사실일까? 여기는, 그래도, 예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하고 있을테니 그냥 조용히 앉아있어야 하나. 다람쥐 쳇바퀴처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보면 결국 결론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 나는 그만 또 계속 앉아 있다. 달리 할 것도 없는 걸 뭐, 뛰쳐 나갈 수도 없잖아.
와중에 회사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도 한 번씩 자문해본다. 나는 쓸만한 신입인가 아니면 멍청한데 건방진 신입인가. '요즘 애들은 다 그런가?'란 말로 표현되는 요즘 애들의 군상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날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인사이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자꾸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난 여기에 오래 머무를까, 아닐까.
그렇게 한가하면서도 쓸데없이 (마음만) 바쁜 와중에 퇴근 후 일상은 진짜로 바쁘다. 빨래 만으로도 며칠 저녁이 훅훅 간다. 청소는 진짜 악의 축이다(오, 먼지와 머리카락이여 날 내버려 두란 말이다). 청소와 빨래 두 가지로도 저녁 시간이 충분이 허덕였기 때문에 요리는 놓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서 요리를 하나도 하지 않았더니 자꾸 칼로리 높은 것들만 사먹더라고(곧죽어도 몸에 좋은건 사먹기 싫지!)... 피부가 심하게 안좋아지고 살도 찌는게 느껴져서 강제 채식인의 삶을 실천하기로 했다(괜찮다. 주말엔 서울에서 행복한 육식인의 삶을 산다).
일단 기본 재료들만 손질해 두어도 삶이 확 바뀔 것이 보여서 날을 잡아 싹 주문했다. 대파며 마늘이며 양파며 감자며 버섯이며... 애호박을 사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아니 저렴할 때는 두 개에 1500원도 되는걸 뻔히 아는데 한 개에 1600원씩이나 주고 어떻게 사니!?라며 아줌마같은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도 확실히 있으니까 좋더라. 하이라이스도 하고 밥까지 해서 냉동실에 얼려 놓으니 아주 든든하다. 요리를 하니까 드디어 안착한 기분이 들더라고. 내 부엌과 요리가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따뜻함을 준다. 좋은 힘이다.
자전거를 샀다. 요즘 저녁은 정말이지 자전거를 타기에 딱 좋은 날씨라 타고 다니면 기분이 좋다. 어제는 든든하게 된장찌개를 끓여 먹고 길을 나섰다. 발을 쾅 찧어서 운동화가 찢어져 버렸다는 서글픈 소식을 빼면 좋은 시간이었다(아 내 운동화...). 하루 중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었지. 저녁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부랴부랴 세탁기를 돌리고 다림질을 하니 잘 시간이었다. 이 사이사이에 연애를 하면 결혼을 하겠지. 그럼 평생 이렇게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자전거를 타면 참 좋을텐데, 아침잠이 너무 많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는 시간이다. 빨리 적응했으면 좋겠고, 잘 했으면 좋겠는데, 또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잘 모르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