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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받아야만 하는 위치

by 푸휴푸퓨 201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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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학을 했고, 좋은 경험을 하고 싶었다. 인턴을 잘 뽑지 않는 도서관 분야이다보니 절망하고 있던 차에 정말 괜찮은 곳에서 인턴을 뽑는 것을 보고 전력을 다해서 자기소개서를 썼다. 면접도 안보는 전형이라 글자 하나하나에 신경썼다. 학교랑 관련있는 곳이기도 해서 대학원생까지 뽑는다는 것을 보았지만 그래도 기대했는데, 떨어졌다. 나는 내 전공 두 가지를 강점이라 생각했는데 강점은 무슨. 일개 휴학생은 강점이란 없는 듯 하다. 두 전공 모두 석사 과정의 학생을 뽑아놓았다. 나라도 나 안뽑겠다. 에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넣었는데 떨어지는 경험은 이제 나에게 큰 일이 아니다. 이력서를 꽤 많이 썼고 하나도 지우지 않았다. 그 목록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오라는 곳은 없는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좀 괜찮은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정규직이 되려고 한 것도 아닌데 내가 갈 자리가 없다. 처음에 떨어졌다고 하면 농담을 하시던 엄마도 이제 떨어졌다고 하면 괜찮다고 위로해 주신다. 지금이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구하는 것 뿐이지만 이게 진짜 구직이라면 어떻게 되는 건지 상상도 싫다. 아무튼 떨어지는 상황이 더이상 엄청 힘들지 않다. 무덤덤해졌다.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서.

 

  그런데 모집하는 측에서는 꽤나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같은 내용으로 문자도 보내주고 메일도 보내줬다. 인상적인 참가신청서를 잘 읽어 보았다면서 아래와 같은 말을 덧붙였다.

 

이번 인턴모집을 진행하면서 혹시나 누군가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본 전자우편은 아마도 더 나은 경험을 쌓기 위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소정의 기념품을 참가신청서에 기재하신 주소로 보내드립니다.

 

 

  이런 문장을 본 것이 처음은 아니다. 사실 이런 식의 위로는 생각보다 자주 있는 일이다. 제일 처음 넣었던 이력서가 떨어졌을 때 마감이란 글자와 함께 뜬 글에는 고용측의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런 아르바이트 자리에 너무 많은 예상 밖의 좋은 스펙의 지원자가 와서 깜짝 놀랐다고. 이 일로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힘내시라고도 했다.

 

  20대가 구직이 어려운 건 너무나 당연해졌고 그 어려운 상황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이미 취직을 한 기성세대들은 이 젊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모양이다. 오죽하면 떨어진 사람한테 기념품을 보내줄까? 그냥 아무 연락도 안해줘도 될 것을 이렇게 섬세하게 신경도 써 주고 고마운 것 같기도 하다. 같기도 해. 왜? 난 떨어졌으니까. 난 마음에 상처를 받았으니까. 그래서 고맙다라고는 못하겠다.

 

  처음 몇 번은 위로로 들린다. 하지만 점점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 그 것은 더 이상 위로가 아니다. 동정이 된다. 나는 요즈음 위로 받다 못해 동정 받고 있다. 차라리 말하고 싶다. 인턴 모집을 진행하면서 떨어지는 사람은 당연히 마음에 상처를 받아요. 그냥 내 생각 하지 말아주세요. 쿨하게 끊어버리면 나쁘다고 욕이나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하시면 그것도 못해요. 위로 해 주셔도 안해주셔도 상처는 마찬가지랍니다. 그러니까 떨어뜨리시고 착하기까지 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나쁘게 있어 주세요. 그래야 제가 착한 사람 입장에서 나쁘다고 욕도 할 수 있어요... 그거라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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