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식의 한 주가 끝났다. 이번 휴식은 ‘10대의 마음으로 돌아가서’라 정리하고 싶다. 10대처럼 전력을 다해 운전을 배웠고, 10대의 언니와 나처럼 일주일 내내 단짝으로 한 주를 보냈다.
1.
9월부터 양평에 출장을 자주 다녀야 하는데 대중교통으로는 보통 오래걸리는 게 아니라 급히 운전을 배웠다. 7월부터 연수를 시작했고 이번주에는 매일 운전을 했다. 차 엉덩이에 초보운전을 두 개나 붙이고 뽈뽈뽈 돌아다녔지. 지난주 토요일과 이번주 목요일 운전 능력이 내가 느끼기에도 차원이 달랐을 만큼 실력 향상의 뿌듯함이 크지만, 아직 양평을 혼자 왕복하기는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계속 도와줘요 아빠😍).
운전을 익히며 무언가를 바닥부터 시작해 능숙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던 게 언제였나 싶어 감회가 새로웠다. 배우고 외우기에 끊임이 없었던 나, 미숙한 두려움을 익숙한 몸으로 바꾸던 나는 10대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는 매사가 생경했는데. 언제부터 익숙함만 찾아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돌아보니 타성에 젖어 있었을 뿐.
운전은 진심으로 힘들고 상당히 재미있다. 운전을 하면 시야가 변한다던 아빠의 주장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커다란 싼타페가 힘에 겨워 아직 미세 컨트롤은 쉽지 않지만, 가야 한다면 어디든 갈 수는 있는 사람이 되었다. 새로운 세상의 문이 또 하나 열려 신난다. 배움은 좋은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고속도로도 달려보고 시속 100km도 넘어보고 끼어들고 멈추고 유턴하고 좌회전 우회전도 해 본 사람이 되었다. 아, 아직 비보호 좌회전은 할 일이 없었습니다.
2.
언니는 요즘 일시적 백수다. 마침 형부의 교육이 서울에 잡혔다. 혼자 지방에서 뭐해, 서울로 와 있겠다는 말에 매일 내 운전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맛있는 거 사줄게! 초보의 차에 타는 게 얼마나 힘든지조차 몰랐던 여정의 시작이었다.
언니와 집 앞을 달려보는 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많이도 갔다. 오늘 운전이 느는 만큼 어제의 동승자에게 미안함이 커졌지만, 언니는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나를 가르쳐줬다. 운전 초고수 아빠의 가르침을 해석해주며, 브레이크와 엑셀의 타이밍을 실시간으로 얘기하며, 네비는 전혀 못 보는 운전자를 안내하며.. 디저트 몇 개 사는 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운전을 하려면 목적지가 있어야 하니까 여기저기 많이도 갔다. 평소라면 몇 달이 걸렸을 방문지 목록을 일주일만에 싹 완주했다. 언니가 운전하는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내 기운이 더 뻗쳐 아주 날아다녔다. 처음 간 코스트코에서 하겐다즈 하프갤런을 보고 신기하다고 소리치는 나를 쳐다보는 언니는 누가 봐도 엄마의 표정이었다(아이고 그래그래 신기하지?).
순수하게 노느라 신났던 일주일이었다. 언제 또 내가 일주일을 쉬고 언니가 마침 서울에서 머무를 수 있을까. 친구 누구와 놀아도 언니만큼 편하고 자연스럽지는 않다. 매일 같이 놀다 보니 10대 시절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같은 교복을 입은 언니가 함께 있던 게 당연하던 때. 각자 써도 될 방을 굳이 공부방, 침대방으로 분류해서 내내 붙어있던 때. 실없는 소리를 하다 우리만 웃긴 장난을 치던 때. 여름 방학 같은 일주일.
우리는 파이어를 원하는지 이야기하다 둘이 같이 약국을 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얘기했다. 혼자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같이 있으면 꽤나 즐거웠을 테니까. 내가 선택한 진로에 대해 가끔 고민하는데, 이번만큼 진심으로 새로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우리가 부모님 집에서 완벽하게 독립하더라도 가까이 살면 좋을 텐데. 미래의 거주 조건에 언니를 가까이 끼워 넣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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