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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나의 방과 나와 내 방과 나의 소소한 것들.

by 푸휴푸퓨 201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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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내 방을 내가 꾸민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지저분한 것을 아주 싫어하는, 극단의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는 엄마는 어린 내가 추구한 조잡함을 아주 싫어하셨다. 나 말고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법한 낙서 따위를 생각하면 미니멀리즘이 아니라도 내 꾸밈을 좋아하는 사람은 적으리라 충분히 짐작된다.

 

  10대 시절에도 여전히 방을 꾸미고 싶었지만 능력이 없었다. 방을 꾸밀 무언가의 값은 한 달 용돈 2만 원의 학생에겐 너무나 비쌌다. 솔직히 딱히 만들어내고 싶은 모습도 없었지. 학생이라면 취미에 시간 낭비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빡빡하긴!). 게다가 다이어리를 꾸미기에 심취하면서는 방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 방이 있다. 다이어리 때문에 방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말,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고등학교 배정을 위해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갔다. 남이 들으면 유난스럽다, 교육열이 너무 과한 거 아니냐 하겠지만 우리 가족은 이사를 아주 간단하다고 인식했다. 어렸을 적 아빠의 발령 때문에 많이 돌아다닌 덕분이겠지. 그래서 이사를 갔고, 그 방은 내 방이 아니었으며, 가격이 싼 잠깐 살 집을 찾다 보니 인테리어도... 인테리어가 문제가 아니라 바람이 슝슝 들어오는 샤시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어찌 되었건 언니와 나는 이사할 값어치가 있었다는 말을 들을만한 성과를 내고 그 집을 떠나왔다. 그래, 그리고 지금의 (신경 쓸 가치가 충분히 있는) 내 방이 있다.

 

  수능이 끝난 나는 할 일 없는 잉여로써 당연히 이사 준비에 투입되었다. 엄마와 함께 방산시장에 가서 벽지를 고르고, 콘센트를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닦고 쓸고 닦고 쓸고... 살던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 뿐이었는데도 신이 났다. 돌아와서 기뻤다. 이제 진짜, 오래도록 내 방이 될, 내 방이었다.

 

  이 방은 물론 완벽하지 않다. 흰색 가구 두 개에 나무색 가구가 두 개 있고 흰색 창틀과 문을 가지고 있으면서 몰딩은 또 우드색이다. 천장의 벽지는 도배가 허술했는지 찢겨 너덜거리기에 엄마랑 급작스럽게 도배 풀을 사다가 얼기설기 붙여놓았다. 파워블로거가 소개하는 집과는 질적으로(!) 다르지만, 그래도 나는 내 방이 좋다. 방과의 시간이 쌓일수록 곳곳에 추억이 생긴다. 한 집에서 오랫동안 살 일이 별로 없어서인지 나는 집에 대한 애착이 별로 크지 않았는데, 이 집은 오래 살 것이라고 다시 생각하고 들어와서인지 점점 사랑하게 된다. 이 공간이 '나'라는 기분을 처음 맛보는 셈이다.

 

  바로 그 기분 때문에 지금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장식은 언제든 바뀔테니 지금 나의 좋은 마음을 남겨두고 싶어서, 다시 지금의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하나하나 써 놓는다. 남들이 소소하게 무엇인가 써 놓으면 관심도 없는 주제에 난 또 소중하다고 올리려 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겠지?

 

 

  내가 좋아하는 옷장 벽! 여기를 어떻게 꾸밀까 오랫동안 고심했다. 그리고 고심과는 아무 상관없이 각성의 이유로 인바디 표를 붙여놓았는데, 친구가 그려준 나와 원본 사진을 받으니 옆에 붙이면 딱이겠다 싶었다. 기왕 사진을 붙였으니 2011년 유럽 여행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도 붙이고, 다시 갈 유럽 지도도 붙이였다. 유럽 여행의 필수인 기차 모형도 매어놓았지. 단순해 보이지만 사진을 붙인 보라색 마스킹 테이프의 방향까지 고심했다고! 아무거나 붙여도 좋을 판에 하나하나 전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이라 이 벽은 보고만 있어도 좋다. 앞으로도 사진이 늘어나겠지. 그럼 더 많이 보고만 있어야지.

 

 

 

  다음은 소니엔젤! 쟤들 이름이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한창 셀프 인테리어 블로그를 구경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블로거들이 많이 모으던 게 소니엔젤이었다. 팬시 가게에서 그냥 지나치곤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두 개 집어 들었는데, 다행히도 전시 샘플 중 마음에 들었던 파인애플!이 나와 기분이 좋았다. 두 아이 다 마음에 들기는 한데 이제 둘 곳도 없고 또 마음에 안 차는 친구가 나오면 실망할까 봐 더 못 사겠다.

 

  그런가 하면 저 엔젤들이 밟고 있는 건 무려 나의 할아버지께서 만든 다듬이돌과 방망이다. 항상 생각할 것도 말할 것도 많은 할아버지에게 할 일 없는 노년은 참 혹독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다듬이 돌을 소개해야겠다(도대체 왜??)는 마음이 드셨는지 나무로 저것들을 조각하셨고, 그나마 손주들 중 마음을 잘 이해하는 양 보이는 나에게 친히 하사하셨다. 할아버지의 생각만큼 내가 할아버지의 사상을 다 이해하고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만드신다고 공을 들이신 티가 많이 나서 선뜻 집으로 가져왔다.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해서 지금처럼 소니엔젤 아래에 두니 예쁘다. 이런 용도로 쓰는 걸 보시면 기함을 하시겠지. 이건 다듬이돌이라고!! 외치시면서.

