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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TC

[Exhibition Review] 데이비드 호크니展 - 서울시립미술관

by 푸휴푸퓨 2019.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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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를 다녀왔다. 그의 작품도 내 기분도 좋은 관람이었다.

 

  방금 누군가 뛰어든 양 수영장에 물보라가 이는 그림을 보고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전시는 꼭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납작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그 그림은 내게 호퍼나 키미앤일이의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듣자하니 인기가 아주 많은 전시여서 사람이 초만원이란다. , 주말에는 못 가겠군. 듣똑라에서 호크니 관련 방송을 해주었기에 조금 들었다. 전부 다 알고 가는 건 재미가 없고 아예 모르면 관심이 없다. 적당한 기대감과 적당한 지식을 가지고 서울시립미술관에 갔다.

 

  연차를 낸 평일의 서울은 정말이지 한산했다. 전시관 안은 한산하지가 않아서 평일 낮에 서울에서 시간이 자유로운 이가 이렇게 많은가 하며 부러워했다. 그래도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오디오가이드를 꽂고 하나씩 구경해나갔다.

 

  에칭화로 시작된 전시는 자연주의 시기의 그림이 몇 점, 푸른 기타 시리즈, 추상, 대형화 등으로 이어져나갔다. 홍보에 사용된 그림은 전부 자연주의 때의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그 그림들이 전시의 너무 일부분이라 실망감이 들었다. 나는 이 오묘한 납작한 그림을 보러 왔는데 이 삐죽 대는 추상화며 판화는 다 뭐지. 그래도 참고 보노라니 어쩐지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나도 내가 왜 그런지는 모른다. 벽면을 가득 채운 어머니와 스튜디오의 그림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니 멕시코 한 호텔의 중정을 그린 붉은 파노라마는 취향을 저격했다.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걸어가며 중정의 풍경 변화를 느끼니 나도 강렬한 햇빛 안 그늘 속에 서 있는 사람이고 싶다. 대단한데, 호크니.

 

  캔버스를 수십 개 이어 붙인 그림 두 점으로 넘어가서는 한없이 그 앞에 앉아있고 싶었다. 결국 주제는 자연이 되었다는 점도 좋고 커다랗고 강렬한 색감도 좋다. 평소에 이런 그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내가 본 풍경인 양 그랜드 캐니언과 숲을 지나 나오려니 글쎄 마지막 그림이 하나 남아있다. 3D로 구성한 호크니의 스튜디오와 호크니 자신이다.

 

  어설픈 양 독특한 양 사진을 합성해 둔 이 커다란 그림은 내게 존경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 그림 자체가 너무 멋져서? 차라리 조악하다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그건 아니다. 전시 중반 즈음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고 호크니가 찍은 사진을 보고는 사실 웃음이 나왔다. 유명해지면 뭘 해도 다들 환호해준다더니 이건 나도 찍겠다. 그런데 마지막에 걸린 새로운 그림까지 보고 나니까 알겠다. 이 사람은 이렇게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 자체로 박수를 받을만하네.

 

  전시를 보며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추상화에 대한 이해. 불필요한 모든 걸 제외하고 나니 이것만 남았다, 하며 원통이나 선만 그려놓은 그림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왜 몬드리안이 점과 선과 면만을 남겨두었는지에 대해 문득 생각했다(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이번 전시 관람을 하며 어쩐지 이제는 추상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불필요한 걸 없애는 게 사실은 붙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내가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두 번째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존경. 호크니는 생전에(라고 써도 되나? 아직 살아계신 분께?) 이미 대단한 인기와 명예를 누린 예술가다. 만약 지금 내가 내 작품으로 큰돈을 벌고 있다면 나는 화풍을 바꿀 시도 따위는 하지 않을 텐데. 호크니의 작품을 따라가노라니 그가 얼마나 끊임없이 탐구하고 새로움을 추구했는지 느껴졌다. 나는 아직 서른이 채 못 되었지만 새로움이 귀찮다. 여든이 넘은 그는 여전히 호기심이 왕성하다. 최근 레너드 번스타인의 다큐와 영화를 보면서 그의 끊임없는 탐구와 구도자적 자세에 감명받았는데, 어느 분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쉼이 없는가 보다. 정신이 번쩍 드는 부분이다.

 

  전시를 나와 기념품샵에서 엽서와 포스터를 샀다. 예쁜 그림, 감탄이 나오는 세밀한 붓놀림만을 구경했던 옛날보다 조금 성장한 기분이었다. 달달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한산한 지하철을 탔다. 이게 바로 으른의 여유로움이지. 그의 다른 작품을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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