 

 

 

  사진을 찍겠다고 잘 쓰지 않는 카메라 어플을 사용했더니 효과가 들어가서 마음에 안 든다(스마트하지 못한 나..). 저 남색 미니미 꽃병도 할아버지가 주셨다(할아버지에겐 호리병이었다). 남색으로 칠하겠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창의력이 중요하다며 그렇게 하라셨지. 이 나이에 창의력을 쑥쑥~ 키울 일은 없지만 색칠은 즐겁다. 더불어 꽃을 심겠다며 색칠한 내 저금통이 옆에 있다. 엄마와 언니는 딱 네 취향이랬고 1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보기에도 아동틱하다. 그래도 나는 비비드하고 순진무구한 모양을 만들고 싶었기에! 지금도 잘 놔두고 있다. 물론 아직도 꽃은 못 샀다.

 

 

 

  우리 집에는 부모님이 신혼 시절 돈이 없어 고른 싼 시계가 온 방에 있었다. 디자인의 디 자도 떠올릴 수 없는 그 시계들이 참 싫었는데, 다행히도(?) 하나 둘 명을 다해 방마다 새 시계가 필요한 시즌이 왔다. 내 방 시계를 바꿀 때 나는 마음에 드는 시계를 고르겠다고 몇 달간 시계 없는 방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찾은 시계가 저것! 왼쪽의 책상과 오른쪽의 커튼에 모두 잘 어울리는 이 시계는 우리 집 모든 시계 중 가장 좋아한다. 아침마다 시계를 보며 일어나는데 시간이 또렷이 보이는 시력을 갖고 싶다. 우리 집에서 나 말고는 아무도 디자인을 따지는 사람이 없어서 다른 방의 시계들은 그냥 또 소음 없고 저렴한 아이들로 채워졌다.

 

 

 

  나는 남들이 왜 그런 게 하고 싶냐고 물어볼만한 것들을 자주 하고 싶어 한다. 바코드 찍기도 그중 하나여서, 바코드를 찍을 수 있으면서 책으로 가득 차 있던 대형 문고에서의 아르바이트는 당연히 내 구미를 아주 많이 자극했다. 최저 시급에 8시간 동안 앉을 수도 없는 고된 일이었지만 오로지 바코드 하나만 보고 시작했던 아르바이트. 편하게만 살던 나는 고된 일을 전혀 참지 못했고 결국 바코드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한 달 반 만에 그만두었다. 그때 함께 일했던 캐셔 언니들에게 정말 피해를 입힐 몹쓸 타이밍에 그만두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걸 전혀 몰랐다.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 서점은 이제 없어졌고 언니들은 사라졌다. 그 언니들이 나의 미안함에 신경이나 쓸지 또한 의문이다.

 

  그런 나의 안 좋은 기억, 하지만 바코드를 처음 찍어서 재밌었던 기억, 힘들어서 뭐라도 사야겠어!하며 돌아다니던 기억을 이 책갈피는 떠오르게 한다. 볼 때마다 귀엽다는 마음보다는 그때의 철없고 참을성 없던 내가 생각나서 마음이 불편하다. 원숭이 모양을 사야 되는데 원숭이는 안 예쁘니 무시하고 다른 걸 사자며 고심했던 기억도 살풋 나기는 하지만. 철없던 내 열아홉 살의 가장 부끄러운 기억을 절대 치우지 않겠다. 언제까지고 거기서 나에게 실수를 상기시켜 주렴. 다시는 반복하지 않게. 인내가 무엇인지 되새길 수 있게.

 

 

  이 비행기는 맨 앞의 옷장 사진에 있던 기차와 세트라고 할까 시리즈라고 할까. 만드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친구가 대뜸 만든 사진을 보내며 자랑을 하기에 나도 사다 달라고 떼를 썼다. 나의 생떼에 익숙한 이 친구는 흔쾌히 사다 주었고, 만난 약속 장소에서 친구들과 대화고 뭐고 제쳐두고 조립하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좋지만 두렵다. 곧 그 두려움을 다시 마주하게 될 텐데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보통 저 불투명 창을 열어두고는 창가에 비치는 비행기를 보면서 짧게 여행을 생각한다. 이번 여행은 어떨까 생각하며 다음 여행 계획을 마음속으로 벌써 세운다. 유럽 다음엔 국내 여행이다. 나에게 이걸 사준, 지금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떠나고 있는 친구가 떠오른다. 잘 갔다 오렴. 자신보다 7살 어린 동생을 대하듯 나를 대하는, 대범하지만 소심한 이 친구에게 뉴욕이 많은 경험을 가져다주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작은 것들이 군데군데 모여있는 내 방. 찍다 보니 이런 것까지 쓰나 싶어 자체적으로 많이 지웠는데도 소소하기가 그지없다. 친구가 그랬다. 나는 작은 것에서 행복함을 찾는 꼬꼬마 같다고. 어젯밤 읽다 잠든 책 속에 한국 사람들은 삶을 포기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구절이 있었다. 여행을 업으로 살며 돌아다니는 그는 삶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표정이 있는데 그걸 리투아니아 사람과 한국 사람, 일본 사람에게서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알게 된 통계. 세계 자살률 1위는 리투아니아, 2위는 한국. 물론 OECD 국가 통계로는 한국이 1위, 일본이 2위이다. 내 표정은 어떨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안정을 택하느냐 마느냐의 시기에 도달한 나는 저 글을 읽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자살이라는 말이 너무 흔해져서 충격이 덜한 걸까? 그래서 생각한다. 큰 것을 포기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작은 것에서 느끼는 행복은 아무리 세상에 때가 타도 포기하기 않겠다고. 남들이 유치하다 한들, 그래도 내 취향이라고 당당히 즐겨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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